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2000년 6월 14일 남북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고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일요일이던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이 12~14일에서 13~15일로 하루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정상회담 출발을 딱 24시간 앞둔 시각이었다. 정부는 "북한에서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북 첫날인 13일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야권에선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것은 (북측에 주기로 한) 돈 중 1억 달러를 마저 주지 못했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북측은 월요일인 12일 추가로 돈이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이란 이야기다.
남북정상회담 하루 연기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김대중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도 다르다.
박지원 의원은 2004년 5월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주흥·李宙興)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늦어진 것은 김일성 시신 참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으로 출국하던 2000년 6월 13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하기 직전 임동원 국정원장이 급히 대통령께 ‘북측이 평양에 들어와서 시신 참배 문제를 협상하자’고 한다고 보고했고 (결론 없이) 북한으로 출발했다. 도착 첫날 북측이 계속 시신 참배를 요구해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협상을 했는데 나와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참배를) 하겠다고 해도 (북측이) 안 된다며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이튿날 송호경이 ‘장관 선생 말씀을 (상부에) 전하니 참배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참배 때문에 연기된 것이 아니라 경호 문제로 늦어졌다"고 했다.
그는 2004년 5월 28일 통일교육협의회 주최 조찬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정일은 내게 왜 남쪽에서 김 대통령이 몇 시에 출발, 몇 시에 비행기 타고 이런 식으로 공개하느냐. 지금 미국 등 불순분자들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김 대통령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일정을 하루 앞당기거나 늦추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북쪽에서 하루를 늦췄다."
이유야 어찌됐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친정 곳간'에서 4억 5,000만 달러를 몰래 꺼내 김정일에게 갖다 바쳤지만 제 날짜에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다.
2001년 6월 김 전 대통령은 한 달 사이에 다섯 번(닷새에 한 번꼴)이나 북한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요청했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상대방 지도자의 방문을 반복해서 간절하게 요구한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의 각종 도발에도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을 나무라기는커녕 김정일의 답방만을 애걸하고 또 애걸했다. 김정일 답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과 그가 키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똑똑히 봤다. 김영철과 리선권은 군부의 대남 공작 기구인 정찰총국 출신이다.
리선권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측 대표나 기업총수에게 막말을 쏟아낸 것과 관련, 북한 앞에서 지나치게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는 좌파 정부의 대통령을 봐 왔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