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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문화

롯데관광 金基炳 회장의 對北접촉 비화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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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관광 金基炳 회장의 對北접촉 비화 - 내가 만난 북한실세 김달현과 최승철 
 
『노동당 부부장급 40여 명에게「인민들 이밥에 고깃국 먹이는 데 얼마나 든다고 못 하냐, 반성하라」고 강연했다』 
   
 『롯데관광의「롯데」로고 사용문제는 롯데 측과 대화로 풀었으면…』
 
金基炳
1938년 함남 원산 출생. 경기高·한국외국어大 영어과 졸업. 서울大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한국외국어大 총학생회장, 내무부 행정사무관, 상공부 기획지도국장, 동화면세점 회장, 미림학원 이사장.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ksdhan@chosun.com
 
김달현의 다급한 쌀 지원 요청

 
 1991년 6월2일,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북한대사관. 남북한 관광협력사업 논의를 위해 북한대사관을 찾아간 롯데관광 金基炳(김기병·69) 회장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평양에서 온 인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전에도 金회장은 남북한 관광협력사업 논의를 위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간 경험이 있었다.
 
  그날 金회장을 맞이한 사람은 당시 북한 정무원 부총리였던 김달현이었다. 김달현은 金日成의 친척으로 당시 북한의 개방을 주도하는 실세였다. 훗날 경제발전을 위한 개방을 주도하다가 숙청된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달현은 그 자리에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으며 「쌀 지원」을 요청했다.
 
  『공화국은 쌀이 부족하다. 연간 부족분이 200만t에 달한다. 양권으로 배급하고 있는데 해결 못 하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다. 그래서 쌀을 구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전에 일본과 무역을 좀 했는데 대금을 갚지 못한 적이 있다. 우리를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
 
  김달현이 얘기하는 북한의 부족분인 200만t의 쌀은 당시 캘리포니아産 쌀을 기준으로 할 때 6억 달러의 비용이면 해결이 가능한 양이었다고 한다. 金회장은 해결 방안으로 남북한 관광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 남한에 오는 관광객이 400만 명 정도다. 판문점을 통해서 개성관광이든지 평양관광이든지 3박4일이나 4박5일짜리 관광을 열어 주면 그 정도는 나 혼자라도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다. 400만 명이 한국에 들어와 쓰는 돈이 한국은행에 집계되는 액수만 해도 60억 달러에서 85억 달러다.
 
  호텔이나 면세점 등 집계가 가능한 곳만의 액수다. 보통 이 집계의 두 배 내지 세 배를 쓰고 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400만 명 중에서 10%만 북한을 관광해도 그 돈은 해결된다. 40만 명이 2000달러씩 쓰면 8억 달러 아니냐. 쌀 부족분은 충분히 해결되는 문제다』
 
 
  남한의 경제개발 성공 사례 설명
   
  金회장은 이어서 남한의 경제개발 성공사례 등 경제상황을 설명했다. 김달현은 메모까지 해가며 경청했다. 金회장은 5·16 후 우리도 일본에서 쌀 30만t을 꿔다 먹었던 사례를 들려 주었다.
 
  『우리도 5·16 이후 보릿고개 때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쌀 30만t을 꿔다 먹었다. 조건은 10년 후에 현물로 갚거나 아니면 국제 시세로 가격을 쳐서 돈으로 갚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10년 후에는 남한도 쌀이 남아돌았다. 현물로 갚겠다고 하니까 일본은 자신들도 남아도는 쌀을 주체 못 하니까 없던 걸로 하자고 했다. 쌀을 주지도 못하고 돈도 안 받겠다고 해서 그걸로 끝난 거다』
 
  金회장은 김달현에게 「한국 정부에 쌀 지원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북한도 대동은행에서 보증을 서든지 해서 남한 정부에 쌀 지원을 요청해라. 내가 정부에 전달해 줄 수 있다. 지금 남한은 쌀이 남아 돈다. 쌀 보관에 연간 예산이 5000억원 들어간다. 북한으로 쌀을 지원해 주면 남한도 5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는 셈 아니냐.
 
