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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인터뷰] 盧武鉉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宋基寅 신부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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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인터뷰] 盧武鉉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宋基寅 신부
 
『참여정부가 국민들을 안아 주지 못해… 중국에 대한 低자세 외교는 문제』 
     
 『만약 내가 외교 담당자라면 북한에 가서 굳세게 싸우겠는데 지금 우리 외교팀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피해자 보상은 금전 보상 아닌 명예회복 차원으로 해야』
 
『(처음 만난 盧武鉉은) 완전 촌놈이고 말을 세련되게 못 하고 푹푹 나오는 대로 했어요. 머리가 좋아서 내가 놀랐어요.』
 
宋基寅 신부
1938년 부산 출생. 부산원예高·가톨릭大 신학교 졸업. 부산인권선교협의회 회장, 국제앰네스티 한국 이사 겸 부산지부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회장, 천주교 부산교회사연구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장〈younkyong@chosun.com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月刊朝鮮과 宋基寅 신부의 만남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宋基寅(송기인·69) 신부. 그의 또 다른 별칭은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代父(대부)」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장관급의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 사제로서 정부의 장관급 직위를 맡은 것은 宋신부가 처음이다.
 
  宋신부는 오는 12월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재임을 강하게 권하고 있지만 『애당초 과거사委 위원장직을 맡을 때 한 번만 하기로 주변과 약속한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宋신부는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과 「너무 다른」 月刊朝鮮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宋신부를 설득하는 데 여러 사람들이 나서서 애를 써 주었다. 지난 11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이루어졌다.
 
  로만 칼라의 사제복 차림인 그는 인터뷰 시작 전 자신의 이력서와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가톨릭 신문을 내밀었다. 「너희들의 시각으로 나를 재단해서 기사를 쓰지는 말아 달라」는 몸짓으로 읽혀졌다.
 
  우리 나이로 일흔이지만 그는 건강해 보였다.
 
  ―임기가 끝나면 어디로 가십니까.
 
  『경남 밀양 삼랑진읍에 있는 삼랑진 성당으로 갈 계획입니다. 내가 2005년 6월29일에 은퇴했어요. 우리 천주교에는 은퇴 신부님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빈 자리가 없었어요.
 
  내가 잔디를 가꾸는 데 소질이 있어서 「부산가톨릭대학으로 가서 운동장의 잔디나 가꾸겠다」고 했는데, 교구에서 내가 가면 젊은 교수들이 힘들어지니까 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산 순교자 묘지에 가서 1000평쯤 되는 잔디를 가꾸었죠』
 
  ―신부님은 1982년 부산 美 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한 후 문부식, 김현장 등 이 사건에 가담한 학생들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사건은 「미국이 광주사태에 침묵했다」는 분노에 불을 지름으로써 1980년대 反美운동의 단초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美 문화원 방화사건에 관련된 학생들과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그전부터 내가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몇몇 사람들이 나한테 부탁을 좀 했죠. 그런 과정에서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관여하고 그랬죠』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적 없다』
 
  ―신부님의 미국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美 문화원 방화사건 당시의 미국에 대한 생각이 강하게 배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미국이 우리를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회의 등에서 보면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일본을 오히려 도와주지. 그런 것 때문에 나는 미국이 도덕적인 나라냐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도와준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6·25 때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미국 도움으로 건져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만을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도 온 겁니다. 태평양을 다른 나라가 침범 못하게 하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중국이 오는 걸 막은 거죠』
 
  ―국제정치라는 게 自國(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한 열강 중의 하나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운명을 쥐고 있는 열강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것도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신부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야 뭐 당연히 다 그렇게 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죠.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중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를 보면 지나치게 低자세라는 게 보여요.
 
