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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사회

울산시교육감 '이승복 동상 철거하라' 논란... 서울시는?

2016년 서울시의원 "이승복 동상 민주시민교육에 걸맞지 않는다" 주장, 남아 있던 3개 초 동상은...

[편집자 주]  6일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울산 일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승복 동상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초등학교에 존재했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 일부 좌파 단체에서 '이승복 기사 조작' '거짓 보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일화가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전국 곳곳의 이승복 동상들이 철거된 바 있다.
그러나 2006년 11월 대법원은 "이승복 기사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 작성한 사실 보도"라고 판결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현장에 가지도 않고 꾸며 쓴 거짓 보도'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모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서울에는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을까. 2016년 9월 더불어민주당 오경환 서울시의원은 "이승복 동상은 민주시민 교육에 걸맞지 않는다"며 이승복 동상 철거를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서울 3개 초등학교에 이승복 동상이 있었고 현재는 2곳만 남아 있다. <월간조선> 2016년 11월호에 실린 이승복 동상 관련 기사를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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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에 처한 ‘반공소년’ 이승복(李承福)의 동상

서울시의원의 동상 철거 요구 후 3개 중 1개 철거돼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 서울시 초등학교 600곳 중 이승복 동상 남은 곳은 2곳뿐
⊙ “이승복 동상이 아이들이 있는 교정에 버젓이 있는 건 문제” (오경환 서울시의원)
⊙ 조희연, “남아 있는지 몰랐다. (이승복 동상 철거) 검토해 보겠다”
⊙ “박물관에 보내라”는 시의원 요구에 “그러든지 다른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교육정책국장
⊙ 홍릉초등학교는 9월 28일 이승복 동상 철거… 다른 곳의 동상도 존치 여부 불확실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승복(李承福) 동상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8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경환 서울시의원은 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냉전 독재정권 시절에 세워졌던 이승복 동상이 21세기 교정에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철거를 촉구했다.
 
  같은 날 오 시의원이 내놓은 ‘서울시 초등학교 교정에 이승복 동상 현재도 존재’라는 자료에 따르면 철거 요구에 대해 조희연(曺喜)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은 혁신교육으로 민주시민이 되고 더 나아가 세계형 민주시민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큰 틀에서 지향하고 있는데 교육 방향과 안 맞는 부분이 있고 어떻게 처리할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승복 동상은 박물관에 가야 할 냉전시대의 유산”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경환 서울시의원(좌)은 8월 31일 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조희연 교육감(우)에게 이승복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사진=서울시의회 영상회의록 화면
  <오경환 위원: (전략) 냉전시대에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을 위해 표상으로 세워졌던 이승복 동상인 것 같은데 (중략) 이미 박물관에 가야 될 냉전시대의 유산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떨까요? 교육감님이 생각하는 세계시민교육과 일치할까요?
 
  조희연 교육감: 저도 그렇게 남아 있는지는 잘 몰랐네요. 한번 체크(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경환 위원: 그래서 뭔가 대안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조희연 교육감: 사실 이승복 부분은 논란도 된 바가 있었지요. 어쨌든 저희는 큰 틀에서 혁신교육의 핵심이 민주시민교육입니다. 학교의 민주성을 포함해서 민주시민인데 저는 더 나아가서 세계시민형 민주시민이라든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경환 위원: 제가 사진을 찍어왔어요. 아주 잘생긴 동상인데 문구를 보면 그렇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표현들이 많이 있어요. 해서 한번 점검을 해서 이것은 세계시민교육과 민주시민교육에 맞는 것인지 검토를 해봐야 되고 필요하면 박물관으로 보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이 있는 교정 앞에 버젓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조희연 교육감: (전략) 한번 체크해 보겠습니다.>–8월 31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오 시의원은 9월 1일 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윤오영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에게 재차 이승복 동상 철거를 주문했다. 그는 “(이승복 동상을) 박물관에 보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윤 국장은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한번 강구해 보겠다”고 답했다. 교육정책국장은 교육감, 부교육감, 기획조정실장에 이어 서울시교육청 서열 4위다.
 
  <오경환 위원: (전략) 뭔가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어떻습니까?
 