  우리가 일본과 했던 것처럼 10년 후 현물로 갚거나 국제 시세로 계산해서 갚는 조건으로 하면 된다. 그때 가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남한도 안 받을 수 있다. 문서로 써달라고 하는 것은 정부 재산이라 숫자는 맞춰 놔야 하기 때문이다』
 
  金회장은 남한사회의 계층 간 문제, 아직도 남아 있는 빈곤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긴 대화 후 두 사람은 남북한 관광협력사업에 대한 비망록을 작성하고 서명한 후 헤어졌다.
 
  金회장은 귀국 후 김달현과의 접촉 사실과 대화 내용을 관계 당국에 전달했다.
 
  金회장이 김달현을 만났을 당시는 盧泰愚(노태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經協(경협) 분야에서의 南北(남북)관계는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988년 7월 남북한 간의 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간주한다는 「7·7 선언」이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커다란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남북이 당장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공동인식 아래 상호 인정, 군사적 불가침,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내외에 천명한 남북한 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진 것은 1991년 12월의 일이다.
 
 
  노동당 간부들을 상대로 강연
 
  남북한 經協 최초의 성과로 알려진 대우의 對北합영사업은 1992년 10월에 시작된다. 당시는 오히려 東유럽 붕괴 등의 영향을 받아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산다」는 군중대회가 평양 곳곳에서 열리던 때였다.
 
  金회장은 관계 당국에 북한 주민 접촉 사실을 보고한 얼마 후 북한 김달현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베이징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한 이야기를 당 간부들 앞에서 그대로 해줄 수 있느냐. 당 간부들을 모아 놓을 테니 평양으로 와서 하나도 빼놓지 말고 이야기를 해달라』
 
  곧바로 초청장이 도착했는데 그해 11월에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金회장은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정부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 가서 북한 노동당 간부들 앞에서 우리의 실정을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라』면서 『우리가 북한을 흡수 합병할 능력이나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그 관계자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남북이 화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密使(밀사) 수준의 평양 방문이었네요.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서 갔습니다. 메신저였으니까 「밀사」라는 말을 써도 되겠네요. 다녀와서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우리 정부에 다 전달해 주었습니다』
 
  金회장은 1991년 11월9일부터 16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다.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들어간 金회장은 순안비행장에서 김달현의 영접을 받은 후 능라도경기장 부근에 있는 흥부초대소로 안내됐다. 체류 중 金회장의 안내를 담당한 이가 최승철 現 아태 부위원장이다. 최승철은 최근 성사된 盧武鉉·金正日 정상회담 사전접촉에서 북한 측 카운터파트로 활동한, 북한 통일전선부의 실세다.
 
  ―베이징에서 김달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노동당 간부들에게 전했습니까.
 
  『노동당 부부장급 간부 40여 명이 모였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 김달현 부총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 했습니다. 게다가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소망은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따뜻하게 먹이는 일일 텐데 돈도 얼마 안 드는 일을 왜 못 하냐, 반성해야 한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다음해인 1992년 7월에 김달현을 단장으로 북한 경제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는데 金회장의 평양 방문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관련이 많죠. 제가 한국의 정세를 설명한 후 노동당 간부들 앞에서 그랬어요.
 
  「한국의 경제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 국민들의 삶은 어떤지를 직접 와서 봐라. 여기 계신 분 중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내려와 달라. 내가 남한에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내려올 거라고 말하겠다. 절차를 밟자」
 
  그랬더니 박수로 다 호응을 했습니다. 그 이듬해 김달현 부총리와 그 일행들이 서울을 방문하게 된 거죠. 그때 최승철 부위원장이 함께 왔습니다』
 
  ―최승철과는 1991년 만남 이후 계속 교류를 해왔습니까.
 
  『그럼요. 몇 번 만났습니다』
 
  ―관광사업과 관련해서였습니까.
 
