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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인터뷰] 정부 대변인 柳仁村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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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부 대변인 柳仁村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현 정부와 이념이 안 맞는 단체장들은 모두 물러나야… 나라면 스스로 물러나겠다』 
   
 『문화예술 단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 적용할 것』

●『장관 방을 줄여서라도 기자실 넓혀 줄 것』
●『신문배달은 잘될 수 없는 부분에만 국가가 지원해야』
●『신문·방송 겸영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출처 월간조선 2008년 4월호)

 

柳仁村
1951년 서울 출생. 한성高·중앙大 연극영화과 졸업. 중앙大 연극영화 대학원 석사. MBC 6기 탤런트 데뷔.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중앙大 연극영화과 전임 교수, 중앙大 아트센터 소장, 이명박 서울시장 인수위원회 위원,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成伶珠 月刊朝鮮 인턴기자 
  

柳仁村 장관의 강연 
 
 柳仁村(유인촌·57)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3월12일 오후 4시 장관실에서 하는 것으로 약속돼 있었다.
 
  기자 일행이 광화문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 막 도착한 오후 3시50분쯤 안내실에서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있을 때 柳장관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기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장관실에서 인터뷰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청사 주변의 한 장소에 가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청사 로비에는 여러 명의 방송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날 오전 7시30분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南時旭·남시욱)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한 제80회 아침공론마당에서 가진 柳장관의 강연 때문이었다. 이날 강연은 柳장관 취임 후 첫 강연으로, 李明博(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을 주제로 강연을 마친 후 柳장관은, 「지난 정부의 코드 인사로 임명된 후 현직에 남아 있는 인사들」의 거취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그냥 자리에 있겠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이른바 「노무현 코드 인사」로 문화예술 단체장에 임명된 사람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柳장관은 또 盧武鉉 前 대통령이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각종 단체장의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해 『정부나 기업이든 경영진이 바뀌기 직전에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인데, 작년 하반기에 이루어진 인사를 보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와 맥을 같이한 분들은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 자체가 괴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柳장관의 이날 발언은 하루 전인 3월11일 한나라당 安商守(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한 세력이 야당과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 요직에 남아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세력은 정권을 교체시킨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직후였기 때문에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게다가 柳장관은 정부 대변인 역할을 겸하고 있다.
 
  柳장관의 「코드 인사」 자진 사퇴 발언이 있던 날, 낮에는 지식경제부 李允鎬(이윤호) 장관이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장들의 퇴진 필요성을 거론했다. 柳장관이 오후 늦게까지 기자들에게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나 같으면 있으라고 해도 나간다』
  
지난 3월12일 오전, 「광화문 문화포럼」 강연회에서 柳장관은 「코드에 안 맞는 인사는 스스로 퇴진」할 것을 요청했다.

  약속시간에서 30분 지나 장관실이 아닌 외부에서 柳장관과 만날 수 있었다. 검은색 계통의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柳仁村 장관의 모습은, 이날 하루종일 뉴스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답지 않게 여유로워 보였다. 달변이었고, 「콘텐츠」도 풍부했다.
 
  그는 『장관 취임 후 공식 인터뷰는 月刊朝鮮과 처음 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기자의 첫 질문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이날 일파만파를 일으킨 「노무현 코드 인사」 퇴진 촉구와 관련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런(노무현 코드 인사 퇴진) 발언을 갖고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건데요. 나 같으면 있으라고 해도 안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게 참 정치적인 것 같아요.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봐도 당연히 나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말입니다』
 
  ―버티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나가고 안 나가고는 본인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죠. 우리가 강제로 나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있을 때 시장이 바뀌면서 저는 아주 편안하게 빨리 정리하고 나와 줬거든요. 뒷사람들이 일을 편하게 하라고.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뒷사람들이 굉장히 불편해요』
 
  ―오늘 아침 강연은 결국 현 정부와 이념이 안 맞는 사람들은 알아서 나가 달라고 하신 것 같은데, 이념이 안 맞는 사람들이라는 게 이른바 「左派 코드」를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左派, 右派의 개념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정치적인 행위죠. 예를 들어 제가 하는 일이 문화체육관광이면 문화체육관광이 잘되도록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돼서 다른 짓을 하면 곤란하잖아요. 그런 면을 얘기하는 거예요』
 
