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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박태원이 쓴 〈소년 김유신〉 ①

[옛 잡지를 거닐다] 한국문단에 모더니즘 활짝 연 박태원의 소년 역사소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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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잡지는 흥미롭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가득한 보물상자다. 먼지를 탈탈 털고 다시 읽으면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함과 마주할 수 있다. 옛 잡지를 지금 읽어도 진부하지 않고 새롭다. 잡지 필자 대개는 20세기를 활짝 불 밝혔던 문인(文人)들이어서 눈길이 더 간다. 앞으로 옛 잡지에 실린 보석 같은 글을 소개한다.

구보(仇甫) 박태원(朴泰遠·1910~1986)은...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 작가 이상(李箱)과 함께 1930년대 한국문단에서 모더니즘의 문을 활짝 연 인물이다. 일제가 프로문학을 탄압하던 시절, 언어의 회화성과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한 모더니즘 사조는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묘사하는 새로운 창작방식이었다.

유학파 출신(일본 법정대학 예과 2학년 중퇴)인 박태원은 ‘대모테 안경에 갑빠 머리를 한 멋쟁이 모던보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바다거북인 ‘대모(玳瑁)’ 등딱지로 만든 안경테가 대모테 안경이다. ‘갑빠’는 일본의 민간설화에 등장하는 더벅머리 스타일의 짓궂은 동물. 대모 안경과 갑빠 머리는 1930년대 경성과 도쿄 멋쟁이만 도전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당시 월북을 택해 1988년 해금(解禁)조치 이전까지 그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월북인지 납북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월북으로 보기 힘들다.) 해금 이후 박태원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북한에서 박태원은 더 이상 〈천변풍경〉으로 알려진 모더니즘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북한에서 최고의 역사소설가로 평가받고 있었다. 전기적(傳記的) 연구를 통해 박태원이 사망(1986년 7월 10일)하는 순간까지 3부작 대하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그 후 국내에 정식 출판되기에 이른다. 박태원은 ‘북한에서 작가로서의 자기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광운대 조영복 교수) 월북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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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역사소설 〈소년 김유신〉.

조선 사화
 
소년 김유신
 
박태원 지음 이병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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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태원
김유신(金庾信)은 나이 열다섯에 화랑(花郞)이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추앙하고 따르는 바 되었거니와 이것은 그가 열일곱 살 때의 이야기다.
당시 신라(新羅)의 형세는 외롭고 위태로웠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말갈(靺鞨)이니 하는 만만하지 않은 나라들이 신라의 강토를 자주 침노하는 것이다.
이를 보고 김유신의 젊은 피는 끓었다.
그는 마음이 심히 분하고 또 슬펐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라 형세가 장처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
나라를 사랑하고 근심하는 나머지에 소년 김유신은 마침내 뜻을 결하고 어느 날, 중악(中嶽)이라는 산, 석굴(石窟) 속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 어두운 석굴 속에서 그는 홀로 단정히 꿇어 앉아, 하늘께 맹세를 하는 것이다.
적국(敵國)이 무도(無道)하여 이리처럼, 범처럼 우리나라를 침노하오매, 하루라도 편안한 적이 없사옵니다. 저는 한낱 어린 사람으로, 재주도 없사옵고, 힘도 부족하오나, 뜻만은 이 화란(禍亂)을 없이 하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하느님은 이 정성을 굽어 살피시와 저에게 힘을 빌려주시옵소서.”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기도를 드리기 나흘째 되는 날이다.
하늘에서 나렸을까? 땅에서 솟았을까? 난데없는 한 노인이 몸에 굵은 베옷을 입고 김유신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김유신을 향하여 빙그레웃음을 던지며 말하는 것이다.
이곳은 독한 벌레와 사나운 짐승이 많아서 사람이 올 곳이 아닌데, 자네는 어떻게 여기를 혼자 왔으며, 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노?”
김유신은 그가 대체 사람인가 귀신인가, 속으로 의아하여 하기를 마지않으며,
, 저는 하늘에 기도드릴 일이 있사와, 홀로 이곳에 왔사옵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한 다음,
저는 그러하옵거니와 노인장께서는 대체 어디로서 오셨으며 또 존명(尊名)은 누구시옵니까?”
하고 한마디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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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신령의 그림이다.

노인은 역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운 채 대답한다
.
내 이름이 무엇이냐고? 또 날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나는 본래부터 집도 없고, 가거나 오거나 모두가 인연(因緣)을 따라서 할 뿐, 또 내 이름도 구태여 알 것이 없지.”
김유신은 노인이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본래 집도 없고, 거거나 오거나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할 뿐이라…… 또 이름도 구태여 알 것이 없다고……, ! 그러면 이분은 사람이 아니라 신령이신가 보다. 내 정성에 감동하시어 형상을 나타내신 신령이신가 보다……)
김유신은 그렇게 생각하자, 즉시 몸을 일으키어, 그에게 공손히 두 번 절하고,
저는 신라 사람으로, 매양 적국이 무도하게도 침노하는 것을 보옵고 마음의 절통한 정을 억제할 길 없사와, 이곳에 온 것이옵니다…….”
하고, 먼저 자기가 아직 나이 어린 몸으로 이렇게 깊은 산, 이렇게 어두운 석굴 속에 혼자 들어 와 있는 까닭을 말한 다음에,
이곳에서 노인장을 봬온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노인장은 저의 정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부디 적국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술법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고 빌었다.
그러나 노인은 도무지 입을 다물어 아무 말이 없다.
김유신은 다시 청하였다. 세 번 네 번을 청하였다. 세 번 네 번을 청하여도 아무 말이 없는 노인을 향하여 그는 마침내는 눈물까지 흘리며 여섯 번 일곱 번을 간절히 빌고 또 청하였다. (계속)
(출처=少年19486월 창간호, 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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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少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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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발행된 잡지 《少年》. 발행처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주)문화당이다.
 
《소년》은 1908년 최남선이 발간한 대한민국 최초의 잡지다. 1911년 5월까지 통권 23호를 발행했었다. 문학잡지 《少年》은 '조선일보'에서 발행한 월간 아동잡지다. 1937년 4월부터 1940년 12월까지 총 45호가 발행됐다.
'월간조선'이 소개하는 《少年》은 1947년 6월 재창간됐다. 발행처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주)문화당이다. 편집주간은 아동문학가 방기환(方基煥·1923~1993) 선생이다.

입력 : 2018.08.22

조회 : 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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