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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문화

다시 읽는 <월간팝송> 85년 8월호 ‘라이브 에이드’ 기사 ①

[阿Q의 ‘비밥바 룰라’] MBC, 12월 2일 밤 역사적인 LIVE AID 재편집 방송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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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결정적 장면인 1985년 7월 13일 퀸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을 MBC가 재편집해 방송한다. 12월 2일(일) 밤 11시 55분부터 100분 동안 퀸을 포함한 여러 아티스트의 공연을 충분한 화질 보정을 거쳐 1985년의 감동을 재현한다.
당시 공연은 밥딜런,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U2, 폴 메카트니 등 당대 최고의 팝 가수들이 참여한,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무대예술이었다.
 
기자는 당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소식을 소개한 음악잡지 <월간팝송> 1985년 8월호를 입수했다. 세계적인 공연인 만큼 이 잡지는 〈긴급 기동취재 : 사상 최대의 팝 잔치 LIVE AID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47쪽부터 54쪽까지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사는 크게 ▲로큰롤의 세계 외교관 밥 겔도프 ▲밥 겔도프 인터뷰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준비상황 ▲라이브 에이드 : 팝음악의 위대함 보여주다 ▲공연의 뒷얘기 등 5꼭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한다.

<월간팝송>은 1970~80년대 해외 팝 음악을 소개하던 전문 음악잡지로 많은 국내 팝 팬의 사랑을 받았으나 1987년 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헌책방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인 라이브 에이드 재방송을 즈음해 당시<월간팝송> 기사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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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기동취재/ 사상 최대의 팝 잔치 LIVE AID 콘서트
 
전 세계 인류 감동시킨 16시간의 대서사시
 
1985년 7월 Eastern Daylight Time(미국의 동부 여름시간)으로 7시 정각에 역사적인 Live Aid 콘서트가 영국의 웸블리 경기장에서 개막되었다. 그 2시간 후인 9시 필라델피아의 J.F. 케네디 스타디움에서 14시간의 미국 공연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 인류는 16시간동안 하나가 되었다. 세계 160여개국에서 20억의 인구가 지켜본 이 콘서트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능가하는 대규모 공연으로 사상 최대의 TV 방영과 16시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규모 큰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팝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인 이번 콘서트를 지상으로 중계하며 콘서트가 실행되기 전부터 그 후까지를 흥미 있는 기사와 함께 심층분석, 뜻깊은 자선공연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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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 공연의 출연진들. 별들의 잔치였다.

▲로큰롤의 세계 외교관 밥 겔도프
 
우리는 가끔 TV에서 방영 되는 Do They Know It's Christmas?We Are The World의 비디오를 대하면서 가슴 뭉클해 옴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지난 겨울 영국 BBC의 저녁뉴스에서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편집자)의 굶어 죽어가는 처참해 보이는 기아들의 모습과 소식을 접한 Boomtown Rats의 리더 Bob Geldof에 의해 록계의 자선운동은 시작되었고 아프리카의 참상들이 속속 전해지기 시작했다.
30년전 서구 식민세력들이 기술과 자본을 철수한 아프리카의 신생국가들에는 착취만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삭막한 자연환경 속에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극도의 빈곤만을, 겪어왔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타잔에 나오는 동물의 낙원처럼 자연환경 풍부한 정글 대륙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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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팝송" 1985년 8월호 47쪽 캡처.
그곳의 검은 인구 5억 중 1억이 식량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이디오피아, 수단, 모리타니, 나이젤, 차드 등 최소한 10개 지역에서 긴급식량이 요청된다.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최악의 상태인 이곳엔 열사가 이글대고 전염병이 판을 치는 지옥 그자체이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27개국 3000만 명이 쌀 한 톨 없이 지내고 있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달러에 달한다. 인류최대의 참상은 이미 국제 적십자사와 유니세프에 의해 50여개국에 호소되어왔으나 정치가들의 외면을 당해왔다.
그러나 무기생산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와는 달리그야말로 인간의 근본적 양심에 불을 당긴 사람이 있다. 바로 밥 겔도프이다. 그리고 그는 자랑스럽게도 팝 아티스트이고 그로 인해 팝계는 세계를 한가족으로 만드는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을 쉽게 실현시켰다. 그러면 과연 밥 겔도프는 어떤 인물인가?