  『네, 그래요』
 
  ―남한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최승철을 만나게 해달라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제가 이런 얘기는 月刊朝鮮과 처음 하는 거예요. 최승철 부위원장과 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김달현 숙청·자살說은 사실과 달라』
   
  ―1992년 이후 북한 측 인사들과 교류를 계속해 오셨는데 명목은 뭐였습니까.
 
  『관광사업이죠. 「한반도를 세계의 관광허브로 만들어야 하고, 남북이 협력하면 그 일이 가능하다는 제 지론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관광허브를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오셨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던 거네요.
 
  『아직은 그렇죠』
 
  ―김달현이 한국을 다녀간 뒤에 숙청돼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숙청이라고 하는데 확인된 게 아닙니다. 「비날론 공장」 총사장으로 갔는데 그게 우리로 치면 포철보다 더 비중 있는 회사예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연형묵도 그곳에 있다가 총리로 왔잖아요. 김달현은 金日成 주석의 가까운 친척입니다. 金주석을 「아재」라고 불렀어요. 金正日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자살했다고들 하는데 건강이 나빠지면서 비날론 공장으로 갔다가 거기서 病死(병사)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알려진 대로 개방에 앞장섰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숙청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북한이 정말 개방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제가 북한에 갔을 때 당 간부들한테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과 남한의 경제발전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원산 출신인데 남쪽 자랑이나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지 않느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다. 일단 한번 남쪽에 내려와서 경제 실상을 제대로 보고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 돌아가면 남한 정부에 북쪽의 경제시찰단에 대한 방문허가가 나도록 요청하겠다」
 
  모두들 진지하게 경청하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개방하려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해에 한국을 방문한 겁니다』
 
  ―지금 북한은 개방을 안 하고 있는데요.
 
  『그런 시각으로 보면 안 됩니다. 개방을 안 한 게 아닙니다. 개방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거죠. 조금씩 개방하고 있잖아요. 운동선수가 오가고, 인적 교류 등 수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그게 서서히 개방하고 있다는 겁니다』
 
 
  金正日의 대리인 최승철
 
  金基炳 회장은 1992년 7월에는 베이징에서 「노동당 39호실」 책임자 최정근 회장을 만나 민간차원에서 남북 관광교류 및 협력사업을 협의하는 등 북한과의 접촉을 계속해 왔다.
 
  2003년 9월에는 「유경체육관」 준공식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고, 2005년 3월에는 철도공사와 합작법인인 「KTX관광레저(주)」를 설립, 개성열차 관광사업을 위한 對北접촉 승인을 받았다. 2005년 6월에는 중국 선양(瀋陽)에서 아태 김정철 실장 일행과 만나 남북 관광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소문 없이 진행되던 롯데관광의 對北 접촉이 요란스럽게 언론에 등장한 때는 2005년 9월13일이다. 북한의 아태가 개성관광 협의를 위한 현대아산과의 개성 접촉에서 「더 이상 협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현대아산과 더 이상 개성관광 협의가 없다』고 밝힌 이날, 아태는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문제를 협의하자」는 공문을 정식으로 보내왔다. 북측이 개성관광과 관련해 롯데관광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낸 것은 이날이 처음이지만, 金회장은 그 보름 전쯤에 평양을 방문했다가 최승철 부위원장으로부터 개성관광사업 참여를 권유 받았다.
 
 
  『개성관광사업, 롯데관광이 하라』
   
  ―2005년 8월 말 「평양 골프장」 개장 기념으로 열린 골프대회에 참석했다가 당시 리종혁 아태 부위원장으로부터 개성관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다면서요.
 
