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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적군 머리 베면 벌하겠다" 문헌에 나타난 이순신 장군의 어록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애걸... "자고로 사람을 모두 죽인다는 말은 못 들었다. 한 면을 터서 우리를 살려달라”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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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진=조선DB
  
 
충무공 연구가인 노승석(50)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주관으로 전남 순천에서 열린 순천 지역의 임진란사 연구학술대회의 발표문 <정유재란기 최대의 국제전 순천 왜교성 전투와 노량해전>을 통해 호남 선비 진경문(1561~1642)의 문집 <섬호집(剡湖集)>에 실린 <예교진병일록(曳橋進兵日錄)> 중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 부분을 분석했다.
노 소장이 공개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1. 왜교성에 주거했던 유키나가 이외의 4명의 일본 장수 명단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하여 마쓰라 시게노부(松浦鎭信),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오무라 요시하키(大村喜前), 고토 스미하루(五島純玄) 등이 거주했다.(“平行長及諸倭酋 沙奇炎島老 戛伊罵島老 阿鸞島老 古勿安島老 古敦島老 彼鸞島老等居其中”)
 
2.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독전을 명한 내용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명하기를 일본군의 머리를 베는 자가 있으면 군령을 내릴 것이다라고 하여, 전공보다 전면전에 힘쓰도록 독려했다.(“夜三更 逢敵船于露梁前洋搏戰 統制使令曰 有斬倭首 輒行軍令 麾左右舟師督戰”)
이러한 내용은 임진년 715일에 이순신이 작성한 장계에 당초의 약속대로 머리를 베지 않았더라도 사력을 다해 싸운 병사는 신()이 직접 본 것으로써 등급을 나누어 결정하고 함께 기록하였습니다라고 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3. 930일 일본군들이 살려달라고 애걸한 내용
 
새벽 유정이 정병 수천 기()를 성 밖에 잠복시키고 명나라 수군 130척도 도착했다. 이때 일본군이 성 위에서 소리치기를 자고로 사람을 모두 죽인다는 말은 못 들었다. 한 면을 터서 우리를 살려달라고 했다. 명나라 장수들이 도독부(유정)와 다투면서 조선군도 일면을 맡아 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하니, 권율은 조선군은 훈련교육을 받지 못하여 일면을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도독부는 양쪽에서 발사하고, 수군을 동시 출동시켜 큰 진영을 이루게 했다. 2경초 일본군이 대포와 총 수백 자루로 난사하자 명군도 응사했다.(“提督選精兵數千騎 匿諸外處 午後由大路 擊鼓吹角 魚貫以至 以示添兵之狀 天朝舟師一百三十艘亦至 賊上城頭呼言曰 自古未聞盡殺人者 願開一面 令我等得活云 然其辭乃慢侮之言也 當日天朝諸將官爭督府曰 可令麗軍當一面攻城 督府下詢元帥 元帥對曰 麗軍不敎之卒 不可獨當一面 督府依前分付 初昏督府令諸營 各擧兩炬火放炮吹角 一時齊作舟師 亦如之山海 卒爲大陣 督府又令諸軍作喊 是夜二更初 賊亂放炮銃數百柄 如去夜狀 天兵亦放炮銃數百柄”)
 
4. 이순신 장군의 전사 시간
 
이순신이 전사한 시각은 기존에는 여명(黎明)으로 되어 있었는데, 예교진병일록에는 오시가 되기 전(未午)’(오전 중)으로 되어 있다.
 
 
글=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1.15

조회 : 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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