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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018년 태영호와 1997년 황장엽,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북한 당국의 민심 왜곡은 여전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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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북한은 16일 예정됐던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유로 맥스선더(Max Thunder-한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를 꼽았지만,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발언이 더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6일 회담 취소 이유라면서 낸 글을 보면 태 전 공사를 겨냥한 듯한 내용이 있다.
 
<특히 남조선 당국은 우리와 함께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서도 그에 배치되는 온당치 못한 행위에 매달리고 있으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 놓고 있다.>
 
태 전 공사는 14일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544쪽)을 출간, 북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와 북한의 내부 모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는 이날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 발간을 기념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정은이 원하는 체제 안전 보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CVID로는 달성할 수 없다”며 “(미북정상회담 개최까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섣불리 예단할 것은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위협 감축, 감소 정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북한의 대응방식은 여전하다.
1997년 4월 20일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 우리 대사관에 귀순한 지 67일 만이며, 경유국인 필리핀으로 옮긴 지 33일 만이었다. 한국 도착 80일 후인 7월 10일 황 전 비서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황 전 비서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한국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할 말과 안 할 말을 잘 구분해 가면서 그가 전달하고자 한 제1의 메시지는 '전쟁 경고'였다.
그는 '북한이 설마 전쟁이야 일으키겠느냐'는 남쪽 사람들의 생각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의 전쟁 의지를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것만은 의문을 갖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에 와서 남쪽 사람들의 전쟁 불감증이 물질적 풍요에서 온 것임을 절감한 듯, "(북한은) 남한 혼자 잘살게 절대 놔두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자신마저 풍요에 젖어 귀순 당시의 각오가 흐트러질까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견 직후 북한은 황 전 비서를 맹비난했다. 중앙·평양방송 등에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대남흑색선전방송인 한국민족민주전선(민민전) 방송을 통해 "4자회담이 공중분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민전은 "남조선 정부가 노망한 정신병자 황가까지 내세워 이북을 자극했다"며 "이제 무슨 참사가 벌어질지 모르며 우선 1년 동안 끌어오다가 모처럼 빛을 보기 시작한 4자회담이 공중분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 형편에서는 4자회담이 성사되기는 고사하고 당장 민족적 대재난이 초래될 것 같아 불안과 우려를 금할수 없다"고 위협했다.
 
책임을 무조건 우리에게 돌리고 보는 북한의 모습은 20년(21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다는 지적이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5.16

조회 : 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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