  윤오영 교육정책국장: 적극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경환 위원: (전략)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바는 남북교류를 통한 통일일 텐데 당연히 교류협력, 경제협력 해나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반공교육을 하고 이게 가능하겠어요? 정말 시대에 뒤떨어졌다, 현장에서 어떻게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잘 파악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좀 제안을 하면, 세 개 학교 있잖아요. 교장 선생님들 모셔서 한번 의논을 해보세요.
 
  윤오영 교육정책국장: 네, 협의하고 검토해서….
 
  오경환 위원: 그리고 필요하면 학교 내의 운영위원회든 학부모회의든 해서 공론화해 보세요. 적절한 조치를 부탁드리고요. 저는 이것을 폐기하고 없애자 이런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박물관에는 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윤오영 교육정책국장: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한번 강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9월 1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공산당이 싫어요!” 항거 처참하게 살해당해
 
1968년 12월 9일, 만 아홉 살이던 이승복은 총칼을 든 북한 무장공비 앞에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뒤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사진=조선일보
  이승복은 1959년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속사리에서 이석우(부)씨와 주대하(모)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8년 12월 9일 저녁 8시, 승복의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울진·삼척 방면으로 침투한 북한의 무장공비였다. 공비 일당 5명 중 2명은 승복의 어머니 주대하씨가 있던 안방에, 나머지 3명은 승복(9세)과 그의 형 학관(15세), 남동생 승수(6세), 여동생 승자(4세)가 있던 건넌방으로 신발을 신은 채 들어섰다. 그때 이승복은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학관은 옥수수를 까고, 승수와 승자는 자고 있었다. 이승복의 아버지 이석우씨와 할머니는 공비 출몰에 따른 소개령 때문에 짐을 꾸리는 이웃을 도우려 외출한 상황이었다.
 
  공비 3명이 건넌방에 들어서고 나서도 이승복은 숙제를 계속했다. 공비는 이승복에게 다가가 “이 책 미국이 준 거냐?” “이 공책은 미제냐?”면서 귀찮게 굴었다. 이어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라고 물었다. 이승복은 “우리(나)는 북한이 싫어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 그 직후 공비는 이승복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린 다음 입속에 대검을 넣어 좌우로 찢고, 가슴을 난자했다. 나중엔 숨만 겨우 붙어 있던 이승복의 머리를 돌로 쳐 죽였다.
 
 
  이승복 사후 전국 초등학교에서 추모행사 개최·동상 설치
 
1971년 12월 9일 한국 승공문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이승복 추도회. 이승복 사후 전국 초등학교에선 해마다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조선일보
  다른 공비들은 놀라 일어나려는 학관을 개머리판으로 쳐서 쓰러뜨리고 대검으로 온몸을 쑤셔댔다. 이때 학관이 입은 상처는 36군데다. 소란에 놀라 잠에서 깬 승수와 승자는 거꾸로 들어올려 벽에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그 시각 안방에선 주대하씨가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공비들은 주씨를 대검으로 수차례 찔러 죽였다.
 
  무자비한 학살 후 공비들은 승복과 두 동생을 헛간 옆에 내던지고, 주씨와 학관을 거름더미에 버렸다. 이때 의식이 있었던 학관은 공비들로부터 도망쳐 나와 이웃에게 비극을 알렸다. 《조선일보》는 이틀 후 “공비, 일가 4명을 참살…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공비들의 만행과 이승복 일가의 참상을 특종 보도했다.
 
  이승복은 사후 북한 정권의 반인륜성과 잔악성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전국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선 이승복을 추모하는 ‘반공 웅변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포스터 전시회’ 등이 해마다 열렸다.
 
  1970년 서울 강남국민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두 달 동안 폐품을 팔아 마련한 9만2175원으로 높이 3m(기단 1.8m, 동상 1.2m) 규모의 이승복 동상을 교내에 설치하는 등 전국 대다수 초등학교에 이승복 동상이 들어섰다.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있었다. 문교부는 1973년 3차 교육과정 개정 때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도덕 교과서에 이승복 이야기를 14쪽에 걸쳐 자세하게 수록했다. 1982년 4월엔 이승복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하고, 그해 10월 7억원을 들여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이승복의 모교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 일대를 ‘이승복 기념관’으로 조성했다.
 
