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르비아 니콜라 테슬라 B플랜트 전경. 사진=세르비아 SeeNews
세르비아에 온 지 3일째인 25일 밤 10시 30분쯤,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호텔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정전(停電)이 됐다. 언제 겪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정전이었다. 그걸 타국에서 오랜만에 겪으니 문득 불안감이 밀려 왔다.
프런트로 내려가 물어보니 직원이 “미안하다”면서 “이 일대가 다 정전됐다(shut down)”고 했다. ‘언제 복구되느냐’고 했더니 “잘 모른다(not sure)”고 말했다. 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내다봤다. 온 동네가 흑연을 들이맞은 듯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며 시간을 때우던 중,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단기 올라가는 소리 같았다. 일순간 방에 불이 들어왔다가 이내 다시 꺼졌다. 적막함 가운데서 그 소리가 두세 번 정도 나며 불이 들어왔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공포영화에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깔리는 효과음 같았다. 그렇게 두 시간여가 지난 후 전기가 들어왔다. 밖을 내다보니 가로등에 불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세르비아의 전력 현황은 어떨까. '코트라(KOTRA)'가 올해 초 내놓은 ‘2018 국별 진출전략(세르비아)’에 따르면 현재 세르비아 에너지 발전 비중은 화력발전 69.7%, 수력발전 29.3%, 신재생에너지 1% 순이다. 최근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전력생산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한다.
세르비아는 전력공사를 포함한 국영기업들이 전력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세르비아 전력공사(EPS, Elektroprivreda Srbije)가 총 7326MW 규모의 화력 및 수력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다. 니콜라 테슬라 A·B(Nikola Tesla A and B) 화력발전소에서 2787MW를, 코스톨락 A·B(Kostolac A and B) 화력발전소에서 921MW를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16개 수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세르비아 정부는 EPS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원래 세르비아는 전력을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 수출했었지만, 지금은 자국(自國) 내 소비량 증가와 가뭄 등으로 2017년에는 전력 거래 적자를 기록했다. 2016년 세르비아 에너지부는 2020년부터 3000GWh, 2030년에는 3600GWh의 전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르비아 당국은 기존 발전소 현대화, 신규발전소 건설, 송·배전선 교체 및 전력손실 최소화를 위해 2030년까지 약 90억 유로를 투입할 계획이다.
세르비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다. 반면, 인접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1981년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공유·운영하고 있다. 루마니아도 자체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2009~2010년경 세르비아 내부에서도 원전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건설자금 부족과 안전성 문제 등으로 신중하게 바라보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엔 탈(脫)원전 바람이 불며 기존의 원전은 물론, 신규 원전 건설도 백지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이 사장(死藏)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원전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극심한 혹서기를 버틸 수 있을까. 40도를 육박하는 고온에 전력 소비량이 급격히 늘자, 원전 가동을 늘리고 있다는 국내 보도도 나왔다. 세르비아에서 잠깐의 정전을 겪으며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연히 힘이 솟았다. 한편으론 그런 원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