  국가 외교라는 것은 정당하다면 당당하게 주장해야지, 정당한 것을 감춰 놓고 「예, 예」 그렇게만 하면 길게 보면 손해입니다. 지금처럼 이런 방법으로 외교를 하면 앞으로는 중국이 우리를 뭉개 버립니다. 뭐라고 해도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정부內에는 미국에 대해서는 정의를 요구하면서도 그 反작용으로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의 친구」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외교는 항상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데 지금 중국에 대한 외교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요. 미국은 뭐, 전부터 그랬고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계속 찬성하는 입장이시죠.
 
  『물론이죠. 철수해야죠』
 
  ―그럼 우리의 안보는 어떻게 합니까.
 
  『안보는 우리가 북한과 약속을 단단히 하면 돼요. 조금 더 시간이 가면서 남북이 신뢰하면 될 겁니다. 군인이 딛는 땅은 점령지입니다. 미군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점령지에 사는 겁니다』
 
  ―미군은 일본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잖습니까. 우리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다 마찬가지죠. 독일도 자기들 나름대로 계산을 많이 하는 거죠. 일본도 아마 반대를 많이 할걸요.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나라가 밟히고 있다는 거죠. 더군다나 우리처럼 작전권이 없는 나라는 더욱 그렇죠』
 
  ―신부님께서는 부산 美 문화원 방화사건 당시 「미국이 광주사태의 공범이다」, 「침묵한 것만이 아니고 방조를 했다」는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지금도 공감하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군인이 움직이려면 작전권 가진 사람이 하는 거예요. 작전권이라는 게 미군에 있잖아요?』
   
  朴正熙에 대한 평가
   
  ―新군부가 자기 관할하에 있는 부대를 움직이면 되죠.
 
  『안 그래요. 부대를 움직이는 것은 작전권 결재가 나야 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미군이 국군 움직이는 걸 알았겠죠』
 
  ―주한미군이 방조를 넘어서 공모까지 했다고 보십니까.
 
  『공모까지는 아닐는지 모르지만 미국군의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았어요』
 
  ―1960년부터 1987년까지 우리 사회의 규모를 이렇게 키우고 끌어온 朴正熙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
 
  『규모를 키운 게 나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제2공화국 때부터 경제개발계획이 다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朴正熙가 계획한 게 아니라 前 정권에서 다 계획돼 있던 거예요. 고속도로도 그때 계획에 있던 거예요. 나는 개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朴正熙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얘기하는 데에는 반대예요』
 
  ―韓·日 국교정상화 등을 통해서 財源(재원)을 마련하는 등 경제개발 추진 동력을 만들고, 경제발전을 끌고 온 사람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성과가 있는 것 아닙니까.
 
  『(목소리가 높아지며) 그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죠. 그 사람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게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다 경제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데 왜 그런 쿠데타를 벌여요. 지금 그렇게 생각해요? 朴正熙가 아니면 안 된다고?』
 
  ―朴대통령이 5·16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그분이 18년 독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경제적인 성과는 나름대로 평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경제발전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했느냐」를 문제삼는 거죠. 그 사람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이었잖아요.
 
  나는 지금 누가 말해도 변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국립묘지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쿠데타 주모자가 어떻게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어요? 말도 안 됩니다』
 
  ―생업에 종사하다가 바다에서 북으로 끌려간 납북어부들이 480여 명입니다. 국군포로는 1000명에서 적게는 500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송환에 대해서는 이 정부도 그렇고, 신부님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의 수준을 올려 놔야』
 
  『「정말 시급한 문제를 왜 이렇게 잠재우고 있느냐」는 말인 것 같은데, 이북이 아직 그런 일을 수용할 만한 수준에 못 왔습니다. 당장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게요. 제가 작년에 평양에 갔어요. 그 기간에 금강산에서 윤이상 음악회가 열렸어요. 내가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입니다. 평양에서 금강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네 땅인데도 군부의 결재를 받아야 되는데, 결재를 받으려면 최소한 3주 전에 했어야 가능하다는 거예요. 북한이 그런 수준이에요. 그 사람들의 수준을 더 올려 놔야 해요』
    
  참여정부는 對국민 커뮤니케이션에 결함
   
  ―신부님께서는 유신 시절, 5共 시절 그 철벽 같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발언하며 투쟁했습니다. 꼼짝도 안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권운동을 한 셈인데 북한정권이 꼼짝 안 한다고 해서 우리가 변화시킬 노력조차 포기하는 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우리가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 30년 걸렸잖아요. 지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내가 외교 담당자라면 북한에 가서 굳세게 싸우겠는데 지금 우리 외교팀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하는 거는 무리다. 그러면 다른 것마저 깨진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북한이 변할 것 같습니까.
 
