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연합뉴스TV 캡처
최근 고대가요의 문학적 해석을 두고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인천의 한 사립여고 교사가 ‘구지가(龜旨歌)’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는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를 남자의 성기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교사의 설명이 학생 성희롱에 해당된다며 징계 절차를 밟았다.
구지가는 고대 가락국의 아홉 추장들이 김수로왕을 통치자로 맞이하면서 부른 노래다. 은유와 상징 표현이 많은 작품인 만큼 신화적 맥락, 문학적 시각, 정치적 관점 등으로 다채롭게 읽혀왔다. 여기서 거북의 머리를 ‘남근(男根)’으로 해석한 내용은 학계의 연구 결과이자 역대 교육과정에서 되풀이된 설명이다.
구지가는 군주를 옹립해 왕국의 기틀을 세우려는 ‘등극의식’, 하늘의 힘을 빌려 국운을 일으키려는 ‘신탁의식’, 거북이를 제물로 삼아 앞날을 점치던 ‘귀복의식’ 등으로 해석됐다. 특히 거북의 머리(龜首)는 제의에 사용되는 토템, 우두머리, 남근 등으로 전해졌다. 남근은 왕권과 풍요의 상징 외에 욕망을 뜻하기도 했는데, 구지가는 이를 정화시키는 주술가요로도 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수업으로 배우고 시험 문제로 풀어왔던 구지가의 남근 해석을 희롱의 표현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설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거북의 머리와 외양이 비슷한 남근만 연상해서 불쾌했던 건 아닐까. 교육계가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학설’을 정규 교과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왔다고 보기도 힘들다.
‘남근’이라는 한 단어가 불러올 파장이 이렇듯 크다면 다른 문학 작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성적 단어가 포함되거나 성적 유희의 성격을 지닌 작품은 교과과정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걸까. 고려속요(高麗俗謠) ‘쌍화점(雙花店)’이나 조선 후기 사설시조(辭說時調) 중 개방적인 성 인식을 보여준 작품들은 어떨까. 성 규범을 파괴하는 문란한 작품이기에 폐기해야 할까.
특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불린 쌍화점에는, 여러 존재가 여성으로 해석되는 화자의 손목을 잡는 내용이 나온다. 승려, 우물가의 용, 주점·만두가게 주인 등이 유혹을 하는 것이다. 이는 소위 “야한 유행가 수준”이 아니다. 당시는 원나라의 내정 간섭으로 왕권이 동요하던 시절이다. 암울한 고려시대의 ‘퇴폐적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도덕과 기율이 무너진 세태를 풍자한 작품까지 몇몇 표현을 문제 삼아 백안시할 수는 없다.
세상은 변했다. 퇴폐와 구습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말조심과 행동거지 단속을 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도 고쳐야 한다. 성 인식의 바로잡기가 시작됐다. 지난겨울과 봄, 여러 사람이 용기 내어 외친 ‘미투(me too) 운동’ 덕분이다.
그러나 무도(無道)한 음란 행위를 단죄한 잣대로, 문학 작품의 학술적 해석을 매도하는 건 안 된다. 물론 지금까지 학술적 관점 내지는 낭만적 예술을 빙자하여 만행을 저지른 이들도 많았다. 해당 교사의 표현 수위와 학생들의 불쾌감은 어느 정도였는지도 제대로 파악해 판단해야 한다.
잘못은 벌하되 작품은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표현의 자극성에 대한 시비(是非)는 가리되, 작품에 대한 오해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