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88컨트리클럽’에서 애국심을 담은 코스 명칭이 평범하게 바뀌고, 각 홀마다 꽂혀 있던 태극기들이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88컨트리클럽은 국가보훈처가 관할하는 골프장으로, 국가유공자 복지 증진에 소요되는 보훈기금 증식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한 이용객 제보에 따르면, 작년 초까지 해당 골프장의 두 코스 명칭은 ‘나라사랑’ ‘호국보훈’이었다. 그런데 최근 책임자가 바뀐 뒤부터 ‘동’ ‘서’ 코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종전까지 홀 36곳에 꽂혀 있던 태극기 24개도 모조리 뽑혀나갔다.

 

일각에서는 “태극기와 코스 이름이 누구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아니냐. 정권이 바뀌고 정치적 문제로 인해 교체가 된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취재 결과, 제보자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골프장 회원들의 민원과 항의’ 때문에 코스 명칭을 바꾸고 태극기를 철거했다는 것이었다. 

 

국가보훈처 대변인실은 19일 기자의 질의에 “2015년 8월 코스 명칭 변경 후, 회원들이 민원을 제기해 왔다”며 “88골프장 회원 운영위원회에서 코스 명칭 환원(還元) 요청을 함에 따라 골프장에서 자체적으로 코스 명칭 변경을 추진했다”고 답했다. 보훈처 측은 “(태극기 철거 건 역시)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회원 고객들의 불만이 증가, 회원 운영위원회의 제거 건의에 따라 88골프장에서 자체 결정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해당 골프장 측 관계자도 같은 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각 코스 명칭은 2015년 ‘나라사랑’ ‘호국보훈’으로 바뀌기 전까지 27년 동안 ‘동’ ‘서’로 써왔다”며 “작년 12월 중순 새 대표가 부임한 후 회원들의 민원에 따라 명칭을 다시 ‘동’ ‘서’로 되돌려놓은 것뿐”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각 홀마다 꽂혀 있던 태극기도 애초에는 없다가 2010년에 처음 설치한 것”이라며 “(이후) 회원들이 ‘페어웨이(골프에서 티와 그린 사이에 있는 잘 깎인 잔디 지역) 주변에 태극기들이 펄럭여 스윙하기가 불편하다’고 민원을 제기해 왔다. 새 대표가 부임한 뒤 이것 또한 코스 명칭 변경과 함께 조치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저희가 2015년 당시 전(前) 대표님 지시에 따라 보훈활동 차원에서 코스 명칭을 ‘동’ ‘서’에서 ‘나라사랑’ ‘호국보훈’으로 바꿨습니다. 그때 회원들과 공청회를 열어서 결정했으면 문제가 없었겠죠. 그런데 전격적으로 바꿨기 때문에 난리가 난 겁니다. 회원들이 ‘여태까지 27년 동안 써오던 거를 느닷없이 왜 바꾸느냐’ ‘골프장은 경기장인데 이걸 왜 정치화시키느냐’면서 (인터넷 게시판에) 글들이 엄청 올라왔어요. 그러다 (작년 12월에) 새 대표님이 회원들을 대표하는 운영위원회의 정식 건의를 받고, 보훈처 보고를 거쳐서 (코스 명칭을) 원 상태로 바꿔놓은 거죠.
태극기도 비슷한 문젭니다. 좋아하는 분, 싫어하는 분 반반이었어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전전(前前) 대표님이 2010년에 ‘우리가 보훈처 산하기관인데 뭔가 대표성 있는 걸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태극기 설치를 지시했어요. 코스 한가운데 태극기 24개를 쭉 심어놓으니까 선수들이 대회하는데 (태극기가) 펄럭여서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 대표님이 ‘코스팀’에게 확인하도록 했고, (철거하는 대신) 저희 내부(시설) 중 태극기가 부족한 연습장에 갖다 놓게 한 겁니다. 태극기 (위치) 조정이 있었던 거지 다 뽑아버린 건 아닙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작년에 (대선 앞두고 태극기 집회 등으로) ‘태극기 이슈’가 있지 않았나. 태극기가 언제부턴가 좀 정치적인 단어로 떠오르게 됐다”며 “저희 간부들도 조정할 때 ‘괜히 남들이 보고서는, 사장이랑 정권 바뀌었다고 해서 없앤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골프장이기 때문에 경기와 관련된 부분, 고객 민원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