  ―前 정권에 의해 임명됐다고 해서 꼭 現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산영화제 金東虎(김동호) 위원장은 누구도 그만두고 나가라는 소리 안 해요. 계속 일하시라고 하죠. 그분처럼 일하면 돼요. 사실 본인들이 제일 잘 알아요, 이 정부와 같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본인들이 판단을 해야 합니다』
 
 
  『문화예술계에서 나는 힘이 없던 사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각 단체장들의 고유 업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전에 하던 일이나 지금 하는 일이 똑같은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 하고 이야기하는 건 조금 우스운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해야죠. 제 경우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니까요. 고집 피울 이유가 없는 건데요.
 
  지도자가 바뀌면 일단 사표를 내주는 게 순서잖아요. 「나를 더 쓰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써 달라」고 하든지요. 그런 액션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부와) 완전히 반대편에서 공격을 하던 사람들이잖아요. 편파적이기도 했고, 정치적인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억지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본인들이 선택해야 하는 일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뭐하러 힘들게 저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문화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左派가 「문화권력」을 잡으면서 지난 10년간 정권 창출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柳장관은 「문화권력」이 左派에 가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문화권력」이라는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순수하게 가는 게 좋아요. 특히 문화예술계는 정치적이면 안 됩니다. 제가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3년 동안 할 때 서울시장은 야당 단체장이었잖아요. 그때 많은 다른 예술단체의 장은 이른바 정권과 코드가 맞는 힘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렇게 따지면 문화예술계에서 저는 정말 힘없는 사람이었죠. 3년 동안 저는 야당 쪽에 있는, 말하자면 반대편에 있는 단체라는 이유로 「너는 우리 쪽이 아니니까 지원 안 해주고 우리 쪽만 지원할 거야」 하는 식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그쪽도 잘 알고 있어요. 아마 그래서 내가 이번에 장관한다는 데 별로 반대하지 않았을 거예요. 공정하게 했으니까요』
 
 
  인사 청문회의 문제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 때문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바깥에서 본 장관이라는 자리와 직접 경험해 본 장관 자리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글쎄요, 밖에서 봤을 때는 그게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감을 못 했어요. 저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니까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죠. 지금까지 저는 「官(관)」하고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을 때는 官에 기대는 것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들어와서 보니까 예산이 있고, 생각이나 정책들이 실현될 수 있는 자리잖아요.
 
  그동안 피상적으로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정말 중요한 자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장관 임명을 위한 인사 청문회 때 많이 힘드셨죠.
 
  『아무래도…. 그래도 저는 수월하게 한 것 같다고 하데요. 청문회가 진정성이나 도덕적인 것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고, 자질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지만 정치행위이다 보니까 다분히 일방적이잖아요. 그런 것이 좀 위험한 것 같아요』
 
  ―청문회를 직접 체험하면서 「이런 점은 개선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없었습니까.
 
  『개선보다는 제도 자체가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제도는 분명히 필요한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제도를 사람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겠죠. 그게 법이나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말이란 건 그 자리에서 뱉어 버리면 끝이기 때문에 법으로 그 말을 없던 걸로 하자는 게 안 되잖아요』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해명이 미흡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방송 뉴스를 보니까 「하루에 15억원이나 되는 돈을 1억원 단위로 쪼개서 다른 금융사로 이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질문이 나가던데, 답변이 제대로 보도가 안 되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명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얘기는 한 번 나왔다가 바로 쏙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은행에서 그런 방법으로 이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찾아서 넣은 것이 아니고, 은행에서 은행으로 넘어간 거니까 그건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죠. 결국은 그런 것들이 다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거죠.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건데 진실은 가려지고 필요한 것만 사용하니까 문제죠. 그래서 언론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산 사회환원은 오래 전부터 생각한 일
 
  ―청문회 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청문회에서 제가 재산의 사회환원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곧바로 그렇게 말한 것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단을 만들려고 했어요. 제가 공연장을 지었는데 그 공연장이 돈 버는 곳이 아니잖아요. 내가 공연을 공부했고,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했는데, 「내가 죽어 없어지고 나면 과연 누군가가 내 생각과 똑같이 이것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단을 만들어서 공공의 재산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혹시 내가 없더라도 누가 손을 못 대게 말이죠. 내 자식도 이것을 한다는 보장이 없는 거잖아요. 하다가 힘들면 팔아 버리면 끝인걸요』
 
  ―그 시기가 언제쯤입니까.
 