 
  ‘민주화’ 이후 교과서에서 사라져… 기사 조작설도 퍼져
 
1968년 12월 11일 《조선일보》가 촬영한 이승복의 집이다. 북한 공비들은 이승복 외에도 그의 어머니를 대검으로 찔러 살해하고, 동생 승수(6)와 승자(4)는 거꾸로 들어 벽에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사진=조선일보
  1988년,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이 북한에 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제안한 ‘7·7선언’ 이후 이승복은 ‘남북 화해의 걸림돌’ 취급을 받았다. 1990년 문교부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수록된 이승복 이야기 분량을 대폭 줄였다. 1997년엔 교과서에서 아예 사라졌다.
 
  1998년엔 ‘이승복 기사 조작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해 6월 25일자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국민일보》(7월 1일), 월간 《말》 8월호, 《한겨레》(8월 15일, 8월 28일), 《경남매일》(9월 17일), MBC(9월 22일)가 연이어 ‘이승복 기사 조작설’을 제기했다. 이들이 조작설의 근거로 제시한 건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한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에 김종배(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씨가 기고한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란 기사였다.
 
  《월간조선》은 1998년 10월호(9월 18일 출간)에 실린 기사 “‘공산당이 싫어요’는 있었다… 반공소년 이승복을 두 번 죽인 오보설의 허구 입증”을 통해 《조선일보》의 이승복 관련 특종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조선일보》도 ‘이승복 기사 검증 특별 취재팀’을 조직해 9월 28일 4개 면에 관련 기사를 내보내는 한편 김종배, 김주언씨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8년간의 긴 소송 끝에 《조선일보》는 사법부로부터 이승복 관련 특종을 공인받았다. 대법원은 2006년 11월 24일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김주언 전 언론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1968년 12월 11일, 《조선일보》는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뒤 살해당했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사진=조선일보
  1990년대 들어 서울시 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이승복 동상은 상당수가 사라졌다. 학교 교사를 신축하면서, 근거 없는 ‘이승복 기사 조작설’이 확산되면서 이승복 동상이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교육청이 오 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초등학교 600곳 중 이승복 동상이 있는 곳은 공립학교 2곳뿐이다.
 
  《월간조선》이 서울시교육청에 오경환 시의원과의 공문 수발신 현황을 청구한 결과에 따르면 오 시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 ‘서울시 초·중·고교 내 이승복 어린이 동상 설치 현황’ 자료를 요구한 건 8월 9일이다. 소관 부서인 민주시민교육과는 관내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현황을 파악하고 8월 22일 오 시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했다.
 
  금천구 독산동 소재 문성초등학교엔 한국반공연맹(현 자유총연맹) 서울 구로구지부 독산 1·2동 지도위원회가 1981년 6월에 기증한 ‘반공소년 이승복 상’이 있다. 이 동상은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를 입은 이승복이 오른손을 힘껏 움켜쥔 모습을 하고 있다. 기단 정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반공 교육에 신화를 남긴 넋은 영원히 이 땅에 빛나리라. 이 어린이는 1968년 겨울 삼척에 출몰한 무장공비의 총칼 아래서도 완강히 항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다 공비의 잔악한 만행으로 입을 찢기는 등 참살을 당한 10세의 용감한 반공소년이다.”
 
 
  “‘이승복 교육’ 강제로 하면 안 되니까 철거했대요”
 
이승복기념관에 전시된 이승복 시신 사진.
사진=조선일보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남초등학교에도 ‘반공소년 이승복 상’이 있다. 건립 시기는 1979년 10월 12일이다. 동상을 기증한 용산구지부 한남1동 지도위원회는 동상 정면에 “무장공비들의 거짓 공산당 선전 앞에 두려움과 굽힘 없이 외쳐 바른말이 귀에 거슬린다고 무참히도 죽임을 당한 아홉 살의 이승복 어린이! 그날의 슬픔과 분노를 모아 여기 상을 만들다”라고 적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1979년에 설치됐다고 나온 동대문구 청량리동 소재 홍릉초등학교의 이승복 동상은 현재 교정에 없다. 해당 학교를 방문해 교정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순신 동상과 책 읽는 소년·소녀 동상이 있을 뿐이었다. 학생들에게 문의한 결과 책보를 든 이승복 형상의 동상은 9월 28일 철거됐다. 6학년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했는데, 이걸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교육)하면 안 되니까 철거했다’고 담임 선생님이 얘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경비 아저씨한테 시켜서 동상을 망치로 부쉈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홍릉초등학교 교감에게 물었다.
 
