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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 열전(1) 45명 중 민간인 출신은 5명, 해군 출신 3명, 공군 출신 4명, 해병대 출신 1명

아들이 6.25 때 하사로 전사한 신태영, 낙동강 방어전 영웅 임충식... 이기붕, 김정렬, 최영희, 정래혁은 정계에서 활약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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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개각에서 정경두 합참의장이 새 국방부 장관이 됐다. 해군 출신인 송영무 전 장관에 이어 다시 비(非)육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된 것이다. 육군, 특히 육사 출신을 꺼려 하면서도, 민간인 출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내세우기는 조심스러워 하는 문재인 정권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인사다. 하지만 기존 인사의 틀을 끊임없이 깨면서 ‘코드인사’에 용감한 행태를 보면, 문재인 정권 임기 중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초대 이범석 장관부터 신임 정경두 장관까지 모두 45명이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장면 정권 시절 현석호 장관이 9대와 11대 장관을 지내, 대수로는 46대이지만 45명임). 5·16혁명 이후 오랫동안 육군 장성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맡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지만, 민간인 출신 장관도 5명이 있었다. 비육군 출신으로는 해군 출신이 3명(손원일, 윤광웅, 송영무), 공군 출신이 4 명(김정렬, 주영복, 이양호, 정경두), 해병대 출신이 1명(김성은)이다. 나머지는 모두 육군 출신이다.

초대 이범석 장관(1948.8~1949.3)은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던 광복군 참모장 출신이다. 초대 국무총리로 국방장관을 겸임했다. 여순반란 등 창군 초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정훈제도를 도입하고, 여순반란 이후 숙군을 단행하는 등 국군의 기초를 놓았다. 이후 주중(대만) 대사로 나가 있다가 6·25가 발발하자 귀국, 전쟁수행에 대해 자문했다. 1952년 5~7월 부산정치파동 당시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인 제2대 신성모(1949.3~1951.5) 장관은 상선 선장 출신이다.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나 외국인들은 그를 ‘캡틴 신’이라고 불렀다. 일제시대에는 영국 상선 선장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제2대 내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서리를 지냈다. TV드라마 등에서는 ’아부꾼‘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나름 강한 성격으로 부서를 장악했다고 한다. 6·25 패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다가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물러났다. 이후 주일대표부 대표(주일대사)를 지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방위군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자신의 비서 출신인 이기붕을 제3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후일 1960년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다가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자살한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은 부정선거의 원흉으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국민방위군 사건을 잘 수습했다고 해서 국방장관 재직 시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시장, 국회의장 등을 지냈다.

국군 장성 출신 첫 국방부 장관은 제4대 신태영 장관(1952.3~1953.6)이다. 대한제국 육군유년학교와 무관학교를 거쳐 망국 후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 6·25 발발 전 제3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나, 대북낙관론을 주장하는 신성모 장관과 마찰을 빚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들 신응균도 육군중장으로 예편했으며, 국방부 사무차관을 지냈다. 또 다른 아들인 신박균은 1950년 6·25가 일어난 후 17세의 나이로 자원입대, 육군 하사로 포병으로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이듬해 1월 가평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군 고위층 아들 가운데 유일한 전사자로 알려져 있다.

신태영 장관의 뒤를 이은 것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1953.6~1956.5)이다. 아버지는 상하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 일찍부터 해군의 중요성을 절감, 해방 직후 해군 창설에 나섰다. 해군참모총장 시절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평화선을 침범하는 일본 선박들을 해군을 동원해 나포했다. 장관을 그만둔 후 주서독대사, 반공연맹 총재 등을 지냈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부인 홍은혜 여사도 '해군의 어머니'로 존경받고 있다.

제6대 김용우 장관(1956.5~1957.7)은 제2대 국회의원과 국회사무총장 등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국방장관을 맡기 전에는 제6대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장관에서 물러난 후 주영대사를 지냈다. 1958년 제네바국제해양법회의에 참석했을 때, 미국 측 제안에 동조하라는 본국의 훈령을 무시하고 국익을 위해 다른 선택을 했다가 해임됐다.

제7대 장관은 초대와 3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1957.7~1960.5)이었다. 4·19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문을 받자 학생시위의 실상을 솔직히 이야기해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일조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삼성물산 사장, 공화당 의장, 주미대사 등을 지냈다. 1980년에는 신군부의 부탁을 받고 최규하 대통령 하야를 종용했다는 설이 있다. 1987년 7월 국무총리가 되어 전두환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관리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국방장관들을 보면 군 출신과 민간인 출신, 육·해·공군 출신을 번갈아 가면서 기용했음을 알 수 있다. 군 출신 국방장관이 군부를 장악하는 일을 막으려는 인사정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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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국방장관들. 왼쪽부터 이범석, 신성모, 이기붕, 신태영, 손원일, 김정렬.


이승만 정권 후 허정 과도정부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1960.5~1960.8)이 국방장관을 지냈다. 부산정치파동 당시 육군을 계엄군으로 동원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명을 거부, 군 내외에서 ‘참군인’으로 널리 존경받았다.
장면 정부에서는 민주당 정치인 출신인 현석호(1960.8~9, 1961.1~5)와 권중돈(1960.9~11)이 국방장관을 지냈다. 민주당에서는 오랫동안 국회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해서 군을 잘 알았던 소장 정치인 이철승이 국방장관 자리를 원했지만, 그가 국방장관을 맡으면 쿠데타를 할지도 모른다는 민주당 노장파의 우려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석호가 두 번이나 국방장관을 맡은 것은 그의 동생 현석주가 육사2기 출신 장성이어서 그나마 군을 조금 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동생의 육사 동기생인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을 막지 못했다. 그는 자책감에서 이후 정계에서 은퇴, 가톨릭 신앙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정치인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은 것은 내각책임제 권력구조 아래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군을 모르는 정치인 장관들은 결국 군부 쿠데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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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정부 국방장관 이종찬(왼쪽)과 장면 내각 국방장관 현석호.

