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을 통해 대한항공에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뜻을 내비치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박능후 장관은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3차 회의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밀수, 관세포탈, 재산 국외도피, 탈세 등과 관련한 보도가 계속 이어져 국민의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에 대해 “기금운용위원회 또는 산하 의결권전문위원회의 우려 표명, 기금운용본부의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금 가입자인 국민을 대신해 주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거나 전체 주식 운용액의 0.5% 이상을 차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772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한진칼(29.62%)에 이어 대한항공 주식 12.45%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도 하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촉발된 대한항공 사태가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 국민연금 가입자에 피해를 입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운용 방향을 조정하는 기금운용위원장(당연직)을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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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사진=뉴시스 |
이와 관련해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전 매일경제 논설위원)는 30일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오너 일가의) 일탈이 있건 없건 투자 수익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장섭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이라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했다.
<국민연금은 개인의 일탈을 고려하기보다는 국민 노후자금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은 경찰·검찰처럼 수사기관이 아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복지부 장관이) 앞장서서 단죄를 하는 식으로 발언해선 곤란하다. 국민연금 본연의 기능과 동떨어진 것이다.>
신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개입해 구속된 사례를 들며 “박능후 장관의 발언엔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25일 자 '한국경제'(인터넷판)는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을 앞두고 특정 기업에 대한 ‘선전 포고’에 나서면서 정부가 공적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단순히 주식 보유와 그에 따른 의결권 행사에 한정하지 않고 기업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뜻을 내비쳐왔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앞세운 ‘대기업 옥죄기’라는 비판 등을 고려해 적극적인 도입은 유보해 오고 있었다. 투자 기업의 의결권에만 주로 행사를 해왔을 뿐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의 ‘주주권’ 행사는 보류해 왔던 것이다. 이는 주주권 행사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체는 국민연금 관계자를 인용해 “그동안 국민연금이 경영진의 의견을 묻는 비공개 서한을 보낸 적은 많지만 사실상 경영 개입을 뜻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공개서한이 발송된다면 상당히 큰 변화”라고 전했다. 이어지는 '한국경제'의 보도 내용이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특정 기업에 대해 작심하고 비판 발언을 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올 하반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기업 현안에 강도 높게 관여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풀이했다. 이 경우 정부 및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일부에서 우려하던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