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대구·경북총괄선대위원장으로 취임하며 선대위 발대식에서 “대구·경북 선거전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공천 정국에서 자신의 지역구보다는 대구·경북 지역 친박후보 사무소 개소식을 찾아다니며 ‘진박후보 감별사’로 활동했던 최 의원이다. 당시 지역을 휘저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최 의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대구·경북 지역을 돌며 ‘박근혜 마케팅’으로 표를 몰아 오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운동 기간에 그를 찾는 후보가 없었다. 최 의원이 강력하게 밀었던 인물이 공천받은 지역인 경북 구미(갑 백승주, 을 장석춘)와 경북 영천·청도(이만희) 등에서 최 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이 컸다. 또 그가 나타나면 표가 떨어진다는 입소문이 이미 자자했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경북 영천·청도는 원래 새누리 후보가 20%포인트 넘게 이기고 있던 지역이었는데 최 의원이 방문할 때마다 우리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이 수직하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천·청도는 새누리 후보 지지도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 방송 출구조사에서는 무소속 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과 경북도당은 각 후보 사무소에 대구·경북선대위원장 지원유세 신청을 받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후보가 거의 없었다. 선대위는 어쩔 수 없이 최 의원이 편하게 생각하는 친박후보 지역에 일정을 배치했지만 후보 캠프 측이 반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 날짜에 유세가 없고 상가 돌아보는 일정만 있는데 최 의원이 힘들 테니 안 오셔도 된다”는 거짓말을 하는 후보들도 있었다. 서로 받지 않으려 한다며 ‘최경환 폭탄돌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경환 의원의 보좌관은 대구시당 당직자들에게 “왜 선대위원장 일정이 이렇게 없느냐”고 물었고, 후보들이 원치 않는다는 답에 그렇게 인기가 없느냐며 놀라기도 했다.
  
청와대가 낙점한 진박후보로 시선을 모았던 정종섭 후보(대구 동구갑)도 최경환 의원의 지원을 에둘러 거절했다. 애초 선거포스터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는 등 진박후보임을 내세웠지만, 선거전을 치르면서 진박 마케팅이 역풍만을 불러온다고 판단한 정 후보는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종섭 후보는 측근들에게 “(최경환이) 도대체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겠다”며 “전쟁에서 ‘돌격 앞으로’ 지시를 해놓고 뒤에서 총을 쏜다는 느낌”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들 “최경환 자기정치 심각”
  
이번 대구 선거는 여느때 선거보다 유난히 선대위 회의, 기자회견 및 기자간담회가 많았다고 지역 기자들은 전했다. 물론 이슈가 많기도 했지만 최경환 의원이 과한 언론노출 욕심을 부렸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선대위가 출범하던 3월 29일 최경환 의원을 비롯한 후보들은 기자들과 점심을 함께했는데, 이 자리에서 최 의원은 “새누리당이 그동안 잘못한 것도 많지만 지역구민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할 생각이며, 무소속 후보는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선대위 출범식과 최 의원의 멘트를 다음날 조간 기사로 내보냈다. 
  
다음날인 30일 김무성 대표가 돌연 대구를 방문, 현장 선대위 회의를 주재키로 해 대구 후보들이 모두 모였다. 후보들은 김 대표가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회의실에 와서 앉아 있어야 했고 약 3시간을 행사참석으로 보냈다. 기자들은 전날 최경환 의원이 했던 것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 
  