  『8월29일이었는데, 리종혁 부위원장이 저한테 「최승철이를 잘 알지 않느냐」고 묻는 거예요. 「조금 안다」고 했더니 「뭐, 오래 전부터 잘 안다고 하던데요」 하면서 「최승철이는 金正日 위원장한테 수표(서명, 사인)도 받아 오고 하는 실세」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오늘 위원장께서 결심을 하셨기 때문에 金회장에게 좋은 말씀이 있을 거요. 나는 거기에는 못 가고 저녁 조직은 최승철 부위원장이 할 거요. 만나서 최부위원장의 이야기를 잘 들으세요. 좋은 일이 있을 거요」 하는 거예요. 그날 저녁 최승철 부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날 저녁에 최승철이 개성관광사업 참여를 권했던 거군요.
 
  『최승철 부위원장이 「金基炳 회장님은 1991년 평양 방문 때 뵙게 된 후부터 이듬해 서울에 갔을 때도 신세를 많이 졌고, 늘 존경하고 있다」고 인사말을 한 후 그러는 거예요.
 
  「공화국에서 중대한 결정을 했다. 金正日 위원장의 지침을 받았다. 개성관광 사업은 롯데관광 金基炳 회장이 맡아 달라는 게 공화국 방침이다. 개성관광은 공화국 주도로 할 것임을 내외에 이미 천명한 바 있다. 공화국은 롯데관광으로부터 개성관광 열차사업을 요청받았는데 검토결과 열차관광은 물론이고 육로를 통한 관광사업,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 등 개성관광사업권을 관광전문 기업인 롯데관광에 줌으로써 공화국의 관광사업을 새롭게 전망적으로 조직하기로 했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승낙했습니까.
 
  『아니죠. 리종혁 부위원장이 사전에 그러더군요, 위원장 말씀 나오면 경의를 표해 달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金正日 위원장의 배려를 전달해 준 최부위원장의 말씀은 고마우나, 현재 현대아산이 개성 시범관광을 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현대아산은 김윤규 문제로 내홍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관광이 개성관광사업에 뛰어들면 마치 남의 사업이 탐나서 가로채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중차대한 일은 당국의 승인을 받아서 해야 할 일이며, 회사의 임원진들과도 의논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므로 9월 중순께 연락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부위원장은 「개성관광사업단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며, 이를 내외에 밝힐 것이므로 아무런 오해의 여지가 없고, 롯데관광에는 어떤 부담이나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개성관광은 북한 관광사업의 핵심 사업
 
  ―평양을 다녀온 지 채 일주일도 안 돼서 9월 초에 개성에서 북측과 만나 개성관광사업을 의논한 것으로 아는데요.
 
  『맞아요. 「9월 중순께 연락하겠다」고 했더니 최승철 부위원장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9월3일부터 5일까지 개성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그때 만나서 관광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자는 겁니다. 이게 상부 지시라는 거예요. 최부위원장이 「이미 일정도 합의가 된 거니까 그렇게 지켜 주세요. 내일 아침(8월30일) 돌아가실 때 순안비행장에 우리 아태 김정철 실장이 초청장을 가지고 나갈 테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그 다음날인 8월31일에 통일부에 訪北 승인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은 겁니다』
 
  ―2005년 9월3일 개성 만남에서는 개성관광 사업과 관련해서 어떤 것을 협의했습니까.
 
  『개성관광은 공화국 주도로 추진하겠다는 북측의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한 관광 개발에 관한 것은 롯데관광하고만 하겠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북한 관광사업 독점권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런 북측의 뜻을 공식적으로 남한 당국에 문건으로 보냈습니다. 그게 9월13일이고, 그 사실이 보도되면서 발칵 뒤집혔던 겁니다』
 
  그해 9월13일 개성관광사업과 관련한 북측 아태의 「현대아산을 배제하고 롯데관광과 사업 논의를 하겠다」는 입장 표명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논란을 가져왔다. 「북한과 관련한 사업에서 현대 측에 독점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롯데관광이 개성관광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상도의上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주조였다.
 