 
밥 겔도프는 1975년에 결성된 아일랜드 출신의 뉴 웨이브 선두그룹 Boomtown Rat의 리더로 정육공장과 깡통 공장의 공원, 불도저 운전사 등의 거친 직업과 일간신문의 음악기자, 스페인에서의 영어교사 등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에도 종사했었다. 사진 찍는 솜씨도 일품인 그는 Boomtown Rats의 매니저 일을 보다 보컬리스트가 탈퇴하자 빈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제대로 만족할 만큼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는 그이지만 그룹의 곡들을 대부분 작곡하고 있다. 그는 독서와 TV시청, 잠자기를 좋아하며 데이비드 보위 예찬론자이다. 지금까지 6장의 앨범을 발매한 붐타운 래츠의 보컬리스트 밥 겔도프는 1982년초 Pink Floyd의 영화 「The Wall」에 출연해 연기에서도 인정받았던 재능꾼으로 현재 나이 33살이다. 이제 그는 아티스트를 뛰어넘은 세계적 외교관으로 Band Aid 구제 운동의 제1 창설자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의 잔혹한 참상을 보고 누구나 느꼈던 감동을 실행에 옮겨 즉시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일은 결국 36명의 록스타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모이게 그가 Ultra vox의 보컬리스트인 M. Ure의 도움으로 쓴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레코딩하게 되었다. 24시간의 리허설 후 완성된 그 곡은 198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매되어 전 세계를 감동시키며 국제 적인 히트를 했다. 이 일은 미국의 아티스트들을 자극시켜 해리 벨라폰티의 제안을 라이오넬 리치와 케니 로저스의 매니저인 켄 크레이가 이 아티스트들에게 호소해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 작곡의 〈We Are The World>가 탄생되었다.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삽시간에 차트를 정복했던 그 곡은 엄청난 판매량과 함께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입을 맞추어 우리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전례 없이 성공한 이 곡들의 수익금들은 밥 겔도프에 의해 난민들을 위한 의식주 마련과의 시설 등에 쓰이고 있으며, 분주히 동아프리카를 다니며 테레사 수녀와도 만나는 등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의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밥 겔도프는 쉬지 않고 밴드 에이드의 운동을 구상하였고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 7월 13일의 거대한 자선공연이었다.

그는 명예를 위해서 일한 것도 아니라 단지 양심을 위해서 일했으나 그 일을 눈감아 버리려고 하지 않는 몇몇 사람(노르웨이의 시셀 로엔벡 의원 등)에 의해 이해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또한 성공적으로 세계적인 자선행사를 끝마친 밥 겔도프에게 영국에선 기사의 작위를 수여할 예정으로 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이러한 명예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온 세계가 20세기 최대의 참상인 아프리카의 비극에 좀 더 양심적인 눈을 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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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팝송" 1985년 8월호 48쪽과 49쪽

▲밥 겔도프 인터뷰
 
Live Aid 콘서트가 열리기 전 준비에 분주한 밥 겔도프를 《롤링스톤》지의 David Fricke가 잠시 만났다.
David- Live Aid 콘서트에 대한 생각은 언제 처음으로 했는지요?
Bob- 나는 Band Aid가 국제적인 히트를 하자 USA for Africa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캐나다, 스페인과 여러단체, 여러 나라에서 여러 운동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이러한 나라에서 관심만 보이면 다음엔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연결할 것을 생각했는데 그 필연적인 결과가 콘서트를 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1월과 2월의 Boomtown Rats 순회공연을 한 직후인 3월에 이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David- 당신은 바즈니스계에서 경험이 부족한데 Band Aid 쇼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 는지요?
Bob- 나의 경험이 아주 적다고 할 수는 없어요. 나는 팝 뮤직계에서 10여년 간을 경험했고 Boomtown Rats의 매니저로도 일해서 비즈니스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요. 만일 이 일이 그러한 종류가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일을 조직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요. 이번 일에 나의 관심사는 많은 밴드들을 무대에 서게 하고 또 전세계의 절반이 달러나 파운드, 프랑이나 루블을 들고 전화기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지요.

