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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석학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과거 냉전 시절 공산정권의 비밀 정보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제 지식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크리스테바는 현존하는 현대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하다. 특히 정신분석학과 후기구조주의 사상을 접목, 승화, 발전시켜 자신만의 여성학 담론을 주창해 세계를 놀라게 한 학자다.
그는 특히 페미니즘과 정신심리학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등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대가들과 비견될 만큼 철학계의 거두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사랑의 역사'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 '언어 그 미지의 것' '사랑의 정신분석' '시적 언어의 혁명' 등 그의 수많은 저술이 서점가에서 팔리고 있다. 문학, 철학, 미학을 전공/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책을 필독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처럼 당대 최고의 석학인 그가 과거 '동구권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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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 같은 의혹을 단순 제기하는 수준이 아닌, 정식으로 발표한 곳은 크리스테바의 고국인 불가리아 당국이었다. 그가 고국을 위해, 즉 과거 공산정권이 들어섰던 불가리아를 위해 첩보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지난 28일(현지시각) '공산주의 시대에 첩보기관을 위해 일한 사람들을 확인하는 불가리아 위원회'(이하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조사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크리스테바는 '사비나'라는 암호명을 사용해 불가리아 국가보위부 1부 소속으로 일했다. 국가보위부 1부는 예술 분야, 언론 매체 관련 정보를 수집 감시하는 곳이다. 국가보위부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밀착 협력한 기구로, 정보원과 첩보원만 10만 명이 넘는 광범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조직은 서유럽으로 피신한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를 독살하는 등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다가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소멸했다.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크리스테바가 1965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파리로 이주, 1971년 6월부터 국가보위부 소속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파리에서 암약하던 국가보위부 요원 드미트리 보지코프 중위에 의해 포섭됐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정보원으로 일했으며, 어느 정도의 대가를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소속된 제1국이 해외 정보를 다루던 부서였다는 점에서 서유럽 학계, 언론계 동향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크리스테바의 충격적인 행적은, 최근 그가 불가리아의 한 문학비평지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면서 드러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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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의 발표에 즉각 반발했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크리스테바는 현지 언론사 '롭스'에 "터무니없는 거짓 이야기다. 내 저작물에 해를 끼치려고 누군가가 꾸민 짓"이라며 "기괴하고 거짓된 비방이다. 이는 명예 훼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크리스테바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소피아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동(同)대학원에서 영문학을, 파리대학에서 현대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파리로 건너가 활동했고, 파리제7대학(디드로대) 텍스트자료학과 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방문 교수로도 일했다. 철학 연구로 2006년 한나 아렌트상, 2008년 바츨라프 하벨상, 2011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코망되르, 2015년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등을 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1965년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갔다. 정신분석학, 기호학, 언어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이론을 수립했다. 1970년대 초부터 정신분석학 이론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자유와 정체성 문제를 고찰했다. 당대의 유명 문학 잡지 '텔 켈'의 공동 편집자로 활동하며 서구 지성계를 주도했다.
자크 데리다,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등 후기구조주의, 구조주의 언어학, 정신분석학의 대가들과 함께 연구했다. 30권이 넘는 소설, 논문, 저서를 펴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사상가 100인에 선정됐다. 한편 학계 일각에서는 1970년경부터 크리스테바가 중국 마오쩌둥의 추종자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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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2015년 원작이 발간되고, 최근 한국에서 번역돼 주목받고 있는 한 소설이 있다. 작가 로랑 비네의 역사추리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이다. 여기에 크리스테바가 등장한다. 또한 철학가 롤랑 바르트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불가리아 스파이도 등장한다. 연관성이 있는 걸까. 세계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주목하고 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