5·16 직후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을 겸임했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계엄사령관도 겸직했으나, 결국 혁명을 주도했던 박정희-김종필 그룹에게 축출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 교수로 여생을 마쳤다. 5·16 당시 무능했던 육군참모총장으로 기억되지만, 6·25 때는 6사단장으로 용문산전투에서 중공군 3개사단을 격파한 맹장이었다.
장도영의 뒤를 이어 4·19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송요찬이 한 달여 동안 국방장관을 지냈다. 그는 내각수반도 겸직했다. 

송요찬의 후임은 박병권 육군중장이었다. 1963년 3월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초대 이범석 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해서 소위 ‘족청계’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강직한 성품으로 군부 내에서 존경을 받았다. 5·16 전에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모자는 박정희 아니면 박병권일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1963년 군사정부가 민정이양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다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병권의 뒤를 이어 국방부 장관이 된 제15대 김성은 장관(1963.3~1968.2)은 유일한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이자, 최장수 국방장관이다. 제3공화국 출범을 전후한 시기에 군부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으며, 월남참전 등의 업적을 남겼다. 재향군인회 회장, 대통령 안보특보를 지냈으며, 말년에는 전시작전권환수반대 등 애국운동에 앞장섰다. 김효은 전 경찰청장이 그의 동생이다.

제16대 최영희 장관(1968.2~8)은 장면 정권 시절 육군참모총장과 연합참모본부 총장(합참의장)을 지냈다. 장면 정권 당시 박정희-김종필 그룹에 의해 육군 내 기득권 세력으로 지목되었으나, 조총련 연루설 등으로 모함을 받던 박정희 소장을 감싸주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국방장관, 유정회 의장 등을 지냈다.

제17대 임충식 장관(1968.8~1970.3)은 6·25 당시 제18연대장으로 안강-기계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낙동강방어선 사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전쟁영웅이다. 육군참모차장,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장관이 됐다.

제18대 정래혁 장관(1970.3~1971.8)은 군인으로서보다는 정치인으로 더 유명하다. 5·16 후 현역 군인으로 상공부 장관을 맡아 서독차관 유치 등에 힘썼다. 1970년 장관이 됐지만, 1년 5개월 만에 실미도사건으로 물러났다. 이후 제9~1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군부 원로이자 호남 출신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제11대 전반기 국회의장, 민정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냈으나, 동향 출신으로 군과 정계에서 라이벌이었던 문형태 전 의원이 그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투서하는 바람에 정계에서 물러났다.

제19대 유재흥 장관(1971.8~1973.12)은 군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일본 육사 출신으로 6·25 초기만 해도 한국어 군사용어가 익숙지 않아 일본어로 지휘를 했는데, 이걸 북한군이 감청해서 ‘일본군 참전설’을 유포하기도 했다. 3군단장으로 있던 1951년 5월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참패, 밴플리트 장군에 의해 군단이 해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1960년 4·19 때에는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휘하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야전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했다. 말년에는 전작권 환수 반대 운동 등에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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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전반기 국방장관들. 왼쪽부터 박병권, 김성은, 최영희, 임충식, 정래혁, 유재흥.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제20대 서종철 장관(1973.12~1977.12)은 4년간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유신정권의 군부를 관리했다. 박정희 시대 ‘영남 군맥’의 대부로 하나회를 후원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초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지냈다. 1961년 5·16군사혁명 당시에는 제6관구사령관으로 자신의 부대가 혁명군사령부가 되는 걸 방치했다.

제21대 노재현 장관(1977.12~1979.12)은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지냈다. 같은 포병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1972년 10월 유신 당시에는 육군참모총장으로 계엄사령관을 지냈다. 1979년 12·12사태가 발생하자 상황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피신, 신군부의 등장을 방조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국방부 장관들을 보면, 김성은 장관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육군 장성 출신들이다. 군공이 있거나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지시에 순응할 무난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육군 대장 출신으로 군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군부 출신 인사가 나오는 것을 꺼려 했기 때문이었다.

제22대 주영복 장관(1979.12~1982.5)은 김정렬 장관에 이어 두 번째 공군 출신 국방장관이었다. 1975~1979년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공군참모총장으로는 최장수 재임기록이다. 원래 최규하 대통령은 노재현 장관을 유임시킬 생각이었으나, 12·12사태 이후 신군부의 요구로 주영복으로 바꾸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5·17 비상계엄확대, 군부의 전두환 대통령 옹립 결의 등 신군부의 요구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이후 내무부 장관(1983.7~1985. 2)도 지내는 등 5공 시절 승승장구했지만, 1997년 12·12 및 5·18 재판에서 ‘반란-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6·25 당시 육군정훈국 장교 선우휘(전 조선일보 주필)가 L-19연락기를 타고 선전 삐라를 살포할 때, 조종사가 주영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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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후반기 및 최규하 정권의 국방장관들. 서종철, 노재현, 주영복(왼쪽부터).

입력 : 2018.08.31

조회 : 7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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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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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독자 (2018-08-31)

    이승만 정권 후 허정 과도정부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196051960.8)이 국방장관을 지냈다.

    숫자가 잘못됐습니다.


    이종찬, 그는 미래에서 온 사람인가? 시간을 거꾸로 가는 국방장관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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