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원순의 ‘삼양동 옥탑방 살이’는 ‘직무유기’? : 월간조선

박원순 시장이 9평짜리 옥탑방에서 한 달 동안 살 계획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증금은 없고, 월세는 100만~200만 원이 지급된다. 물론 이는 서울시 예산에서 나가는 돈이다. 이와 관련해서 ‘세금 낭비’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서울시가 보증금 28억 원을 내고 빌려 운영하는 ‘서울시장 관사’가 있는 마당에 또 다른 거처를 마련하는 걸 두고 하는 주장이지만, 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연간 예산 32조 원을 집행하는 서울시의 시정에 도움이 된다면 적재적소에 예산을 써야 한다. 문제는 박원순 시장이 ‘삼양동 옥탑방’에 살게 되면 지금껏 서울시가 그토록 강조해 왔던 ‘서울시장 관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서울시정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서울시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서울시는 평소 “관사는 개인 사저가 아닌 시정 현안을 논의하고 국내외 주요 인사를 접견하는 곳”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음은 '개인 박원순'과 '서울특별시(대표자 박원순)'가 “'월간조선'이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했다”며 손해배상 2억 원과 정정보도 등을 요구하며 보내온 고소장에 기술된 주장이다.

“서울특별시장 공관(관사)은 시정 운영에 필수적인 해외 대사 초청, 국회의원·시의원·언론인 등 초청 시정 설명회 및 정책토론회 개최 등 국내·외 주요 인사 접견 및 초청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재난·재해 등의 긴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한 회의 개최 등 24시간 안정적인 직무수행을 위해 마련하고 운영하는 공적 시설이지, 박원순 시장 개인 및 배우자나 가족을 위해 사사로이 운영되는 시설이 아닙니다.”

2015년 10월 2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들을 서울 가회동 관사로 불러 관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당시 서울시장 관사였던 혜화동 저택 입주 여부에 대해 “접견 같은 거 하려면 필요할 것 같기도 해 검토하고 있다(2011년 10월 27일)”고 밝힌 바 있다. 관사 운영의 주요 사유 중 하나가 ‘접견’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월간조선'은 지난해 8월 30일에 서울시장 취임 이후 박원순 시장의 국내·외 인사 접견 내역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서울시는 “국내 인사 접견 내역은 생산·관리하지 않는다”면서 외국 인사 접견 내역만을 보내왔었다. 국내 인사 접견 내역이 없다는 얘기는 박 시장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사에서 어떤 국내 인사들과 무슨 용무로 만나 얘기를 나눴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공무 차원에서 이뤄진 국내 인사 접견 내역은 생산·관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외국 인사 접견 내역은 기록하고 공개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개인 박원순'과 서울특별시(대표자 박원순)가 “'월간조선'이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했다”며 손해배상 2억 원과 정정보도 등을 요구하며 보내온 소장 중 '관사 운영 이유'가 기술된 대목이다.

한편 박원순 시장은 시장 관사에서 얼마나 많은 외국 인사를 만났을까.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0월 27일부터 2017년 8월 31일까지 박 시장이 공식적으로 외국 손님을 맞은 ‘접견’ 횟수는 총 321회다.

이 중 서울시장 관사에서 만남이 이뤄진 건 2회(▲2016년 5월 10일-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2017년 3월 15일-추궈홍 주한 중국대사)에 불과하다. 최소한 국외 인사 접견을 위한 용도로 관사를 운영한다고 얘기하긴 어려운 셈이다. 국내 인사의 경우 국회의원, 시의원을 만나려고 시민 세금을 들여 대규모 저택을 관사로 이용하는 게 타당할까.

서울시는 지금의 가회동 저택에 보증금 28억 원을 들여 시장 관사를 마련할 때 반발이 일자 “시청에서 직선거리 2.53km 내에 있어 출·퇴근 및 시정현장 방문 시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긴급 상황 발생 시보다 신속한 현장 대처 등이 가능해 시장의 직무수행과 시민의 안전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했었다. 시청과 시장 관사가 가까워야 하므로 도심 한복판에 시장 관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박원순 시장은 은평구 진관동의 서울도시주택공사(구 SH공사) 소유 아파트에 1년 동안 살았을까. 박 시장은 ‘신속한 현장 대처’를 포기하고 왜 거리도 멀고, 상습 교통 체증 구간을 지나야 하는 은평구에 관사를 뒀을까. 지금은 또 왜 역시 시청과 거리가 멀어 신속 대응이 어렵고, 교통이 불편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강북구 삼양동’에 임시로 거주하려는 것일까.

2015년 2월 8일,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박원순 시장의 '가회동 저택' 입주와 관련해서 '28억 호화 관사'라고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 예산을 들여 ‘서울시장 관사’를 운영하는 이유가 타당하다면, 현재 박원순 시장이 계획하는 ‘옥탑방 살이’는 시정 운영에 필수적인 관사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서울시민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이다. 박 시장과 서울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박 시장의 ‘옥탑방 살이’는 서울시장의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박원순 시장이 24시간 안정적인 직무 수행을 위한 관사를 비우고 삼양동 옥탑방에서 사는 게 '직무 유기'가 아니라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그렇다면 박 시장과 서울시는 그동안 불필요한 시장 관사를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서울시 예산을 허비한 꼴이 된다. 공무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 재산상의 손실을 끼친 ‘배임’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6ㆍ13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광역단체장들이 관사에 입주해 지역사회의 비판이 제기되는 지금, 박 시장과 서울시는 이 같은 ‘모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놔야 하지 않을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