  『변하죠. 세월이 가면 나도 머리가 하얘지잖아요』
 
  ―변화를 위해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압박도 가해야죠』
 
  ―이 정부는 압박을 완전히 포기한 것 아닙니까.
 
  『모르겠어요. 그렇게까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한번 야단치고 다니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고』
 
  ―신부님께서도 金日成·金正日 부자의 독재체제와 朴正熙 대통령의 독재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까.
 
  『차이가 많을 겁니다. 루이제 린저도 많이 지적했잖아요. 차이가 많다고』
 
  ―盧武鉉 대통령의 인기가 20%대에서 멈춰 있는데, 국민들은 참여정부의 지난 5년에 대해 왜 이렇게 비판적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역사 앞에서 고스란히 증명될 거예요』
 
  ―국민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에 결함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朝鮮日報 같은 곳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이 안 됐어요』
 
  ―盧武鉉 정부 5년의 功過(공과)를 한번 평가해 주시죠.
 
  『내가 정치 평론가가 아니에요.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해요. 재미있는 질문 많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가장 가까이서 보시는 분이니까 묻는 겁니다.
 
  『가깝긴 뭐가 가까워요. 여기서 청와대가 거리가 얼만데(웃음). 나는 이 정권이 정말로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국민을 다 안아들이는 일을 못 했어요. 국민들의 이런 말도 귀 기울여 주고, 저런 말도 들어 주고, 이런저런 사정을 살펴 주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 거예요』  
  
  『과거사 정리는 민족의 일』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2010년까지 9000여 건을 조사한다고 하는데 하루 평균 6~7건 정도씩 조사결과가 나와야 된다는 수치입니다. 물리적으로 가능합니까.
 
  『가능해요. 지금까지는 준비단계였지만 12월까지 올라와 있는 진상조사 건수가 20~30건 됩니다. 지금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자꾸 불어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실력이 많이 향상됐고요. 과거사 정리는 짧은 기간에 빨리 끝내는 게 효과적이에요』
 
  ―빨리 끝내려면 인원이나 예산이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인원과 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을 감안해야죠』
 
  ―조사가 다 끝난 다음에 보상은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광주 민주화운동을 금전적으로 보상해 주었는데 그런 식으로 보상해 주면 과거사 정리는 절대 끝나지 않아요. 명예를 회복해 주고 기념공원 등 시설을 만들어 주는 일로 끝내야죠. 금전 보상을 하게 되면 우리 국력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제주 4·3사건도 현금 보상을 안 하잖아요? 이런 것들을 교훈 삼아서 신중하게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참여정부에서 차지하는 신부님의 위치가 있기 때문에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힘을 받았지만, 12월에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이 바뀌게 되면 새 정부가 과연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에 힘을 실어 줄까, 의문이 듭니다.
 
  『이 일은 누가 하니까 되고, 안 하니까 안 되는 게 아니고 법이 정한 겁니다. 그 법을 집권당이 일방적으로 만든 게 아니고 전체 국회에서 합의해서 만든 법입니다. 이 일은 정권의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일이고, 민족의 일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걱정할 게 없다고 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이런 일은 권력을 가진 분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이게 지금 독립기구죠. 대통령이 어떤 사람을 임명한다고 해도 법을 지키는 한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국민 중에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이 국민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과 반목을 불러온다」고 반발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수는 적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력을 집결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미래를 위해서 과거사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이잖아요. 그 100만 명을 떼어 놓고 나머지가 화합하자고? 그건 안 돼요』
 
  ―100만 명이라는 수는 근거가 있는 겁니까.
 