31일, 새누리당 대구·경북선대위에서 후보들에게 ‘긴급기자회견을 열 테니 참석하라’는 전언이 왔다. 모여든 기자들은 최 의원이 발표하는 내용을 들으며 황당해했다. 전날 및 그 전날 했던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은 내용에 무소속 후보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조금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무소속 후보 비난하려고 후보들 모으고 기자들 모았나”라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지역신문의 한 기자가 최경환 의원 면전에서 “대구·경북 각 지역구에 최 의원이 나서면 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던데 계속 다닐 겁니까”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최경환 의원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표에 도움이 되니 다니지 내가 뭐하러 힘들게 돌아다니겠냐”며 “새누리당 승리가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가 “왜 굳이 바쁜 후보들을 불러모아 단체 기자회견을 열었느냐”고 지적하자 “다함께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이 ‘불러모으기’는 대구·경북 지역의 중진급이었던 서상기(대구 북구을)·주호영(대구 수성을)·장윤석(경북 영주)·이병석(경북 포항북)·정희수(경북 영천)·김태환(경북 구미을) 등 의원을 친박공천으로 공천에서 떨어뜨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보들을 불러모으는 행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구·경북선대위는 후보들에게 2일 선대위 회의, 6일 ‘대구시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 발표식, 8일 ‘시민선대위원장 위촉식’, 10일 ‘경제선거대책회의 및 공약이행 서약식’에 참석을 요청했다. 기자들은 “자기 지역구 돌기도 바쁜 선거운동 기간 중에 행사나 긴급 기자회견을 이렇게 많이 하는 지역이 어디 있느냐”며 “최 의원이 총선 후 당권 또는 대권 도전차 언론노출을 위해 무리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최경환·조원진 막아 달라”며 삭발
  
새누리 후보들의 큰절에 언론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자 또 다른 이벤트가 등장했다. 무소속 홍의락 후보에게 시종일관 밀려 왔던 대구 북구갑의 새누리당 양명모 후보가 삭발식으로 시선을 모았던 것.
  
양명모 후보는 4월 7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가진 삭발식 겸 기자회견을 통해 “새누리 승리를 위해서는 현재 선대위 대신 시민선대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삭발의 의의를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특정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후 기자들과 사석에서 한 얘기는 “최경환·조원진이 이끄는 선대위로는 절대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 후보는 “어차피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극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삭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여당 텃밭에서 여당 후보가 실시한 삭발식은 지역언론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다른 후보들도 “더 이상 절로는 안 되겠고 삭발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특히 무소속 주호영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던 수성을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에게 참모들이 삭발을 권유했다. 여성의 삭발은 더욱 화제가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있었다. 이인선 후보는 기독교계 학교인 계명대 교수인데, 머리를 깎고 절을 한다면 그 모습이 불교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대방인 주호영 후보가 독실한 불자로 불교계 표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이 후보의 삭발 논의는 사라졌다. 
  
 

조윤선 납치작전
  
여의도연구원 조사 결과 대구 12석 중 우세인 곳은 6곳에 불과해 새누리당 내에서 대구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새누리당 중앙당은 4월 8일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인 서청원 의원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대구를 방문해 지원토록 했다. 이에 대구 후보들은 앞다퉈 “서청원은 필요 없고 조윤선만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서청원·조윤선 조는 철저하게 친박후보 또는 친박에 협조적인 후보만 지원했다. 추경호(달성), 양명모(북을), 이인선(수성을), 정종섭(동갑) 4명이다. 
  
김문수 후보도 조윤선 전 수석이 필요했다. 김 후보의 참모들은 “서청원 의원은 안 왔으면 좋겠고 조윤선 전 수석이 와 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후보도 당이 일부러 지원을 꺼린다는 사실은 눈치챈 상황. 그는 “조 전 수석과는 아는 사이니 직접 연락해 보겠다”고 했고 전화를 받은 조 전 수석은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나 서청원 의원이 “거기(수성갑)까지 갈 여유가 없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양측의 참모들이 꾀를 냈다. 서청원 의원과 조 전 수석이 김문수 후보의 옆 지역구인 수성을 지원유세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 수성구 모 식당에 김문수 후보가 점심을 먹으러 들르기로 한 것. 김문수 후보는 식당에서 조 전 수석을 보고 우연히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 근처에서 우리 유세가 있는데 잠깐만 와 주시라”고 제안했다. 서청원 의원도 남들이 보는 상태에서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조 전 수석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 발표 후 침울한 최경환
 

총선후보 지원유세 중인 최경환 새누리당 대구·경북선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