  롯데관광은 같은 해 10월10일 국민적 정서와 국민 여론을 이유로 사실상 개성관광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롯데관광이 개성관광사업과 관련한 북측의 제의를 거부했는데도 북측이 계속 롯데관광과 개성관광사업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한 이유는 뭡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성관광사업이 북한 관광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광전문 기업인 롯데관광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이전부터 접촉도 있어 왔고요. 우리보다 더 일찍 관광사업과 관련해 북측과 접촉해 온 기업은 없습니다』
 
  ―개성관광사업이 금강산관광보다 더 핵심입니까.
 
  『아주 핵심이죠. 금강산관광사업은 주민 접촉 없이 산에 대한 관광으로 끝나지만 개성관광사업은 다릅니다. 개성에서 평양도 가야 하고, 거기서 백두산도 가야 하고, 묘향산도 가야 하고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게 돼 있습니다. 닫힌 상태에서 산만 관광하는 게 아니라 북한 주민들과 직접 부닥칠 수밖에 없는 사업입니다. 북쪽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서 관광지를 개발하고, 관광객 수요에 맞게 관광 인프라를 발전시켜야 할 중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관광전문 기업이 필요했던 거라고 봅니다』
 
 
  『현대와 롯데가 공동으로 하라』
   
  ―개성관광사업은 현대아산에 독점권이 있는 것 아닙니까
 
  『현대가 소위 7대 독점사업을 북한과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이 독점사업권을 보니까 개별 사업을 추진할 때는 양측에서 법률 제정 등 제도가 확정된 후에 별도 합의서를 작성해서 시행하게 돼 있어요. 북한 측 주장은 「개성관광 지구의 사업은 그런 것이 하나도 안 돼 있고, 합의서를 써준 적이 없다」는 겁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특구에 대해서는 제도가 다 됐기 때문에 합의서를 만들어서 사업을 했는데, 개성관광사업에 대해서는 합의서를 써준 적이 없다는 겁니다. 교류협력법에는 그 합의서가 있어야 관광사업자증을 해주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부는 그런 합의도 없는데 덜컥 사업자증을 내준 거라는 게 북측 주장입니다』
 
  ―그래도 개성관광사업은 현대아산에 독점권이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종석 장관 재임 때 여러 번 만나서 북측의 생각을 전해 줬어요. 李장관은 현대 현정은 회장과 윤만준 사장에게 「롯데관광과 협의해 보라」고 했다고 해요. 李장관이 현대아산 측에 「북측이 당신네들과는 안 한다고 하고 롯데관광과만 하겠다고 하는데, 개성관광을 이대로 두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 개성관광을 해야 하니까 롯데관광과 협의를 하라」 말했대요.
 
  저한테도 「이 사업은 롯데관광 혼자서는 절대 못 합니다. 현대아산과 대등하게 일대일로 함께 하시죠」라고 했습니다. 李장관도 나중에 우리 롯데관광과 북측의 남북 관광사업협력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을 알고는 놀랐습니다』
 
 
  金潤圭는 관련 없다
 
  ―현대아산과 롯데관광이 함께 하라는 게 통일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죠.
 
  『제가 알기로는 최소한 최근까지 공식 입장입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입각하고 나서 제가 금년에 북측에 연락해서 「롯데관광 혼자서 개성관광사업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현대아산과 함께 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쪽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우리 정부도 북쪽의 그런 입장을 공식 문건으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이상 진척이 없는 겁니다』
 
  ―만약 개성관광을 시작했다면 경영자로서 판단하기에 흑자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국내 여행업체에서 유일하게 코스피에 상장된 회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상업적으로 수지 안 맞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롯데관광의 공식 입장은 「개성관광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겠다」는 입장입니까.
 
  『그런 이야기입니다. 현대아산과 함께 하든 단독으로 하든』
 
  ―민화협은 왜 지난 6월 「남측의 아무한테도 개성관광사업권을 안 주겠다」고 한 겁니까.
 
  『지금 개성관광 문제가 불거진 지 햇수로 3년이고 만으로 2년이 지났습니다. 북측에서는 남측이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된 거죠. 최종적으로 남쪽에 개성관광사업을 롯데관광과 현대아산이 같이 해도 좋다는 뜻을 전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척이 안 되고 있으니까 속이 상한 거죠. 그래서 산하기관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거라고 봅니다』
 
  ―북한도 개성관광사업을 간절히 원하는 군요.
 