  『근거가 많죠. 논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100만 명이에요. 전쟁 전후로 죽은 비무장 민간인 수가 100만 명이죠』
 
  ―左든 右든 양쪽에서 죽인 사람 수가 그렇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북쪽은 모르겠고, 남쪽에서 죽은 사람만 100만 명이에요』
 
  ―과거사委에서 「정수장학회」, 「긴급조치 사건」 등의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큰 정치적인 논란이 있었는데.
 
  『저희들이 발표한 조사에서 「非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수재단이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아니 감옥에서 쓴 포기서가 정말 자기 마음속을 쓴 거겠어요?』
 
  ―긴급조치 관련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판사들의 명단까지 공개했는데, 「그때 그 당시의 법대로 판결한 건데 왜 문제삼느냐」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건들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해당 판사들의 명단을 공개할 겁니까.
 
  『물론이죠. 우리가 판사 명단을 공개한 게 아닙니다. 판결문을 공개한 건데 밑에 서명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공개된 겁니다. 그걸 명단 공개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명단을 공개했어요. 판결문을 공개했지』  
  
  金日成·金正日의 과거사 정리해야
 
  ―盧대통령이 유신 시절에 판사를 했는데, 그 기준에서 盧대통령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판결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많죠. 스페인·독일·프랑스 같은 데 다 있잖아요』
 
  ―북한 金正日 정권이 宋신부님을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통일 되고 나면 金日成 부자의 어두웠던 과거들에 대해서 낱낱이 밝히겠다고 덤벼들 테니까요.
 
  『통일 전에도 하고 싶은데(웃음), 「같이 한번 과거사 정리를 해보자」 하고. 그런데 그 소리가 아직 북한까지는 안 들리지(웃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기구의 정확한 명칭인데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만 화해를 위한 노력은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 지금 고민이 화해를 어떻게 시키느냐 하는 겁니다. 화해는 먼저 가해자가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가해자가 손을 안 내밀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지금 가해자 중의 90% 이상이 죽었습니다.
 
  李會昌씨가 민족일보 조용수씨 재판에 판사로 참여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입 다물지 말고 「그때 법에 따라서 하긴 했는데 사실 내 양심하고 맞는 건 아니었다, 용서해 주면 좋겠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 그렇게 말한다고 돌멩이 던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인제씨는 자신이 판결했던 「아람회 사건」에 대해 사과했어요. 그런 일을 언론이 선도해야 합니다』
    
  과거사위원회의 左편향에 대한 입장
 
  ―싫어하실 질문인데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들의 면면이 左로 치우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화를 벌컥 내면 되겠네(웃음). 글쎄 左로 치우쳤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위원 중 사회주의를 공부한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정의를 찾고 허물어진 진실을 되찾는 것이지 左로 치우치고 右로 치우치고 그런 것 없어요』
 
  ―사회주의 공부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서상의 문제아닐까요.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분들이 그동안 발언이나 발표한 글을 통해 북한에 대해서는 온정적이면서도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밀한 잣대를 들이 대는 성향을 보여 왔기 때문에 左편향적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모르겠어요. 북한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배석한 박영일 홍보팀장에게) 우리 위원회에 친북인사가 누구 있나?(웃음) 한번 데리고 와봐』
 
  ―역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잘못한 것을 찾아내고, 북한에 대해서는 「얘기해 봐야 안 통하니까, 말 안 들으니까」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그럼 이건 남과 북에 대해서 공정한 잣대가 아니죠.
 