  『1999년 강남구 청담동에 「유시어터」라는 극장을 짓고 난 직후예요. 그 당시 재단을 만들려고 했더니 변호사나 세무사들이 재산이 너무 적다고 말하더라고요. 좀더 재산을 모아서 하라는 거였어요. 재단을 만들고 이사진을 운영하려면 이런 규모 갖고는 잘 안 될 거라고 해서 나중에 하기로 한 겁니다. 일단 재단을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고, 3월 말이나 4월 초쯤 이런 문제로 공식적인 기자 간담회를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유시어터」는 앞으로 어떻게 운영됩니까.
 
  『공연장 같은 것은 후배들에게 무료로 내줄 것입니다. 당장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친구들이 적어도 대관료 걱정은 안 하고 공연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극장 2, 3층이 사무실과 카페로 임대되어 있는데, 계약이 끝나면 그곳을 多문화공간화하려고 합니다. 의견을 타진하고 있는 상태고요.
 
  임대하면 한 달에 1500만원씩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무료로 쓸 수 있도록 다 내놓을 겁니다. 갤러리를 만들어서 누구나 언제든지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판매가 되든 안 되든 기회가 별로 없는 친구들을 위해서 건물 자체를 문화공간화할 생각입니다. 일단 지금은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17代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맡았을 때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열심히 일하셨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리라고 예상했습니까.
 
  『아니에요. 초창기에는 안 나갔는데 인수委 초기에 「언론인 성향 조사」와 관련한 파문이 있었잖아요. 제가 소속된 분과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적어도 우리 분야와 관련된 곳에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 나가서 끝날 때까지는 옆에서 확실히 도와야지」 했던 것이죠. 우리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인수委에 없었거든요.
 
  제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李明博 대통령과 가깝기도 해서 이것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뒤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나선 거예요. 그래서 정리하기 시작한 거죠』
 
 
  청계천 복원도 문화행위
  


  ―적극적인 인수委 활동이 장관 직무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까.
 
  『큰 도움이 되죠. 그때 그것을 안 했으면 지금 일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때 관련 업계, 유관 분야의 업무 보고, 조언 등을 받으면서 과정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요』
 
  ―장관이 되기까지는 누구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데요. 柳장관은 장관 내정자로 확정되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이 있습니까.
 
  『저는 1년 전부터 李明博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 명단에 올랐어요. 서울문화재단에서 퇴임하면서부터 「李明博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 당연히 문화부 장관은 유인촌이다」 하는 얘기들이 많았잖아요. 이름이 거론되고 할 때 감흥은 별로 없었어요. 사실은 거의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막바지에 갑자기 된 거예요』
 
  ―그럼 거의 임명 직전에 알게 된 건가요.
 
  『그렇죠. 신문에만 계속 난 거죠. 원래 거의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결재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바뀐다고 하더군요』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 인연이 돼서 李明博 대통령을 만난 후 지근 거리에서 지켜봐 왔는데, 문화를 주무하는 장관으로서 李대통령의 문화 마인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에 대한 마인드라는 게 어떤 각도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져요. 대통령께서 해온 일이 주로 「건설」인데, 사람들이 항상 그런 일만 해왔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다른 일을 상당히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건설」이라는 이미지만을 갖고 있을 뿐이죠.
 
  제가 문화예술인으로서 그분이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믿고 따라온 것은 그동안에 청계천, 횡단보도, 걷고 싶은 거리, 교통체계 개편, 「서울숲」 조성 등의 일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서울시장 임기 4년 안에 하기 힘든 일들을 다 한 것이거든요.
 