  『당연히 원하죠』
 
  북한 측이 개성관광사업의 파트너로 롯데관광을 지목하자 항간에는 당시 개인 비리와 관련 현대아산에서 물러난 金潤圭(김윤규) 前 현대아산 부회장이 롯데관광을 뒤에서 돕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찍부터 북한에 진출해 있던 평화자동차 朴商權(박상권) 사장도 롯데관광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金潤圭 前 현대아산 부회장을 잘 아십니까.
 
  『잘 모릅니다』
 
  ―金潤圭 前 부회장이 롯데관광의 개성관광사업 참여와 관련 역할을 하는 것처럼 알려졌는데요.
 
  『그게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김윤규 前 부회장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북한과 개성관광사업 외에 다른 사업을 논의한 것은 없습니까.
 
  『저는 北·美 관계나 北·日 관계가 정상화되면, 「평양 러시」가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되는데 제가 부동산 개발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습니다. 관광 수요를 위한 주상복합빌딩 건설이나 무역센터 건설 등 그때를 대비한 이런저런 일에 대해서 그쪽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언은 했습니다』
 
 
  롯데그룹과의 법정 소송
 
  최근 財界(재계)의 화제는 롯데家의 집안싸움이다. 롯데 신격호 회장과 친동생인 농심 신춘호 회장의 법정 다툼 등 롯데家의 분쟁은 잊혀질 만하면 가족 간 새로운 분쟁이 발생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는 金基炳 회장이 그 가족 간 분쟁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金회장은 롯데 신격호 회장의 매제다. 辛회장의 10남매 중 막내인 辛貞姬(신정희·61)씨가 金회장의 부인이다.
 
  사단은 롯데그룹이 최근 여행업에 진출하면서 벌어졌다. 지난 7월 롯데그룹이 일본 최대 여행사이자 全세계 3大 여행사인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출범시킨 것이다.
 
  롯데JTB의 출범은 국내 여행업계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회장 신중묵)가 지난 7월18일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을 비난하는 탄원서를 盧武鉉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로, 여행업계는 롯데그룹의 여행업계 진출에 극력 반발하고 있다. 「영세 여행업자들이 거대 자본 앞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金회장으로서는 롯데그룹의 여행업 진출로 벅찬 경쟁상대를 만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로고 사용 문제다.
 
  1973년 9월 金회장은 손위 처남인 롯데 신격호 회장과 「롯데」라는 이름으로 관광여행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해서 1974년 출범한 여행업체가 롯데관광이다. 이때부터 롯데관광은 「롯데」라는 이름과 롯데그룹 마크를 사용해 왔다.
 
  형식상 롯데 계열사로 편입된 적도 있었지만 롯데관광은 롯데그룹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기업활동을 펼쳐 왔다.
 
  문제는 롯데JTB의 출범이다. 1973년 10월 「롯데관광」이라는 이름은 상호로 등록됐기 때문에 시비의 대상에서 빠질 수 있었지만, 롯데그룹의 로고 사용이 문제됐다. 롯데그룹이 롯데JTB를 출범시키면서 롯데관광 측에 로고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로고 사용 문제
 
  ―롯데와의 로고 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제가 부덕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가족들 보기도 부끄럽고 직원들 보기도 그렇고요. 아시다시피 롯데관광은 1973년 10월에 상호 등록을 했습니다. 등록 당시에 손위 처남인 신격호 회장에게 이야기했어요.
 
  「회장(신격호)께서 호텔업을 하고 또 유통업을 크게 할 계획으로 있는데, 그러면 필수적으로 외국 관광객이 필요하다. 관광호텔과 유통업에 전념하시고 저는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롯데 이름을 단 관광여행업을 맡아서 하겠다」고 해서 합의를 한 것입니다.
 