  『아니, 공정하죠. 우리 손이 안 미치니까 그런 거지. 미치기만 하면 거기도 팍팍 정리하고 싶죠. 지금 남쪽만 조사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남북이 같이 해야 될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이번 남북頂上회담에서 의제로 채택하지 않더군요』
    
  『종기는 터뜨려야』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이 묻혀진 갈등을 再생산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묻혀 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몸에 난 종기를 오랫동안 그대로 둔다고 해서 살이 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종기는 터뜨려야 되는 거예요. 종기를 안고 살아서는 안 되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이 일본에서 전범 재판을 했습니다. 천황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았습니다. 문화혁명 이후 중국 공산당은 毛澤東(모택동)의 죄과를 묻지 않고 평가만 하고 넘어갔습니다.
 
  『중국은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돈 좀 번다고 저러는데, 한 10년 지나 보세요. 문제가 더 많이 생깁니다. 결국은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되는 거예요. 문화혁명 같은 사건이 세월이 흐른다고, 지나간다고 덮이겠어요?』
 
  ―盧武鉉 대통령과 신부님의 관계를 이야기 안 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이야기했는데 그걸 또 해요?(웃음)』
 
  ―1982년 盧대통령을 처음 만난 걸로 알려졌는데 첫인상이 어땠습니까.
 
  『완전 촌놈이고 말을 세련되게 못 하고 푹푹 나오는 대로 했어요. 머리가 좋아서 내가 놀랐어요. 외국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외우기 어렵잖아요.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복잡한 이름의 인물들을 줄줄 외우더라고.
 
  내가 「학생 때 읽었던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다 외우냐, 머리도 좋다」 했더니, 盧대통령이 「이런 머리를 가지고 대학 문턱도 못 가봤습니다」라고 했죠』
 
  ―소설 주인공 이름을 외우는 것하고 대학 못 가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사회가 키워주어야 할 텐데 대학 문은 돈 많은 사람만 가더라, 이런 얘기지』
 
  ―요즘도 盧대통령을 자주 만납니까.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 만나는 것 빼고는 대통령 되고 두 번 만났어요. 내가 인수委 시절에 조선호텔에서 盧대통령과 아침을 먹으면서, 「盧당선자가 특별히 잘못하지 않는 한 대통령 재임 중에 안 만나겠다」고 그랬어요』
 
  ―1988년 盧대통령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盧대통령이 원래 정치를 싫어하더라고요. 가난하게 자라서 고시까지 하고 변호사를 해보니까 돈도 들어오고 재미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요트를 하나 샀어요. 가격이야 그때 포니 차 한 대 값이었죠. 요트협회장을 맡아서 그 재미에 빠져서 그냥 지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싸우더라도 여기 부산서 소리 꽥꽥 지르고 노동자 몇 명 도와줘 봐야 그게 별거냐. 서울에 가면 많은 사람 도와줄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설득했는데,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랬다가 며칠 후에 만나서 다시 권하니까, 「국회의원 할 생각은 없지만 선거운동은 한번 해보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盧武鉉은) 변호사 재미에 빠져 있었다』
 
  ―盧武鉉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키라고 중앙 무대에서 누군가가 권했군요.
 
  『그때 金泳三 前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 시절 나한테 사람을 보내서 「1988년 4월에 있을 13代 총선에 내보낼 시민대표 네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시민대표들이 모였을 때 물어봤는데 김광일만 하겠다고 해서 그 사람만 추천해서 보냈어요.
 
  金泳三씨가 「나머지 3명은 어떻게 할 거냐」고 해서 「희망자가 없다」고 했죠. 그래도 한 명만 더 찾아보라고 해서 盧武鉉한테 권했던 거죠. 盧대통령이 살던 곳이 부산 남구였기 때문에 거기서 하라고 했죠.
 
  그런데 며칠 후에 날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남구는 싫다」는 거예요. 동구 국회의원이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허삼수였는데, 「허삼수하고 붙어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구에 출마했는데 진짜 당선된 거예요. 내가 평생에 선거자금을 두 번 대봤는데 그때 10만원을 냈어요』
 
  ―盧武鉉 대통령은 정치 출발 당시부터 승부사 기질이 있었군요.
 
