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의 실세라는 리선권 북 조평통 위원장이 대놓고 대한민국을 무시하고 있다.
2018년 10월 15일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 회의에서 리선권은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현재까지 잘해온 것처럼 연말까지 분투하길 기대한다"며 "특히 지금까지 진행한 사업들을 전면적으로 돌이켜보고 점검해 보면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이 있다. 남측이 더 잘 알 테니…"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나온 조 장관은 "말씀 주신 대로 역지사지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리선권이 "역지사지 같은 말 하지 말라"고 하자 아무 말도 못했다. 상사 지시를 받아 적는 직원 모습 그대로다. 이달 초 평양 협의 때도 회담장에 몇 분 늦게 나타난 조 장관이 "시계가 고장 났다"고 하자 리선권이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며 대놓고 무시했다. 조 장관은 "시계부터 새로 사야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리선권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때 삼성그룹 등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당시 총수들이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는 자리에 리선권이 나타나 대북 경협이 부진한 데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9일 국감에서 이와 관련한 질의에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북측에서는 남북 관계가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약 47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곳의 대표가 대한민국의 대표와 기업 총수들에게 훈계하는 듯한 언행을 서슴치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삭제된 회의록에는 정상회담 때 실제로 쓴 호칭·명칭·말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라고 높여 부르며, 자신은 '저' '여쭤보고'라며 낮춰 말했다.
김정일은 '그건 반대 없어' '하지 뭐' '되겠어'라고 노 전 대통령에게 반말을 했다.
조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단독회담에 배석해 대화록을 정리한 사람이다. '노무현' 이름 세 글자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조 장관이 봤을 때는 노 전 대통령의 '굽신'이 잘못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조 장관은 올해 10월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참가를 위해 평양을 찾았을 때 11년 전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노 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