David- 당신은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어떻게 기부할 것인지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Bob- 이 일을 하는 나의 혼신의 목표는 우리가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조하는 것과 그들에게 삶을 주자는 것입니다. 전번에 우리는 독일 구조단과 그 곳에서 6개의 마을을 짓고 건강센터와 구조센터, 학교 등을 지었는데 Addis Ababa의 동부지역이었어요. 우리는 그들에게 한 가구당 5~6 에이커의 땅과 호미, 종자들을 주었어요. 그리고 우물도 팠지요. 그래서 그들은 다시 삶을 찾았는데 가족과 마을이 안정되었고 그곳은 우리가 다음 계획을 시작하고 싶게 만들었어요. 돈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쓰여 질 거예요.

David- Band Aid 싱글을 발매한 후 당신은 영국 신문에 당신이 아프리카에 가지는 않을 것이며 그늘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백인들이 또 다른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가버리는 일이라고 얘기했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1월에 그곳에 갔지요?
Bob- 나는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어요. 나는 구조 대행사가 많은 돈을 가져가기 때문에 그 일을 맡기지 않기로 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만일 사람들이 레코드를 산다면 그들이 준 100%의 돈이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행해졌는데 전화요금, 택시요금 등 한 푼도 그 돈에서 쓰지 않았어요. 거기에 간 목적은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듣고 결정하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나에게 먼저 할 일을 알려주었어요. 나는 영국으로 돌아와 조직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Band Aid Trust가 세워졌지요. 멤버는 나 이외에 Ultra vox의 Midge Ure와 영국BPI (영국 축음기 산업협회)의 의장 Maurice Oberstein 그리고 영국 문화상 Lord Gowrie 등이에요. 그것은 돈을 관리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모두 청렴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에요.

David- 당신이 Band Aid 일에 몰두하면서 최근 Boomtown Rats의 활동에서 실패한 것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나요?
Bob- 나는 밴드의 실패에 실망했어요.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들 모두도 억울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밴드는 해산위기였는데도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지요. 우리는 44일간의 매진된 영국공연에선 성공했지만 레코드는 팔지 못했어요. Band Aid일로 우리는 다른 그룹보다 많은 대가를 치루는 셈이지요.
결국 우리는 레코드를 싼값에 팔았고 앨범 발매를 늦추며 우리가 밴드 에이드를 이용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노력해야 했어요.

David- 록계의 테레사 수녀라고 하는 당신의 새 이미지는 사람들이 길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 어떤 효과로 나타날까요?
Bob- 사람들은 신뢰심을 갖고 내가 길거리를 다닐 때 내 손에 파운드 지폐를 들이민다면 내가 그것을 밴드 에이드에 맡길 것이라고 확신하겠죠. 물론 나는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책임이 맡겨졌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이 신뢰와 사랑을 많이 보여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난 왜 사람들이 누군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하면 그것으로 된다는 것을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대(大)계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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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팝송" 1985년 8월호 50쪽 기사
▲Live Aid 콘서트의 준비상황
 
19856월 10일 밥 겔도프는 7월 13일 토요일에 영국의 Wembley 경기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J. F. Kennedy 스타디움에서 60여명의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 Live Aid 콘서트가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때 발표된 양쪽의 공연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호화 멤버였고 이러한 소식은 그 후 한 달 동안 전 세계 팝팬들을 흥분시켰다. 이 계획은 앞에 서도 얘기했지만 밥 겔도프가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 이후 쭉 생각해 왔던 것으로 4월말부터 아티스트들과 접촉하기 시작, 5월 9일 미국의 Worldwide Sports & Entertainment사의 사장 Michael Michell을 만나면서 두 쇼의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Michell은 지난해 LA올림픽의 계획과 재정을 살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영국의 Band Aid Trust와 미국 Worldwide Sports & Entertainment사가 손을 잡았고 그들은 그 후 10주를 이 사상최대의 콘서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지냈다. 또 그들은 많은 인터뷰를 통해 일의 진행을 수시로 전했다.

