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28일 서울과 인천에서 반미(反美)집회가 이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반미단체들은 자주통일과 종전선언 촉구,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국군기무사령부 해체 등을 주장했다.

한 반미단체는 27일 인천 송학동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에 불을 지르고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60대 목사 2명을 포함한 단체 회원 3명은 오전 2시경 4m 높이의 동상 받침대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갔다. 맥아더 동상 다리 부분에 이불을 놓고 불을 질렀다.

'점령군 우상 철거! 세계 비핵화! 미군 추방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소리쳤다.

"나는 대한민국의 목사로서 민족 분단의 비극을 안겨준 전쟁 사기꾼 맥아더 우상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이 일부 언론에 보낸 글에서도 맥아더 장군에 대한 적의를 읽을 수 있다.

"공산화를 막아준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영구 주둔시키며 전쟁 침략 연습을 하는 미국은 우리를 지배하려는 전쟁 수탈국 제국주의에 불과하다. 맥아더는 이 땅을 분단시킨 원흉이며, 만주와 우리 땅에 핵폭탄 사용까지 계획했던 장본인임에도 우리에게는 공산화를 막아준 우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다음날에는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반미시위가 열렸다. 단체들의 주장 내용은 역시 미군 철수, 자주통일이었다.

"종전을 선언하라, 종전을 선언하라! (...) 우리 이제 새 시대에 걸맞게 미국과 적폐 세력들을 무찌릅시다!" 

이들은 애당초 대사관 포위를 시도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물러나 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반미시위는 곳곳에서 일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 반발도 있었다. 지난 2월 당시 김영섭 자유한국당 상근부대변인은 관련 논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한 시 불법적인 반미시위로 국빈 경호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시키고 국민들의 분노를 자초한 것은 바로 좌파들이었다. 당시 반미 시위대가 경찰이 ‘경호구역’으로 설정해 집회를 차단한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광장으로 물병 등의 쓰레기를 투척해 트럼프 대통령 일행의 차량이 반대 차선으로 주행하는 엄청난 불상사가 벌어졌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것뿐인가. 이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방한 때는 좌파 성향 단체가 입국금지요청 퍼포먼스를 벌였고, 이를 보다 못한 일부 네티즌이 미국 수사기관에 신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펜스 부통령의 평택 2함대 방문에도 좌파 성향 국민주권연대 회원들은 피켓을 들고 반미시위를 벌였다. 동맹국 지도자에 대한 비난과 반대시위야말로 국격 훼손이자 국제적 조롱거리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렇듯 과격한 반미시위가 촉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진보 정권 모두 왜 반미사상을 뿌리 뽑지 못했나. 반미의 뿌리는 어디까지 내려가 있는 걸까.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 4월 9일 '조선펍'에 게재한 칼럼에서 반미주의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사회운동은 8·15 해방공간 이래의 그런 위장된 '민족' 담론, 궤변적 '평화' 담론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민주화 이후엔 그 흐름이 맥아더 동상 철거, 평택 미군기지 반대, 효순이·미순이 사태, 광우병 소동, 한·미FTA 반대, 사드 배치 반대로 드러났다(소박한 주민들 아닌 운동꾼들이 그렇다). 그러더니 요 며칠 사이엔 아주 정공법(正攻法)적인 반미투쟁으로 표출되고 있다.

야금야금 작전인 셈이다. 아라비아 사람의 천막 안으로 처음엔 앞다리만 넣자고 하다가 나중엔 네 다리 다 넣고 끝내는 주인을 아예 천막 밖으로 내쫓은 말(馬)의 우화가 꼭 그랬다.

처음엔 저들은 자신들은 반미는 아니고 그냥 '비미(미국 비판)'라고만 했다. 그다음엔 '반미면 어떠냐?'며 반쯤 시인했다. 그러더니 이젠 '그래 우리 100% 반미다, 어쩔래?'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 나라는 스스로 지킬 줄을 모른 채 적(敵)을 한 발 한 발 불러들이고 키워주었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장은 저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史'(산처럼, 2017)에서 한국사회 내 반미사상의 근원을 '외교 정책관(觀)의 불일치'로 봤다.

즉 북한과 중국,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이 미국과 불일치할 경우, 한국사회에서 반미사상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전략 면에서 한미 양국이 서로 일치되지 못할 경우, 반미사상은 더 심하게 드러난다. 관련 대목이다.

"한국의 반미 감정이 새로운 이슈들을 통해 표현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요인은 북한, 중국, 일본에 대한 정책관의 불일치다. (...) 진보 세력이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면 아마도 새로운 햇볕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한편 그러한 접근법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과거에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미국인 대부분은 이제는 햇볕정책을, 의도는 좋았으나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접근법으로 여긴다.

(...) 그러나 한국의 주요 진보 세력은 여전히 북한을 다루는 데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이 바로 햇볕정책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 이들 진보 세력은 햇볕정책이 실패한 까닭을 북한의 행동이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가정이나 정책 시행 과정의 결합으로 보지 않는다. 전적으로 (당시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진보 세력은 다시 권력을 얻으면 더 강력한 결의와 과단성을 갖고 햇볕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경우 한미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을 작금의 대북정치에 대입해 보면 이렇다. '유화책을 쓰되 제재도 병행해 나가는 미국. 반면 판문점 합의 이행을 비롯해 군 개혁을 명분으로 병력 규모 축소와 휴전선 경계 철수에 돌입하는 한국. 그리고 난립하는 각종 반미집회 (...) 현 정부의 대북외교 캐치프레이즈인 '한반도 운전자론'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함께 진정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국과 일치되지 못한 정부의 대북관(對北觀)을 반미시위가 대변해 주고 있는 걸까?' 이는 어디까지나 최근의 반미현상을 책 속 이론으로 해석했을 따름이다.

스트라우브 전 과장의 지적이다.

"분명 과거에 한국인들은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손아귀에서 큰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가 일구어낸 성취를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그러한 자긍심의 표현이 외국의 (실제가 아닌 그렇게 인식된) 무례를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필요로 하거나 수반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반(反)'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반(反)'의 반응은 미국에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익에도 해가 될 수 있다."

원로 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작년 11월 2일 '매일신문'에 게재한 '반미(反美)는 이적(利敵)이다'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유지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반한운동 같은 것도 없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1년 전 촛불집회의 시작과 더불어 확대되기 시작한 반미운동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반미운동의 확대와 과격화를 방치하고 있으며, 북한 핵무기 제거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미운동은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고 노력하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가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면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반미운동을 단호하게 진압해야 하고, 국민은 반미운동의 비판·저지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