  『그런 것 같아요』
 
  ―조금 전에 盧대통령이 요트를 구입한 말씀을 하시면서 「포니 차 한 대 값 정도」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포니자동차를 웬만한 사람들은 사기 힘들었습니다.
 
  『그랬을 거야. 여하튼 변호사로 재미를 봤다니까요』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盧武鉉 대통령에게 「돈 모으지 말라」, 「친인척 관리 잘 하라」 두 가지 당부를 하셨는데 지금까지 지켜졌다고 보십니까.
 
  『그렇다고 봐요. 그게 안 됐으면 내가 찾아갔을 겁니다. 그때 당부했던 것은 그런대로 지키는 것 같아요』
 
  ―盧대통령의 형님 되는 노건평씨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데요.
 
  『노건평씨 같은 경우는 판단력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내가 관여할 일은 못 되고, 대통령도 형님한테 뭐라고 말은 못 할 거예요. 내 생각에는 청와대 민정에서 어느 정도 잘 관리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을 크게 저지르거나 그럴 수는 없는 사람이에요』
 
  ―최근 「정윤재씨 사건」, 「변양균씨 사건」, 「전군표 국세청장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盧대통령을 만나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이제 늦었죠.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나머지 일이나 잘해라」 그런 말이나 할 수 있겠죠』
 
  ―이런 문제들 외에는 큰 오점 없이 盧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어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번 정권이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안지 못했다는 잘못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온 정권은 없었다고 봅니다. 우선은 경찰·검찰·정보기관 등에 권력을 나눠 주었습니다. 지금 정권만큼 청렴하려고 애를 쓴 정권은 역대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잘 한 것은 정경유착을 확실하게 끊은 거예요. 정경유착 근절은 미국도 아직 안 되고 일본도 안 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기업에 와서 손 벌리는 일이 없어졌어요. 놀라운 발전입니다. 나는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그래도 盧대통령이 자신의 몫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만 아니라 국민들도 성질이 급하다』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盧武鉉 대통령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회전문 인사」로 표현되는 폭 좁은 인사 기용과 코드 인사가 이런 문제를 불러온 건 아닙니까.
 
  『제가 「인사 문제가 너무 좁았다. 사람 뽑아 쓰는 시야가 너무 좁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도 내가 그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부산에 내려가시면 평신도들이 「살기 어려워졌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참여 정부가 성장과 효율에 비중을 두지 않은 결과 아닐까요.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단군 이래 지금처럼 잘산 때는 없었다고 봅니다. 인천공항에서 외국으로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나갑니다.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람들이 전부 재벌들이에요? 일반 서민들이라고요.
 
  金泳三 정부 때까지 그런 일을 꿈이나 꿨습니까. 지금 그만큼 잘 산단 말이에요. 배고파 죽는 사람 없잖아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못산다고 아우성이냐, 상대적일 거예요. 더 앞선 나라들을 쳐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그래야죠. 앞선 나라들을 쳐다봐야 따라갈 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국민들도 조금 참아야 해요. 대통령만 성질 급한 게 아니라 국민들도 성질 급해요』
 
  ―시장 같은 데를 가보면 정말로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장사가 안 돼서 중국으로 동남아로 관광 가나요? 옛날에 그렇게 갈 수 있었어요? 그래도 월급이 줄어 들지는 않았잖아요. 100만원 받다가 90만원으로 줄어든 건 아니잖아요?』
 
  ―월급이 줄어 들지는 않았지만 월급장이에서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람은 많아졌잖습니까.
 
  『실업자가 된 사람이 많아졌죠. 그런 것이 국가의 어려운 문제죠. 1차적으로 자기의 생계를 이끌어 갈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이 문제는 과학 발전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더 나타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혜를 모아서 다 잘 살게 해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인내를 가지고 가다 보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자이툰 부대 철수하는 게 낫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셨습니다. 盧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을 결정했는데, 또 반대하는 겁니까.
 