7만2000명을 수용하는 웸블리 경기장의 티켓이 영국에서 먼저 관매되어 2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미국은 9만명의 수용하는 J.F.K 구장의 표를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판매해 몇 시간 만에 동이 났다.
미국 공연 장소인 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은 사실은 시간상의 문제 때문에 선택되었는데 물망에 올랐던 워싱턴과 뉴욕구장은 좀 더 좋은 효과를 줄 수 있었음에 도 불구하고 설치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될 것 같아 J.F.K 스타디움으로 정해졌다.
 
그들은 또한 위성보조를 할 수 있는 모든 나라와 접촉해 140여개국에서 1982년 월드컵대회때 기록한 15억의 시청기록을 깨뜨릴 것이 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 공연은 160여개국에서 동시 또는 녹화 방송되어 20억의 인구가 시청한 것으로 공연 후 발표되었다. 거기에는 소련과 중공(중국), 그리고 동부공산권인 폴랜드(폴란드)와 유고, 체코 등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공연장에 설치되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캐나다, 호주, 일본, 뉴질랜드, 이태리 등 30여개국의 프로를 방송하기로 계약했고 올림픽 때와 비슷한 수의 스폰서들과 계약을 맺기도 했는데 미국은 General Electric, Volkswagen, Honda, Kodak, Coca Cola 등으로 특징은 영국의 스폰서들과는 경쟁상태에 있는 기업들이었다. 콘서트 중계는 예상외의 좋은 반응으로 방영국이 많아지자 16개 위성으로 중계하기로 했고 양국의 방송은 영국에선 BBC1 TV가 전 콘서트를 중계하며 라디오는 Radio1이 방영하기로 했고 미국에선 MTV가 VJ를 통해 16시간의 전 콘서트를 중계하기로 계약했다.

이에 14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미국공연을 전세계와 MTV로 중계하는 ABC 방송 측은 ABC라디오를 통해 중계함과 동시에 저녁 8시를 하이라이트 방영시간으로 했다.
이렇게 예상치 않았던 TV와 라디오의 완전한 지지 속에 팝 역사상 가장 화려한 참가자들로 구성된 이 콘서트는 난민구제라는 좋은 의도의 콘서트였지만 역시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공연장소인 필라델피아 스타디움을 빌리는 금액 십만 불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자선공연을 위한 콘서트이니 세를 받지 말아야 된다고 투덜거렸다. 이것에 대해 여러 차례의 접촉 끝에 결국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또 하나의 불평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너무 적게 참여한다는 사실이었는데 처음에 발표된 참가자들 중엔 영국의 Sade와 미국의 David Ruffin, Eddie Kendricks, Billy Ocean, Tony Thompson (Power Station 멤버), Joe Leeway (Thompson Twins의 멤버) 등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Bob Geldof와 Bill Graham은 백인스타들이 인기 있고 음악적으로 선호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프린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레이 찰스 등에게 초대장을 보냈으나 그들이 너무 바빠 참여를 못하는 것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프린스 같은 사람은 스크린으로 방영될 짧은 비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참가 아티스트들의 명단엔 처음과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당초 Bruce Springsteen은 확실히 참가할지는 몰랐으나 참여 가능성이 높았는데 불참했고, Cyndi Lauper는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위장수술로 참가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추가로 참가하게 된 아티스트는 Patti LaBelle, Four Tops, Teddy Pendergrass, Tina Turner, Ashford & Simpson, Run-DMC(2인조 랩그룹으로 Run과 D.M.C가 구성원이다) 등의 흑인 아티스트들과 Kenny Loggins, Joan Baez 등이다.

Michael Michell은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런 쇼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해야만 했어요”라고 얘기한다. 그들은 그 일을 해냈고 7월 13일의 자선 콘서트는 팝 역사상 기록에 남는 위대한 콘서트로 지구촌을 감동에 젖게 했다. (계속)

입력 : 2018.12.01

조회 : 2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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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ㅂㅌㅂ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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