  그때는 여행업 허가가 나지 않을 때였는데 집사람이 1971년부터 여행업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월드여행사」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 회사의 이름을 롯데관광으로 바꾼 겁니다. 그렇게 합의해서 오늘에 이른 겁니다』
 
  ―출발부터 롯데의 계열사가 아닌 독립된 회사였나요.
 
  『실질적인 내용은 제가 창설적으로 만든 독립된 회사였고, 형식적으로는 계열사였습니다. 계열사로 가다가 1986년에 주거래은행 및 여신관리법이 나왔습니다. 최종적으로 2005년에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정식으로 계열분리가 됐다는 확인서를 받았습니다』
 
 
  35년간 피땀 흘려 롯데관광 키워
 
  ―이 문제가 롯데그룹 경영권 이양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까.
 
  『우선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오늘날 美 「포춘」誌 선정 500大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기업을 크게 키운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롯데그룹이 소탐대실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제 부덕이 먼저고요. 롯데그룹內에서 아랫사람들의 과잉 충성도 한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일전에 한 언론보도를 보니까 제가 롯데그룹 고위 인사를 자처하고 다닌다는 식으로 롯데 일부 사람들이 말을 했다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만약 롯데 일부 인사가 그렇게 저를 음해했다면 그들의 행태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법리적으로도 독일 상표법 제21조 규정에 의하면 타인이 등록상표를 사용한 사실을 알면서도 5년 이상 묵인한 경우에는 등록권자가 상표 사용에 대해 권리행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정당하고 적법한 합의에 의해 지난 35년간 롯데관광 상호와 로고를 사용해 온 저희로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1973년에 창업하고 35년간 롯데라는 이름에 편승해 손쉽게 회사를 키운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상공부 국장을 그만두고 여행업계에 뛰어든 뒤 창업 초기 만 5년 동안은 생일날 한 번도 집에서 미역국을 먹어 본 일이 없어요.
 
  일본 관광객들을 국내에 유치하려고 일본 남쪽 규슈에서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야간열차를 밥먹듯이 타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지정석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자유석(한국열차로 말하자면 입석)을 끊어 열차와 열차 중간 연결 통로에서 샘소나이트 가방을 깔고 앉아 새우잠을 자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일본 각지의 파트너 여행사 관계자들과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피땀 흘려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롯데관광이라는 여행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표법에도 그런 조항이 있습니까.
 
  『서울지방법원 판례에 등록권자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치했다가 2년 후에 쓰지 말라고 하니까 사회정서에 어긋난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상표권 분쟁보다는 재벌가 가족들 간의 다툼으로 보이니까 그게 더 흥미를 끌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겠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차라리 저한테 솔직히 로고를 쓰지 말아 달라고 했으면 안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롯데호텔에 국내외 관광객 200만 명 이상은 유치했을 거예요. 지금까지 그런 양사의 긴밀하고 돈독한 상생관계가 이번 일로 퇴색되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고마움을 잊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롯데그룹은 상도의로 봐서 여행업을 하면 안 됩니다. 영세 여행업자들이 반발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봅니다』
 
  ―대기업의 여행업 참여는 안 된다고 보시는 겁니까.
 
  『롯데그룹의 생성 자체가 관광업·여행업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영세업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게 바로 그 점입니다. 영세업자들이 협력해서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에 관광객들을 보냈어요. 그렇게 협력한 업자들한테 이제는 밥그릇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다른 대기업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관광협력회 중앙회는 롯데그룹이 상도의상 여행업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가족인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겁니까.
 
  『가족으로서 세상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결말이 나야겠죠. 법에 의한 해결보다는 대화로 풀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내내 활기가 넘쳤던 金基炳 회장은 롯데그룹과의 로고 분쟁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자 손을 내저었다. 취재수첩을 덮는 기자의 귓가로 金회장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가족은 가족일 수밖에 없는 거지, 뭐』
 
  그는 아직도 가족애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월간조선 2007년 9월호)
   사진 : 이태훈  

입력 :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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