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흔들고 있다. 미국에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판을 깰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한에는 통일 문제를 자주적,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가자고 권유했다. 한미(韓美) 공조에 혼선을 줘 향후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각)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호전적 내용의 편지를 보내 그의 방북을 무산시켰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영철은 편지에서 "비핵화 협상은 다시 위기에 처해 있으며(at stake) 결딴이 날 수도 있다(may fall apart)"고 미측을 협박했다. CNN은 해당 내용을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3명으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CNN에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 초기 협상이 어그러진다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CNN은 "편지에는 미국이 평화협정 서명을 향해 진전된 조치를 취하는 것과 관련해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김씨 정권은 (협상) 과정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북한 체제를 사실상 보장해 주는 평화협정은 종전선언과 달리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조시 로긴 <워싱턴포스트(WP)>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도 지난 27일 칼럼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금요일(방북 취소를 결정한 24일) 오전 김영철로부터 비밀 서한을 받았고, 이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줬다"고 밝혔다. 로긴은 "메시지의 정확한 내용은 확실치 않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으로 하여금 방북을 취소하게 결정할 만큼 충분히 호전적(sufficiently belligerent)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북한은 선전 매체를 통해 우리 정부에는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29일 '자주통일, 평화번영을 위한 역사적 선언'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민족의 화해·단합과 통일로 향한 현 정세 흐름을 계속 추동해 나가자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다그쳐야 한다"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북과 남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야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북남관계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와 현실을 통하여 확증되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