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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제왕, 기자

[옛 잡지를 거닐다] 이서구의 <기자 시절> ④(끝)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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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잡지는 흥미롭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가득한 보물상자다. 먼지를 탈탈 털고 다시 읽으면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함과 마주할 수 있다. 지금 읽어도 진부하지 않고 새롭다. 잡지 필자 대개는 20세기를 활짝 불 밝혔던 문인(文人)들이어서 눈길이 더 간다. 앞으로 옛 잡지에 실린 보석 같은 글을 소개한다.

이서구(李瑞求·1899~1981) 선생은 극작가, 연극인, 작사가로 토월회 창립회원,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 기자, 조선연극협회 회장, 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작품으로 〈어머니의 힘〉, 〈부여회상곡〉, 〈익모초〉,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홍도야 우지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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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장례식 모습

순종과 내 조부
 
지난번 제1화 때 말한 바도 있거니와 나의 조부는 고종 때 대과(大科)를 하고 관계(官界)에 나아가 상감(上監)의 총애도 두터워 그야말로 전도양양한 벼슬아치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3품 때에 한일합병의 쓰라림을 당하고 순종황제의 마지막 가자(加資·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편집자)에 정2품을 얻어했다. 그에게 있어서 한일합병은 나라도 망하였거니와 자기일신도 갈 곳을 잃은 뒤웅박 신세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집을 팔고 가족을 끌고 시골로 갔던 것이다.
 
나라가 망한 이상 더 볼 나위 없으니 농토에 묻혀서 잔명이나 유지하자는 방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꿈이 한창 피어나는 나로서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농촌에서 썩을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상심은 끼쳤으나 나는 나대로의 인생을 개척하려고 서울로 와서 신문기자가 되고, 그후 다시는 시골집에는 갈 용기도 없이 그저 기회만 엿보고 있을 동안 몇 해는 지나 순종 황제가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이조 마지막대 인군의 인산(因山·일종의 황제와 태자, 태손, 비의 장례-편집자)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일인들은 저의들의 예법대로 일개 황족의 장의로서 집례를 하자는 것이요, 이씨종실의 친척과 구신(舊臣)들은 왕위에 올랐던 분의 장사이니 이번만은 한국의 군왕을 장사하던 옛법으로 지내자고 고집했다. 며칠을 두고 일본 궁내성과 절충한 결과, 마침내 공식으로는 일단 일본식을 따르나 그 다음 모든 절차는 구식으로 해도 모른 체 하겠다는 합의를 보았다. 이 소문이 한번 퍼지자 각 지방에 숨어살던 이조 때 고관대작들이 모두들 들끓어 서울로 모여들었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인정전 높은 집을 대하는 감구지회! 그들은 제각기 구한국시대의 관직에 의해 예장을 했다. 장속에 깊이 감추었던 예복 다시 떨치고 올라온 것이다. 인산에 필요한 모든 차비는 구식으로 착착 진행되고 창덕궁 동인각에는 곡반(哭班·국상 때 곡하던 벼슬아치의 반열-편집자)이 배설되었다. 곡반에도 계급이 있어서 내 조부는 제2등에 해당한 자리에서 나라설움과 자기설움을 통틀어 풀어놓는 광영을 누렸다. 이때 나는 이왕직 출입기자단의 간사장이었다. 신문기자는 무위(無位) 무관(無官)의 뜨내기 신세인지라 갖다 부칠 자리는 없고 어느 계급에든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자유가 허여되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나의 조부를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부축해서 곡반까지 안내를 했다. 내 조부는 놀라는 듯 대견한 듯
 
네가 여기는 어떻게 마음대로 드나드느냐
 
의아스럽게 묻는다.
 
할아버지, 신문기자가 그렇게 낮은 벼슬로 아시죠? 할아버지는 정2품 자리에 서시지만 저는 정1품 자리에 섭니다.”
 
한창 뽐내며 나는 일부러 제일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소위 귀족 종친 등 으리으리한 사람들이 그득했다. 그러나 신문기자를 내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근경을 똑똑히 보고 ~ 그놈이 제법이란 말이야. 궐내에서 나보다 웃자리에 섰더란 말이야!” 내 조부는 신문기자가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임을 가장 절실히 알고 돌아가신 셈이다. (끝)
 

입력 : 2018.08.20

조회 :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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