  그것들을 단순히 「건설했다」, 「토목공사했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되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이죠. 청계천을 복구한 것은 그것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많이 변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모르겠지만 향후 10년 정도 지나면 청계천 때문에 사람들 인식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저는 그것이 굉장히 문화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요』
 
  ―청계천 복원 같은 예가 또 있습니까.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를 설치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죠. 그런데 횡단보도를 놓으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편해지고 당당해졌습니까. 이런 것들이 제가 봤을 땐 상당히 문화적인 행위입니다. 꼭 예술을 사랑하고, 오케스트라를 보러 다니는 것만이 문화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술적인 활동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인 마인드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李대통령은 문화예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는 李대통령이 문화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릉선수촌 이전 어렵다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태릉선수촌을 방문하셨습니다. 「李明博 대통령에게는 체육이 없다」는 비판이 있었고, 대통령 취임사에 체육 관련 언급이 없어서 체육계 쪽에서 무관심하다는 불평이 나왔는데. 이런 평가가 태릉선수촌을 가장 먼저 방문한 이유가 됐습니까.
 
  『그런 이유도 있고요, 체육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술계에도 그랬어요. 선거 때 문화예술 관련 얘기를 안 하셨어요. 그것이 정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우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등 민생과 관련된 일들이 시급했잖아요. 대통령께서는 「일을 하는 데 어떤 것을 먼저 하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당장 해결해야 할 민생 문제를 많이 얘기했을 거예요.
 
  문화예술계 쪽은 저희가 많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체육계도 뒤에서 열심히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계셨어요. 실제 준비를 다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취임한 뒤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쪽에만 신경 쓰고 체육계 쪽에는 신경 안 쓸 거다, 하는 선입견이 있었죠. 그러나 체육인들을 위한 조직·예산 등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태릉선수촌 방문은 베이징(北京)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 주려는 차원에서 갔습니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이 왕릉복원 등을 이유로 태릉선수촌 조기 철거를 요청했다가 체육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태릉선수촌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철거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다 보니 그런 얘기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가서 보니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된 것이 꽤 많더라고요. 그 한가운데 태릉선수촌이 있었습니다.
 
  선수촌을 없앤다기보다는 크게 증축 하는 일 없이 개·보수하면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 확실한 代案(대안)이 있어서 능을 복구하고, 선수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두 가지 방안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죠』
 
  ―제2훈련소를 짓고 있잖습니까.
 
  『지금 충북 진천에 제2의 훈련소를 짓고 있는데, 그곳으로 다 내려간다고 하면 또 문제가 있겠죠. 전부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안 될 때는 조금씩 서로 양보해야죠. 태릉선수촌이 48년이 됐습니다. 48년 동안 산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할 수는 없죠. 代案도 없고요』
 
  ―태릉선수촌 시설이 노후돼 열악하고 여자 숙소가 적어서 남자 숙소를 사용해야 하는 여자 선수들이 있다던데.
 
  『시설 보수를 하는데 문화재청하고 갈등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건물을 올린다든지 하는 경우에 문화재 위원들에게 허가받고 심의해야 돼서 선수촌 입장에서는 불편했겠죠. 이제는 협의가 잘돼서 개·보수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 대변인 역할을 맡으셨는데, 申載旻(신재민) 차관이 실질적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저 혼자 다 할 수는 없잖아요. 중요한 문제는 제가 해야 할 것 같고, 국무회의 등은 주로 申載旻 차관이 할 것 같습니다』
  


 
  실세 차관과의 사이
 
  ―申載旻 차관에게는 「실세 차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다 실세인데요, 뭐. 저는 실세 아닙니까(웃음). 일은 나눠서 해야죠. 혼자서는 다 못하고요. 차관이 둘이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부처가 큰 부처가 된 거죠. 보고를 다 받으려면 아직 멀었거든요. 워낙에 일이 많기 때문에 두 차관이 나와서 실질적인 일을 진두지휘해야죠』
 
  ―정부 대변인으로서 한반도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제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요즘에 무엇을 건설하든 환경 파괴, 문화재 파괴를 하면서 공사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절대 그렇게 안 할 것이거든요. 국민적으로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밀어붙이겠습니까. 정부의 큰 공약이잖아요. 국민과 한 약속인데 슬그머니 접을 수는 없고요.
 
