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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현궁 내부, 여인들의 거처였던 이로당(二老堂) 전경. |
☞ 8편 줄거리
홍천 자기집에 도착한 춘보는 가족들과 반갑게 만났다. 곧이어 박도사집 하인이 찾아왔는데 춘보가 관을 쓰고 있으니 "너 미쳤구나"하며 박도사네 집으로 끌고가 바지를 벗기고 볼기를 피가 뚝뚝 흐르도록 때렸다.
이튿날 춘보는 아픈 엉덩이를 부비면서 운현궁을 찾아갔다. 대원군에게 매를 맞은 사연을 얘기하자, 대원군은 박도사의 형인 박승지를 불러 "이놈. 그래 너의 박가가 우리 이가보다 낫단 말이냐"라고 겁박했다. 놀란 박승지, 그리고 홍천에서 그 달음으로 동생 박도사가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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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 |
(계속) 그로부터 십(十)여일이 지났다.
하루는 운현이 청지기에게
“춘보 불러라.”
고 명하였다.
춘보는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갑갑하지 않느냐?”
“갑갑하고 클클하고 답답하와요.”
“술집에나 간간 가보느냐?
“언제 밖에를 나갑니까?”
“응. 오늘 어디 나가서 소풍이나 하고. 술집에 가서 술이나 먹어 봐라. 색주가라고 이쁜 색시들도 있느니라. 야, 이 춘보에게 돈 한 냥만 주어라.”
이리하여 춘보는 돈 한 냥을 타가지고, 어슬렁어슬렁 운현궁 대문밖에 나섰다.
대문밖에 썩 나서자, 웬 점잖은 차림을 한 사람이 춘보의 앞에 와서 허리를 굽신거린다.
“홍천서 오신 이생원이시니까?”
춘보는 어리둥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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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동인. |
“네…저…홍천서 온 이가는 이가(李家)지만 이생원은 아니올시다.”
“이리 오십쇼.”
“어딜요.”
“오시기만 하세요.”
허리를 굽히고 인도하는 대로 춘보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갔다. 얼마를 가니까, 어떤 솟을대문의 훌륭한 집으로 인도를 한다. 그 집 중대문을 썩 들어서더니, 그 사람은 안을 향하여,
“여게, 이생원 오시네.”
고함을 지르니까, 사랑문이 덜컥 열리더니, 웬 점잖은 사람 둘이, 버선발로 달려 나려와서, 춘보의 좌우편 팔을 붙든다.
걸핏 보는 한사람은 정녕 박도사였다. 춘보는 오금이 저렸다.
“나리마님.”
“아이구, 이생원, 어서 오시오.”
“나리마님, 언제―.”
“제발, 나리마님은 그만 둬 주세요. 어리석은 제가 어떻게 이생원이 그런 분이신줄 알었겠습니까. 어서 올라 오십시오.”
붙들려 올라 갔다. 올라가니까, 주안이 배포된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좌우간 본시 즐기던 술이라 주는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보리밥과 막걸리에 젖은 춘보의 배에 좋은 안주와 감홍로가 들어가니까, 마지막에는 아득아득하여 져서, 은은히 그 자리에 잠이 들었다.
이리하여 한참을 자다가 깨어보니, 박도사 형제가 발치에 앉어서 자기의 팔다리를 주물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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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조복을 입은 흥선대원군의 초상. |
춘보는 황공하여 벌떡 일어났다.
“아, 왜 더 주무시지요.”
“아니올시다.”
“그럼― 야, 약주 잘 데워 내오너라.”
다시 벌어지는 주안.
취흥도 이윽히 돈 뒤에, 박승지는 춘보에게 좀 더 다가앉았다.
“이생원. 우리 형제의 죽고 사는 것은, 전혀 이생원께 달렸습니다.”
“그게 무슨 당찮은―.”
“아니올시다. 이생원께 달렸습니다. 이생원께서, 거저 운현대감께 박승지 형제를 살려 달라고 한 말씀만 하시면 우리 형제는 살아나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꼭 죽습니다.”
박승지 형제는 교환조건을 제출하였다. 즉, 홍천에 있는 박도사의 논 300석지기와 메, 밭, 집을 그냥 그대로 춘보에게 내어 줄 터이니, 제발 운현대감께 박승지 형제 살려 달라는 말 한마디만 하여 달라고 빌고 빌었다.
춘보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마지막에는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좌우간에 그 일(一)가에게 말이나 하여 보기로 승낙을 하였다. (계속)
(출처=<야담> 1936년 9월호, p174~1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