  — 9월 28일에 철거했다고요?
 
  “날짜는 정확히…. 9월에 했거든요.”
 
  — 서울시의회에서 얘기가 나와서 철거한 건가요?
 
  “그런 얘기가 들리긴 했는데, 거기서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 교육청에서 갑자기 이승복 동상 현황을 보고하라고 하니까 철거한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적대적 관계 시절에 있었던 교육 방향과 다르게 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거고, 전체적인 추세가 다 그렇게 가니까, 그런 교육 방향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했던 것 같습니다.”
 
  — 강제로 이승복 관련 교육을 할 수 없다면서 철거하라고 했다던데요?
 
  “요즘 우리 통일 교육 방향이 그 시절의 방향과 다르기 때문에, 교육과정도 고려해서 전체 선생들이 협의를 한 번 했고요. 기단 밑이 부식돼서 벌어져 있었어요.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동문회와 협의를 해서…. 동문회는 유지해 주길 바랐지만, 너무 오래돼서요.”
 
  — 보수해서 유지하는 방향으로 검토한 적은 없습니까.
 
  “지금 교육 사조와 안 맞기도 하고….”
 
  — 철거한 동상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마 다른 데로 간 걸로 알고 있는데….”
 
  — 학생들은 동상을 망치로 부쉈다고 말하던데요?
 
  “아,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는데…. 그건 확인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와 관련, 서울시교육청의 지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교육청 담당자 홍승균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에게 문의했다.
 
  — 시의회에서 이승복 동상 얘기가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됩니까.
 
  “제가 담당자인데, 저한테 직접적으로 ‘하라’ ‘하지 마라’ 얘기하신 분은 아무도 안 계세요.”
 
  — 아직 이승복 동상과 관련해서 위에서 지침이 내려오진 않았단 말인가요?
 
  “예,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희연은 박정희 시대의 반공주의 비판해 온 사회학자
 
현재 서울시 초등학교 600곳 중 이승복 동상이 있는 곳은 금천구 독산동의 문성초등학교(좌), 용산구 한남동 소재 한남초등학교(우), 두 곳뿐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진보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숱한 저작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반공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축을 활용해 정권을 이어왔다는 취지의 비판을 해온 인물이다. 독재 정권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공’을 이용했다는 식의 주장을 해왔다는 얘기다.
 
  그는 2004년 5월 《역사비평》에 투고한 ‘박정희 시대의 강압과 동의’ 논문에서 “나는 1950년대 체제는 반공동원 체제로,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체제는 ‘권위주의적 반공 개발 동원 체제’로 개념화하고자 한다(29쪽)”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1968년 1·21사태나 뒤이은 남북 간의 적대적 충돌은 1950년대 내전 이후의 원초적 반공 의식을 구세대들에게 강렬하게 고양시키고, 전후 세대들에게 이념화된 반공을 주입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했다. (중략) 특히 1968년 1·21사태 발생 이후 국민들의 경각심을 반공주의적 동원의 제도적 장치를 완성해 가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본다.–34쪽
 
  반공주의적 동원과 관련하여 박정희 체제는 반공주의를 더 제도화된 방식으로, 국가적 제도로서 시행하고자 시도한다. (중략) 반공 이념을 더욱 체계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체계적인 제도적 방법으로 반공주의를 재생산하고자 시도한다. (중략) 이념화된 반공으로 더욱 체계적인 국민교육을 하게 된다.–44쪽>
 
  조 교육감은 또 《경제와 사회》 2005년 가을호의 ‘박정희 시대 재평가 논의의 인식론적 성격과 쟁점들’에서 “나는 박정희 독재에 대해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 부재 등으로 인하여 대단히 큰 정치적 위기 속에서 지배를 유지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적 동원과 개발주의적 동원을 통해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였다’고 판단한다(23쪽)”고 밝혔다.
 
  2009년 6월 《문화과학》에 게재한 논문 ‘내전형 개발 파시즘으로서의 남한 파시즘과 민주주의’에서는 “남한에서 ‘체제로서의 파시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61년에서 87년까지의 개발독재 시기(3쪽)” “남한 파시즘은 한편에서는 반공주의라고 하는 ‘생존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하고 있었다(21쪽)”고 못박았다.
 
