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의 대표적 작가인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이 '문단 내 성추문'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최 시인은 작년 말 한 문예지에 시 '괴물'을 발표, 고 시인의 행태를 풍자했다. 이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최 시인은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새로운 상식, 개인이 바꾸는 세상'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 "한국 문단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더 많은 피해자가 '미투'를 외쳐야 세상이 변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서른이 되도록 사회 변방을 떠돌다 시인이 됐다. 등단한 뒤 문단 술자리에 참석했는데, 자주 불쾌한 일을 겪었다"며 "처음엔 발끈했던 저도 시간이 지나 가벼운 성희롱에 익숙해졌다"고 토로했다.

최 시인은 "등단 무렵에는 술자리에서 여성 시인들이 기생처럼 남자들 사이에 앉아야 했다"며 "'여자들이 안 따르면 술맛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저는 작가회의를 탈퇴했다"며 "성추행을 말리기는커녕 천재 예술가의 기행으로 여기는 (단체) 분위기에서, 누구를 고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국작가회의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진보적 성향의 작가들이 소속된 문학단체로 알려져 있다.

최 시인은 "(문단 성폭력을) 왜 이제야 말하냐고 묻는데, 왜 이제야 물어보냐고 되묻고 싶다"며 "더 참고 싶지 않아 지금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시인은 자신이 쓴 시 '괴물'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시"라고 했다. 그는 "겁이 많아서 운전도 못 하는데 글 쓸 때는 이상하게 용감해진다"며 "(문학계에는) 여성 시인을 기생 취급하는 전근대 문화가 여전하다. 문단의 미투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이유로 "한국 문인들은 편집위원이자 교수이자 평론가인 문학권력(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 시인은 "(미투 운동을) 좌파를 때려잡으려는 음모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나는) 괴물이 우파이거나, 정치적 색깔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도 그(고 시인)를 풍자하는 시를 썼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투는 남녀 간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으로,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