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이철원 기자, 조선DB
6월 셋째 주에도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3층 서기실의 암호'가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책은 북한 인권 실상과 김정은 치부 외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을 담고 있다. 황장엽 가족에 대한 게 대표적이다.
1997년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씨가 망명했을 때 북한의 첫 반응은 ‘납치극’이었다. 그러나 망명 사실이 굳어지자 곧바로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고 낯빛을 바꿨다. 잠시 관망하던 북은 황 비서가 “김일성은 속물” “김정일은 비겁하다”며 김씨 일가를 직접 겨냥하자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직후 황씨 가족은 11촌까지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수감됐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가 있었다. 바로 황씨의 맏며느리였던 전혜영씨였다. 그녀는 북한 내 2인자였던 장성택의 조카란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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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주간조선 |
태 전 공사는 “황장엽 선생의 가족들이 수용소로 끌려갈 때 전혜영만 장성택이 구원해 줬다”고 했다. 재가(再嫁)한 뒤 새로운 삶을 살아간 전혜영이었지만 ‘장성택 처형’이라는 폭탄은 피하지 못했다.
장성택이 처형되고, 그 측근 1만여 명이 숙청되는 과정에서 그녀도 수용소로 끌려간 것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는 15만~20만 명이 감금돼 있다. 이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미국 비정부기구인 북한 인권위원회(HRNK)가 발간한 ‘숨겨진 굴락(Hidden Gulag)’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수감자들은 영양실조로 죽기 전까지 12~15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옷은 한 벌만 주어지고 비누, 양말, 속옷, 휴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HRNK는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보고서에서 수많은 죄 없는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평생 과도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식량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고 묘비 없는 무덤에 묻히는 처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미 전혜영은 유명을 달리했을 수도 있다.
책에 따르면 전혜영의 부친은 쿠바대사였던 전영진이다. 전영진은 정성택의 매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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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
전혜영의 여동생은 전은영으로 조성규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조성규는 태 전 공사의 베이징 외국어대학 동창이다. 태 전 공사는 전은영ㆍ조성규 부부와 가깝게 지냈다.
장성택이 죽기 전 전은영은 태 전 공사에게 “장성택이 찻집을 접으라고 한다”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전은영은 평양의 신도심인 창전거리에서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찻집을 꾸리는 데 8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장성택은 처형되기 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그의 친척들을 모아놓고 “이제 장사 다 정리하고 나와라. 우리에게 검열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전영진은 물론, 전은영-조성규 부부도 전혜영과 마찬가지로 수용소행을 면치 못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