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강병균 전 재경부 장관. 사진=조선DB
‘대한민국수호 비상국민회의’가 4일 "지금 국가 정체성·북핵 안보·복합 경제 위기가 쓰나미처럼 우리 사회를 덮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비상국민회의는 지난 4월 출범한 우파 성향의 시민사회 연합체다. 이들은 정부에 ▲선(先) 북핵 폐기 견지 ▲소득주도성장 폐기 등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일자리 늘리기 예산 54조 원을 투입했는데 고용 증가는 전년 대비 60분의 1로 급감했다. 하위 20% 근로소득이 1년 새 16% 줄면서 양극화가 10년 만에 최악으로 심화됐지만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25일 고용쇼크·분배쇼크 후 제기되는 경제정책 전환 여론을 일축하고, 저소득층 소득을 높이기 위해 소득주도성장 및 공정경제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낸 영상축사를 통해 "정부는 고용문제와 소득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한반도를 넘어 북방과 남방으로 우리 경제의 영역을 확대할 것이고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요즘 들어 우리 경제, 특히 고용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많다"면서도 "취업자 수와 고용률, 상용 근로자의 증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 등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었다"고 덧붙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 4일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이루어진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 모델은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게 할 것"이라며 "여기에 한반도 평화경제 모델이 더해지면 우리 현실에 맞고 독창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이 완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말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자신들만이 절대 선(善)이고 정의라는 생각에서 나온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2006년 11월 15일 ‘조선일보·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6.4%였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2007년 1월 8일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이 비판을 받고 있는 4가지 이유
지난 3일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이 `수출이 호조를 이루고 성장률도 연평균 4%는 유지했다. 경제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복지도 확충됐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분배중시의 이념 성향을 표출함으로써 시장과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분배구조를 개선시키면서 성장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지만, 경제 활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분배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노사관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거나 재정구조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민간기업들이 과감한 정부규제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 정부는 기업 의욕을 고취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소득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근본요인이 노동시장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정부 여당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입법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임금격차 해소는 대기업 노조의 양보 없이는 해결이 요원한 문제이며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이 인력 증원을 기피하고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대외 개방정책에 대해 그동안 열린우리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점도 문제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소득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근본요인이 노동시장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정부 여당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입법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임금격차 해소는 대기업 노조의 양보 없이는 해결이 요원한 문제이며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이 인력 증원을 기피하고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대외 개방정책에 대해 그동안 열린우리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점도 문제다.>
강 전 장관은 이 글에 대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같이 이야기했다.
"열린우리당이나 참여정부가 잘한 것도 있지만 결국 많은 중산층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중산층을 뺏겼다. 대북포용정책만 하더라도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든 먹여 살리려면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을 돕더라도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이념에 치우쳐서 국민 생활과 동떨어진 개혁에 몰두하는 일부 세력 때문에 중산층을 다 뺏겼기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중산층을 실망시킨 것들을 궤도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문재인 정부를 보면 노무현 정부 2기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다. 11년 전 글이지만 '노무현 정부'만 '문재인 정부'로 바꾸면 오늘 쓴 글이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IMF위기를 극복한 주연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책 브레인’, 김영삼 정부 시절엔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아 ‘정보화 전도사’란 별명을 가지기도 했던 강봉균 전 장관은 평소 아이디어가 많고 두뇌 회전이 빨라 관가에서 ‘꾀주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군산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잠깐 거친 뒤 서울대 상학과에 입학했다. 1969년엔 행정고시(6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해 경제기획원에선 기획통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후 경제기획국장,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거쳤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안 작업에 다섯 차례 참여했다.
특히 그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건국 이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재경부 장관을 지내며 재벌 개혁,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을 이끌었다.
2002년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으며 16‧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야권에선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경제 전문가로 통했다. 지난해엔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한국형 양적 완화’를 제안해 주목받았다. 강 전 장관은 2017년 1월 31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