  공청회를 여러 번 열어서 의견을 많이 듣고, 조사를 더 많이 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충분히 없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리부터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은 됩니다. 어쨌든 공약 사항으로 나온 것이니까 분명히 점검을 더 할 것입니다』
 
  ―李明博 정부에 대해서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아냥이 있는데.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지만, 재산을 많이 갖고 있다면 그만큼 사회적인 책임과 역할을 다 해야지요. 그런 것들은 무조건 부정하고 정권 시작부터 「일부 계층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다」라고 비판을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정부는 「농민·노동자·서민 등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수없이 얘기했는데, 과연 농민·노동자·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나요. 결국은 더 힘들어졌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예단하고 그런 쪽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결국 국가가 하는 일이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니까요. 힘있는 사람들은 내버려 둬도 잘살 것이고요. 그런 역할만 분명히 잘 하게 해주면 1년 후면 그런 얘기는 다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관 방 줄여서라도 기자실 넓혀 줄 것
 
  ―盧武鉉 정권 말기에 기자실 폐쇄를 바깥에서 지켜보셨을 텐데, 그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기본적으로 뭔가를 통제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가장 자유스러운 분야잖아요. 그것을 정리·정돈하고, 어떤 틀에다 넣어 두는 것은 자유스러움을 앗아가는 것이니까요』
 
  ―장관실 옆에 기자실을 두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실행할 생각입니까.
 
  『기자실이 지금은 7층에 있거든요. 너무 멀어요. 1층에 두면 좋겠지만 공간이 없어서, 장관실이 있는 3층에 보좌관실도 있고 해서 가능하면 같은 층으로 옮길까 합니다. 지금 기자실로 쓰는 곳은 옛날 건물이라 너무 좁아서 그쪽을 좀더 쓰게 하기 위해 지금 제 방 있는 데를 더 내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취임사에서 「순수예술에 경제적인 논리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李明博 대통령이 앞세우는 실용의 개념과 상치되는 것 아닙니까.
 
  『상충되죠.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인 논리로 해결될 수 없는 분야예요. 잘되지 않는 분야에 경제적인 논리를 들이대면 안 되죠. 잘된 다음에 하면 모르겠지만. 순수예술 분야는 계속 죽고 있잖아요. 그 부분이 좀더 튼튼해지고 강해지면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경제적인 논리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문화산업의 콘텐츠가 되니까요.
 
  우리는 순수예술 쪽에 투자를 안 해서 콘텐츠가 없어요. 몇 개 쓰면 바닥 나요. 작가도 모자라고, 화가도 그렇고요. 결국 지금 당장에는 돈을 쓰는 것이지만,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돈을 벌어들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게 튼튼해져야 다른 쪽들이 모두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정부 지원에 기대서 생존하는 문화 예술 단체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 단체들이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있을 때 저는 그렇게 했고, 예술가들도 그걸 원해요. 예술이 돈 준다고 잘되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배고파야 잘되죠.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지원해 줘야 하는 것이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죠.
 
  잘할 수 있는 곳에 확실하게 지원을 해서 꽃 피울 수 있게 해줘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선택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예술은 다 똑같아질 수는 없어요. 분명히 자기 철학과 개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어떻게 성공하느냐는 돈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관광, 기본적인 것부터 고쳐 나갈 것
 
  ―관광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데 국내 관광을 활성화할 대책을 마련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정부차원에서 대통령께서 직접 챙기고 싶어 하는 분야예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관광대책회의가 있습니다. 일단 법·제도·세제 등의 문제를 개선해서 관광업을 하는 분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외국에 아직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더 많은 국가홍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뭘 알아야 오는데 그런 것들이 부족했거든요. 우리나라가 오천년 역사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잖아요. 도시에서는 특히 더 그렇고. 그런 것들이 볼거리·먹거리·살거리 등인데, 그런 것들을 다양하게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많은 소재를 발굴해서 관광객들이 충분히 즐기고,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콘텐츠 개발을 많이 해야죠』
 
