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문화

아이스티(Ice-T)의 "6 in the Mornin'"

진보의 시대, 당신이 새로운 눈과 귀로 랩을 다시 마주한다면....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본문이미지
힙합 그룹인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로큰롤은 이제 한물간 장르일까. 왜 젊은이들은 힙합에 열광할까.
마치 보수와 진보의 대결 같다.
팔짱을 낀 냉소적 눈빛으론 힙합을 이해하기 어렵다.
힙합론자들은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어유희, 은유, 직유, 반복되는 라임은 물론 가사를 눈으로 보면서 그 구조와 형식, 발화와 침묵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콜로라도대 영문과 교수인 애덤 브래들리(Adam Bradley)가 쓴 《힙합의 시학》(번역 김봉현·김경주, 글항아리 刊)이 작년에 국내 번역됐는데 이런 문장이 나온다.
 
〈…처음에는 조금 미묘할 수도 있다. 당신의 귀에 다시 들리는 비트가 무대 불빛이 조금 깜박거리는 수준, 드럼이 간간이 끼어드는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내 불빛이 타오르고 비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내려침을 느끼며, 엠시는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오고 관객은 광란 상태에 빠진다. 아까와 똑같은 음악이다. 단지 조금 리믹스되었을 뿐.
언어가 빚어내는 낮은 리듬은 베이스의 울림을 불러낸다. 한편 마음을 가로지르는 가사 구절은 고막을 통해 진동한다. 이제야 비로소 당신은 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일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음악과 가사는 그대로 있었다. 받아들이는 당신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힙합의 시학이다.…〉(p11)
 
랩은 입으로 표현하는 시(詩)다. 문학으로서의 시보다 소리에 좌우한다. 여기다 리듬의 쾌감, 동음 이의어나 펀치라인 같은 청각적 정체성에 기반한 시적 비유를 동원한다. 여기다 음색, 억양 등 음악적 요소의 조절이 더해진다.
그렇게 되면 랩은 비로서 자신이 시를 소리 내어 하는 퍼포먼스에 가장 정합한 장르로 변신한다.
 
랩 비트는 대부분 4/4 박자다. 래퍼에게 한 박자란 시의 한 음보와 같다. 다섯 번째 음보가 시구절 하나의 끝을 의미한다면 네 번째 박자는 랩 마디 하나의 끝을 뜻한다. 하나의 시구절이 곧 하나의 랩 마디인 셈이다. 따라서 엠시가 16마디의 랩을 뱉는다면 이것은 곧 16줄의 랩 구절이 된다.
본문이미지
다음은 힙합사의 위대한 고전 중 하나인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가사 일부다.
 
Standin' on the front stoop hangin' out the window
Watchin' all the cars go by, roarin' as the breezes blow

현관 앞에 서서 창문에 기대고 오가는 차들을 지켜봐
불어오는 바람처럼 으르렁거리는 차들
 
강조되는 단어들(Standin', front, hangin', window)이 자연스럽게 비트에 맞춰 떨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줄은 단어의 발음과 비트에 맞추는 악센트 등으로 볼 때 거의 똑같은 구절이다. 단어들은 비트와 정확히 보조를 맞춘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확히.
그러나 모든 가사가 옮겨 적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
 
Broken glass everywhere
People pissin' on the stairs, you know they just don't care
깨진 유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사람들은 계단에 오줌을 싸지. 그들은 누가 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얼핏 보면 이 두 줄은 마지막 단어의 발음밖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where, care). 이 두 줄이 어떻게 똑같은 마디 안에 위치할 수 있는 걸까? 그러나 랩의 실제 퍼포먼스를 떠올린다면 의문이 풀린다.
glass와 everywhere 사이에 공백을 넣었다. 그리고 everywhere의 발음을 압축했다. 이것은 가사를 옮겨 적을 때 정확히 반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기록만을 본다면 이러한 시적 효과를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다.
 
본문이미지
시인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
랩의 시적 면모는 가장 짧은 순간의 예술적 시도를 통해 도드라지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랩의 특성은 과거의 훌륭한 시가 현재의 훌륭한 랩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드러낸다. 다음의 둘을 비교해 보자. 왼쪽은 1931년에 쓰인 시인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의 "Sylvester's Dying Bed"이고, 오른쪽은 래퍼 아이스티(Ice-T)가 1987년에 발표한 싱글 "6 in the Mornin'"이다. 두 작품 사이에는 많은 세월이 존재하지만 둘은 유사한 형식을 보인다.
휴스의 시는 대체로 전통적인 4음보를 띠고 있다. 아이스-티의 랩 가사 역시 비슷하다. 두 작품은 모두 2박자, 혹은 4박자에 A-B-C-D 라임 패턴을 지닌다. 심지어 두 작품의 2, 4, 6, 8행은 통사적으로 거의 같으며 두 작품 모두 실제로 쓰이는 구어 중심으로 완성됐다.
이러한 형식은 반백 년 넘게 이어져온 흑인 시문학의 대체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I woke up this mornin' 나는 새벽 세 시 반에
'Bout half-past three. 일어났지.
All the womens in town 마을의 여성이
Was gathered round me. 날 둘러싸고 있었네.
Sweet gals was a-moanin' 그녀들이 외쳤지.
"Syvester's gonna die!" "실베스터가 위급해요!"
And a hundred pretty mamas 그러자 백여 명의 예쁜이가
Bowed their heads to cry. 울먹거렸네.
- 랭스터 휴스의 "Sylvester's Dying Bed"
 
 
본문이미지
랩퍼 아이스티
Six in the mornin' 새벽 6시
Police at my door 경찰이 들이닥쳤지
Fresh Adidas squeak 새삥 아디다스를 신고
Across the bathroom floor. 화장실로 향했지
Out my back window, 뒤쪽 창문으로
I made my escape. 재빨리 빠져나왔어
Don't even get a chance, 즐겨 듣던 테이프를
To grab my old school tape. 챙길 시간은 없었지
- 아이스티의 "6 in the Mornin'"
 
 
가사는 랩을 그냥 귀로 들을 때보다 그 가사를 종이에 글자로 옮길 때 더 정확히 살펴볼 수 있다. 종이 위에서 랩 가사를 볼 때 우리는 그 어체를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라임의 끝이 어디인지, 행이 바뀌는 부분이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본문이미지
기록된 랩 가사를 시처럼 마주하는 일은 ‘즐거움’뿐 아니라 ‘이해’까지 동시에 가능케 한다. 종이 위의 라임을 천천히 살펴보는 일은 아마도 당신에게 친숙한 라임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 글은 힙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힙합의 시학》을 인용, 발췌했음을 밝힌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시인 김경주가 번역해, 힙합 혹은 랩의 가사가 시문학의 한 갈래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입력 : 2018.06.27

조회 : 802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