  이처럼 박정희 시대의 ‘반공주의’ 등을 비판해 온 조 교육감이 ‘반공의 상징’인 이승복의 동상을 그대로 놔둘지는 미지수다.
 
 
  전교조, “이승복 이용 교육은 통일교육에 어긋나”(2001년)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홍릉초등학교 재학생에 따르면 이곳(원 안)의 이승복 동상은 9월 28일에 철거됐다.
  조희연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가깝다는 점도 이승복 동상의 철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조 교육감은 취임 이전 인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이부영, 이수호씨를 지도위원으로, 전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 김석근씨 등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공약 사항 추진을 위해 2014년 9월 조직한 ‘혁신미래교육추진단’에 파견된 현직 교사 13명 또한 모두 전교조 소속이었다.
 
  ‘뉴데일리’에 따르면 이수호씨가 위원장일 당시 전교조는 산하 통일교육위원회와 출판국이 2001년 6월 각각 짓고 펴낸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을 통해 “이승복 사건은 조작된 것일 수 있으며 이승복을 이용하는 교육은 통일교육에 어긋난다(228쪽)”고 주장했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7월 6일자 《한국일보》에서 “동상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고 납득하는 기념비적인 표상으로 존재할 때 그 의의가 있는데 과연 이승복이라는 인물이 그러한지 의문이다. 여전히 이념적 논란이 있는 데다 구성원 대부분이 동상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만큼 청산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조희연 교육감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성향을 배제하더라도 서울 시내 초등학교 2곳에 남은 이승복 동상은 철거될 수도 있다. 인사권을 쥔 교육감과 각급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육정책국장이 “철거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상 ‘공립’인 이들 학교가 홍릉초등학교처럼 스스로 이승복 동상을 없앨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오경환 시의원은 이승복 동상 철거 주장을 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세계시민교육을 하잖아요. 이승복 동상은 반공 교육에 사용된 건데, 시대에 맞느냐 그런 거고요. 중국도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잖아요? 중국과 우리나라는 제1교역국이죠. 공산당이니까 싫다, 이런 교육은 더는 무의미하다는 거죠.”⊙
 
 
 
글=월간조선 뉴스룸
 

입력 :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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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2018-11-08)   

    가슴이 아프다..ㅜㅜ, 실제사건(북한_대남도발시건 1968년1월21일) 북한_124부대 공작원, 김신조일당 31명 내래 청와대 까부수고 박정희 모가지 따라왔소 이 사건은 실제상황으로 생생하다. 북한이 남침하여 6.25전쟁을 도발하고, 그 후에도 헤아리지 못할정도로 땅굴을 파고 남침을 엿보고 있는 동태를 알고 있건만..ㅜㅜ, 어찌하여 그대들은 그 만행을 잊고 있었단 말인가..ㅜㅜ...ㅜㅜ, 그동안 누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지키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 가??

  • (2018-11-08)   

    이승복이 우상은 조선일보 너내가 만들어낸 드라마라는것은 다 안다.
    우파인 조선 너희들이 설 자리가 없으니까 자꾸 국민들 선동할려고 54638지 마라.
    현재의 군사력과 앞으로의 군사력 증강으로도 북한쯤이야 충분히 친다.

  • 가~즈~아!! (2018-11-07)   

    가즈아! 빨리빨리 베네수엘라, 큐바처럼 소유지 국유화, 소득재분배해서 대기업들 협박해서 돈 다! 뜯어내 말려 죽이고 국제 사회에서 고립.제제받으며 방글라대쉬처럼 살다가 뒈지러가자... 가즈아!!! 미개한 궁민들아!!!

  • 공산당 (2018-11-07)   

    이제 아주 대 놓고 나 빨갱이다.어쩔래 하는 구나 하기야 자기 오야지 qn터 빨갱이니까 왜 아니 그러겠나?

  • 김재섭 (2018-11-07)   

    주제파악이 안되는 말종이다 자라나는 어린학생들에게 반공이념을 깨우치게 하기위해서 독지가 사비를 들어서 세운동상이다 도대체 동상이 있음으로해서 교육감이나 시의원따우들이 한 나라의 어린학생이 공상당에 의해서 피습당한 것을 널리알리려고 한 것이 이제와서 당신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왔는가 묻고싶다 그것도 한 X 이 씨부렁대니 이제는 X 도 나타나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완장페거리들의 웃기는 쇼 볼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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