  ―광화문에 서울시내를 관광하는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회사 부근이라 그곳을 자주 지나가는데, 서울시내 관광안내소와 버스승차권을 파는 곳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한 곳에서 관광안내와 승차권을 팔 수 있는데도 말이죠. 관광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인드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불편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표지판이 잘 안 되어 있고, 인쇄물을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은 그런 것들이 참 잘돼 있더라고요. 어떻게든지 돈을 쓰게 하려고 매우 친절하게 해줍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제 일본 여행 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됐죠. 우리도 조금 전에 金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기본적인 것만 바꾸면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는 앞으로 계속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제한적인 허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문도 살아날 방법이 있어야죠.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신문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반대하는 쪽은 朝·中·東(조·중·동)의 독점적인 신문사가 방송까지 장악해서 언론권력이 될까 봐 염려해서 못 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여러 가지 제한 상황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조건을 좀 달아서 허용하면, 광고시장이 넓어지고 생산유발 효과가 있겠죠. 일단 자율화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입니다』
 
 
  닮고 싶은 문화부 장관은 이어령
 
  ―신문유통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원칙적으로 정부에서 언론에 뭘 지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언론이 지원을 받으면 안 되잖아요. 언론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자유롭게 취재를 하고, 딴소리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원칙은 지원을 받으면 안 되죠.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환경이 지원을 안 받고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니까 적어도 공공에 관련된 부분은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조선일보·중앙일보는 여기에 참가 안 하고 있잖아요. 이미 자체 지국을 다 갖고 있고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요.
 
  신문사가 섬이나 오지 등 그곳 한 군데에 신문을 가져다 주기 힘들 때는 그것은 당연히 국가가 해줘야 하는 것이죠. 전 국민이 신문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가 해줘야 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굳이 없애자고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 자체는 어쨌든 신문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원칙은 배달이 잘될 수 없는 부분에서만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 줬으면 하는 겁니다』
 
  ―문화·관광·체육정책 수립을 위한 외부 자문 그룹을 혹시 구성해 놓고 계십니까.
 
  『지금은 없어요. 앞으로 구성할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분야별로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자문 그룹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관직을 떠나게 되면, 어떤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부지런히 열심히 뛰어다녔다. 많이 이루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해보려고 많이 뛰어다녔다」는 말이나 들으면 다행이죠, 뭐(웃음)』
 
  ―역대 문화부 장관들 중에 닮고 싶은 분은 있습니까.
 
  『하도 많이 바뀌어서(웃음). 이어령 장관이 상당히 문화적인 장관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리는 주로 정치적인, 어찌 보면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실세가 많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개가 그랬죠. 실제적인 도움보다는 정치적인 역할을 많이 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어서, 사실은 좀 어려운 자리였죠』
 
  ―그만두면 배우로 돌아가실 겁니까.
 
  『돌아갈 수도 있죠. 대중적인 매체는 완전히 늙어서 분장이 필요 없어졌을 때, 그때 다시 영화나 TV를 할 것입니다. 무대는 할 수 있으면 간간이 해야죠』
 
  ―장관 재직 중에 연극에 출연할 계획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못 하죠. 제가 얼마나 장관을 오래하겠어요. 조금 참으면 되는데』●

입력 : 2008.04.24

조회 : 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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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의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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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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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태 (2008-07-20)   

    6.25전쟁에 참전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되, 그에대한 예우와 지원은 "참전 유공자 예우에관한 법률에 의하도록함" 08년10월부터 발효 됨.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김일성亂인 6.25참전용사에 대한 국가 유공자 인정에 대해 여러분 모두 기뻐 해주세요. 6.25 참전 용사이신 저의 부친해병대 하후12기 조한영외 진해에 생존해 계시는 700여 참전용사들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다른 지역 6.25참전용사들도 마찬가집니다.

