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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핵심, 전대협 출신 운동권 분열 시작되나?

이번 일 계기로 우상호, 임종석 두 운동권 선후배 사이의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 나와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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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의원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를 내방한 임종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DB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팟캐스트 ‘아개정(아나운서 개그맨 정치인)’ 19화에 출연해 최근 만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들은 것이라며  4·27 남북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진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솔직하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했다고 하더라. 문재인 대통령도 놀랬다고 했다. 김정은이 그런 얘기를 했다더라. (김 위원장이) 김영철 있는 데서 ‘저 사람(김영철) 밑의 급하고는 이야기가 잘 돼서 뭘 좀 추진하려고 했는데 저 사람만 들어오면 잘 안 된다, 저 사람 때문에 안 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더라."
 
우 의원은 “이번에 ‘발목 잡는 과거’가 미국만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도 있었다고 고백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끌고 나오는데 북한 안에서도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 의원은 이어 “북한은 핵에 생명을 걸고 있었는데 폐기한다고 하니 군부가 불안해할 거 아니냐. 그런데 (김 위원장) 자기가 결단했다, 그런 진심을 느끼고 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실장도 (진심을) 느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임종석 실장이 김여정(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 대한 평을 따로 하신 게 없느냐”는 질문에 “잘 웃고, 차분하고, 성격이 좋아 보이더라 이런 정도로…”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는 20일 우 의원의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 의원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아침에 임 실장을 만나 물었더니 임 실장이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전달한 적도 없다’고 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 의원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만찬이라면 수십 명이 있는 자리인데 그런 반(半) 공개적인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적어 보인다”며 “우 의원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철은 북한 군부 내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대남 강경파'다. 1946년 양강도에서 태어나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그는 정찰총국장에 오른 2009년 이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조 남파(2009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2015년) 등 각종 대남 도발을 기획부터 집행까지 총지휘했다.
 
반(半) 공개적인 자리에서 김정은이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 않다는 청와대의 해명도 일리가 있지만 김영철의 성향을 봤을 때는 김정은이 "저 사람 때문에 안 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상호, 임종석 두 운동권 선후배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 의원은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맏형이다.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제1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다. ‘6월 항쟁’ 시위 과정에서 숨진 대학 후배 이한열씨를 위한 서울시청 앞 대규모 장례식의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임 실장은 전라남도 장흥 출신으로 한양대학교(86학번)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방북 사건’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6개월 복역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방침에 따라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그해 16대 총선에서 최연소(만 34세·서울 성동을)로 당선됐고, 17대 때 재선됐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에 임명됐지만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돼 불출마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면서 박원순 시장 측근으로 꼽혔다. 작년 4월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뒤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다. 과거 전력 때문에 ‘운동권’ ‘주사파’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우 의원, 임 실장 두 사람은 전대협 선후배이자 용문고 선후배이기도 하다.
 
전대협은 전국대학생대표협의회의 줄임말이다. 전대협은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이다. 각 대학 총학생회의 협의체적 성격이 강했다. 기치는 ‘구국의 강철대오(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강철과 같은 무리라는 뜻)’였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전국 단위의 대학생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만들어졌다. 8월 19일 충남대에서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의장으로 1기 발족식을 했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조국의 평화통일, 민중연대, 학원자주화, 백만 학도의 통일단결을 활동 목표로 내걸었다. 핵심 간부에 대한 구속과 수배가 잇따르는 등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큰 호응을 얻었다. 학생들의 시위나 경찰의 진압 모두 과격했던 탓에 집회 현장에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최루탄이 난무했다.
 
전대협은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을 겪으며 논란이 커졌다. 결국, 1993년 3월 대의원 총회를 통해 해체를 결정했고 1993년 5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재발족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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