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잡지 <야담(野談)>에 실린 김동인의 역사소설 〈순진(純眞)〉③ : 월간조선

200년 묵은 산삼. 지난 1998년 9월 심마니 경력 40년인 이등구(71, 강원도 양구군)씨가 춘천시 북산면 속칭 장막골에서 캔 산삼이다. 사진=조선DB

☞2편 줄거리

춘보는 세납을 내려고 담뱃잎을 베었다. 근심 걱정 탄식으로 연초를 베는데 이상한 풀포기가 있어 다가가니 팔쭉지만 한 무(蕪)가 눈에 띄었다. 뿌리 끝을 조금 꺾어 입어 넣으니 쓰기가 한량없었다. 그런 무가 세 뿌리나 됐다.
춘보는 이 무를 집으로 가져와 지붕 위에 던져 놓았다.
세납을 채근하기 위해 춘보의 집을 찾은 김풍헌이 지붕 위를 보다가 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무는 바로 산삼이었다. 그러나 김풍헌은 춘보 아내에게 고삼이라고 말하며 자기 아들의 배앓이에 쓰겠다며 세 뿌리 모두를 가져갔다. 대신 세납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춘보 아내는 남편이 겨우내 담배를 피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무척 기뻤다.

----------------------------------

(계속) 때는 광무주(光武는 1897년 8월 17일부터 1907년 8월 11일까지 대한제국 고종 때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다-편집자) 초엽이었다.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놀라운 기략과 권모로서 1개 초초한 종실로서 일약 아드님을 이 3천리의 임군의 위에 모시고, 자기는 섭정 대원군으로, 8도 300주를 마음대로 흔들던 운현대감 흥선 이하응.
대원군이 섭정을 시작한 이래, 이 강토는 놀랍게 자라났다.
그새 오랫동안을 외척의 발호와 재상들의 놀림 아래서 피폐하고 참담하게 된 뒤끝을 받아 가지고 일어선 대원군은 그의 놀라운 손아귀를 펴서 조선 천지를 주물렀다.
풍속과 제요를 개량하였다.
국방을 든든히 하였다.
폐정을 일소하였다.
인재를 등용하였다.
일즉이 시정의 한 시민으로 배회하면서 이 민간에서 직접 보고 들은 많은 악정을 모두 고치고, 조선이라는 땅을 빛나는 강역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러기를 4년, 5년, 6년, 나날이 자라고 번창하여 가는 조선을 볼 때에 가까운 장래에는 아주 훌륭한 국가로 만들 만한 자신도 넉넉히 서게 되었다.

소설가 김동인 선생.

그러나 그러는 일방, 대원군에게도 근심이 생겨났다.
아침에는 푸른 실(靑絲)과 같은 것이 저녁에는 눈(雪)과 같이 되었다. 옛날 이태백도 노래한 바와 같이 제 아무리 조선의 천지를 주먹 안에 넣고 뒤흔드는 대원군이라도, 오는 백발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귀밑이 히뜩히뜩하여지고, 드러누우면 무릎 뼈가 부딪히고 탄력 있던 근육에는 주름살이 차차 잡혀 가는 늙음이라는 것은 대원군의 세력으로도 방비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이를 막을 도리가 없을까. 전국의 이름 있는 의사를 모도 불러서 의논을 하매 여출 일(一)구로
“산삼과 녹용을 많이 잡수시오.”
하는 것이었다.
앞에 할 일은 태산 같고, 나이는 차차 먹어가는 대원군은, 어떻게든 이 자기의 일의 일(一)단락이라도 맺고 싶은 일(一)심으로, 늙음을 피하기 위하여, 전국에 명하여 산삼과 녹용이 좋은 것이 나거든 값의 고하를 묻지 말고 구하여 올리라고 8도 방백에게 시퍼런 훈령을 나렸다.
더욱이 산삼과 녹용의 산지(産地)인 강원도와 함경도의 감사에게는 다짐다짐을 하였다.
그래서 함경 강원 감사는, 고나내 각 수령들에게 좋은 산삼이나 녹용이 나거든 곧 구하여 감영으로 보내라고 지령을 하고, 스스로도 사람을 내세워서 간간으로 다니며 산삼 녹용을 구하던 그 시절이었다.
이러한 시절에 김풍헌은 춘보의 집 지붕에서, 다시 구하기 힘든 희대의 산삼 세 뿌리를 얻은 것이었다.

<야담>, 1936년 9월호 판권. 편집 겸 발행인이 김동인이었다.

× × ×

산삼을 고삼이라 속여서, 전결 여덟 잎의 대신으로 받어가지고 온 김풍헌은, 즉시로 그 산삼을 잘 씻어서 좋은 백지에 싸 가지고, 그날로 원주 감영(그때는 강원도 감영이 원주에 있었다.)으로 떠났다.
산삼 가운데도 희대의 산삼. 그것도 한 뿌리가 아니요, 세 뿌리씩이나 가졌으니만치, 김풍헌의 가슴은 놀랍게 방망이질 하였다.
값으로 따질지라도 이것은 천량 줄이 아니요, 만량 줄로 올라 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값으로 따질 것이 아니다. 운현대감께서 구하시는 산삼이라, 이 희대의 산삼을 받치기만 하면, 적어도 몇 10만량이요, 그 우에 하다못해 금부도사는 한자리 놓지지 않을 것이다.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가 공개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흥선대원군의 47세 때 사진이다. 사진=양상현 교수 제공

돈과 권력―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돈의 매력과 권력의 매력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지금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희대의 산삼 세 뿌리를 등에 진 김풍헝은, 과연 천하를 발 아래 꿇어 절하는 듯하였다.
싱글벙글 밤을 도와서 감영에 이른 김풍헌은, 이튿날 삼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서, 이 산삼 세 뿌리를 감사에게 바쳤다.
이때의 강원 감사는 그 뒤 군부대신까지 지나서 연전에 작고한 사람이고 그의 자손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만치, 이름은 감춘다.
감사는 이것을 받았다. 받아 보니 이야말로, 금을 주어도 다시 구할 수 없는 희대의 산삼이었다.
“으―ㅁ. 나가서 기다리라고 그래라.”
이만치 분부한 뒤에, 감사는 즉시로 그 산삼을 운현궁에 상납할 수속을 하였다.
좋은 간지에다 먼저 편지를 썼다. ― 대감. 정무에 얼마나 노심하시는지 하정이 황공하오며, 그 대감의 보국지심에 만분의 일(一)이라고 돕고저 시생 관내 심산궁곡에 수만 명의 사람과 수 십(十)만금의 재물을 널어놓아, 구하고 또 구한 끝에 지금 희대의 산삼 세 뿌리를 구하였삽기 그대로 진붕하오니, 이것을 잡수시고 더욱 원기를 얻으셔서, 일(一)층 더 정무를 보시기를 바라나이다. 이러한 편지를 썼다. 그러고 상자 하나를 큼직하게 잘 짜서 그 산삼 세 뿌리를 넣어서 든든한 하인 하나를 구해서 편지와 함께 봉물짐을 서울 교동 운현궁으로 부쳤다. (계속)
(출처=《야담》, 1936년 9월호, p 155~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