  • 조정태 (2008-07-20)   

    日王을 천황으로 우리 스스로 걔를 높여 부르면 어떻합니까? 일왕 걔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백제의 후손으로 일본종족하고는 아무관련없는 한국인으로 이번 방한 할때 잡아서 전범으로서의 책임과 대한민족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준 걔는 반드시 국내법에 따라 처단을 해야한다. 그가 한국을 방한다니.. 무산되지 않도록 살살 꼬셔서 목을 반드시 쳐야한다. 계획은 치밀하게 세워야한다.

  • 조정태 (2008-07-16)   

    이 기자님도 나 원 참! 딱하기도하네. 푸른 지구별 최대의 사이비 교주인 김일성에다 누구누구를 비교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아요. 기독교 집구석에서 자란 김일성은 애비 김형직이가 기독교도로 그 귀신 기돗발이 얼마나 쎈지 김일성은 천수를 누리고 꺼꾸러져도 즈거 귀신 곁으로 가서 하늘나라에서 지금도 행복하게 자빠져 있고, 그 집구석 4대 증손자 새끼가 홍콩에 잠시 보일때 얼굴에는 개기름이 자르르하고 뱃대지 삼겹살하며, 얼마나 잘 처먹었는 목이 안보이고 몸뚱아리와 커다란 얼굴 뿐이데.. 교주들 처단없이 지금 무슨 말이 통할 수 있습니까?

  • mrs lee (2007-10-25)   

    일본 관광객으로부터 고궁 입장료 더 받자는 이기자님의 기발한 제안 너무 마음에 듭니다. 돈이 많든 적든 그건 별개의 문제고 다문 십원이라도 더 내면서 일본이 이 나라 왕실과 궁궐을 어떻게 말살 하였는가 자기들 조상이 이땅에 무슨짓을 하였는가 똑똑히 알게할수 있을 것입니다,

  • 캉가루 (2007-10-25)   

    백두산 절반 팔아먹은 애기에 해당하는 자 가 남한에도 있다네요.어떤 지방에서는 슨상님이라고 하고,후레 자식이라고 하는 그 자가 혹시 아닙니까요?고궁 입장료 문제도 참으로 좋은 발상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한알 파이팅 !

  • 웃기는것 (2007-10-25)   

    독도 금 잘못그어서 문제야기해놓고 선거표를 위해 반일감정 부추기네요.

  • 뚝배기 (2007-10-25)   

    세상은 여러사람이산다 애독자라칭하신분 장편의 글을남기셨는데 지나친 감성적대응과 정치권에 너무편향적입니다 대안은없고 비방과 안일한생각만이난무한것이 역시딴나라당냄새가물씬납니다.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이라크에서 보았듯 대립적 세력을 이용해 손쉬운전투를 즐깁니다 한반도 또한 언제나 미국의지로 한국을 이용해 전쟁을 다시 일으킬 소지는 충분한만큼 미국에 내몸을 다맏기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이떠나는것보다 더위험한것이지요.

  • 뚝배기 (2007-10-25)   

    일본또한 너무 겁을내는데 최종 전면전으로 실제 전쟁난다고 칩시다 한국이과거 갑오경장 이후처럼 나약하지도않고 전쟁에져도 일본치하에 들어가지도않습니다 일본또한 약국으로 국제 경쟁력을 잃어 한국의 후손에겐 최소한 일본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않고 독도를 수호한채 국가재건을 다시할수 있습니다. 일본도 바보가 아닌이상 그점을 잘알기땜에 전쟁이 일어나긴어렵죠. 노통 이번에 잘했습니다. 정치인들 정신차리라고 하기이전에 본인이정신차려서 말로아닌 선두에서 노통에 힘을 실어주는것이 어떨런지!

  • young026 (2007-10-25)   

    ...서울 사수한다고 녹음방송 틀어 놓고 도망간 사람이 누구였죠? 게다가 환도 후에 자기가 버려 두고 간 시민들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부역자로 몰아 때려잡았으니, 아무리 잘 봐 줘도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그런데 그 양반이 『나는 여기서 백성들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발자국도 못 물러선다』라... 대전 성남장 여주인 김순덕씨가 웃을 일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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