  『당연히 반대죠.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우리와 다릅니다. 한 번 원수는 代를 물려줍니다. 우리가 건설이니 뭐니 하면서 허울 좋게 가지만, 그 사람들 눈에는 미국이 자기들 대통령을 죽이러 왔는데 우리나라는 거기에 따라온 것으로 보일 겁니다. 이건 안 되죠. 안 보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철수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자이툰 부대의 현지 활동은 전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의료·건설 지원 등을 통해서 현지인들의 인심을 많이 얻고 있는데요.
 
  『나는 현지 사정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이 자기들 땅에 군화를 딛고 있다는 자체를 싫어할 거예요. 그 마음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거죠』
 
  ―미국의 경우, CIA가 과거 외국 정부 전복 등 얼마나 많은 비밀공작을 했습니까. CIA는 비밀문건을 정기적으로 공개만 합니다. 의회가 그런 일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개하거나, 「사과하라」고 압박하지 않습니다.
 
  정보기관이 한 공작들에 대해서 다 까발리고 거기에 대해서 시시때때로 사과를 하라고 하면 정보기관이 존립할 여지가 좁아집니다. 「우리나라 땅은 우리만 지켜야 되기 때문에 외국 군대가 들어오면 안 된다」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
 
  『「이상」이라는 게 계속 추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은 그래도 우리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盧武鉉 대통령이 역사관을 피력하면서 우리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까.
 
  『우리 역사를 보면 정의가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나 긴 역사를 보면 정의가 결국은 이기게 됩니다』
 
  ―우리의 역사가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하지만, 195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은 세계 11위, 12위를 다투는 경제 강국이 됐습니다. 정의가 패배만 했다면 이런 富의 창출이 가능했을까요.
 
  『내 생각에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데에는 교육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예컨대 朴正熙가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만 데리고 했으면 이렇게 못 했을 겁니다. 朴正熙라서 경제발전이 된 게 아니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국민들에게 잠재해 있었던 거죠』
    
  『국민이 조금 진력이 나 있죠』
 
  ―최근 실시된 大選 여론조사들을 보면 야권 후보가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이 조금 진력이 나 있죠. 10년이란 기간이 국민들이 진력을 내야 되는 시간인지는 모르겠는데, 바꿔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겠죠. 게다가 여권에서 나온 인물 가운데 만족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겠죠.
 
  정말 아쉬운 점은 대권 후보들 모두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경쟁하는데, 나는 우리 사회가 법이 지켜지고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봐요. 좀 덕스러운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서 낮잠을 자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다음 정부 5년은 무엇이 중요합니까.
 
  『덕성스러운 대통령이 집권해서 국민이 정말로 법을 존중하고, 서로 물고 뜯는 것 좀 없앴으면 좋겠어요. 지난 10년 동안 뒷다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뒷다리를 잡은 사람들은 그 10년 동안 무슨 득을 봤죠? 金大中 때도 못살게 굴더니, 盧武鉉 때도 못살게 굴어요. 그래서 무얼 얻었습니까. 국가발전에 뭘 기여했습니까』
 
  ―언론이야 원래 비판하는 일이 본분 아닙니까.
 
  『안 그렇다고 봐요. 언론이 비판할 때는 해야 하지만, 때로는 격려도 해야죠』
 
  ―앞으로도 계속 盧武鉉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서 남아 있을 겁니까.
 
  『남고 안 남고가 아니라, 사는 동안 서로 알고 살겠죠. 아는 사람을 잊어버릴 수는 없잖아요. 사실은 盧대통령이 대통령 출마 결심을 굳히기 전에 盧대통령, 이호철, 문재인, 나 이렇게 티베트를 여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출마하는 바람에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盧대통령을 만났을 때 내 첫 마디가 「어떻게 됐노, 티베트 여행」이었어요. 그랬더니 「끝나고 해야죠」 하더군요』  
  
  盧대통령 퇴임 후 함께 티베트 여행
 
  ―盧대통령 퇴임 후에는 티베트에 가실 겁니까.
 
  『가야죠. 그게 대통령이 나한테 진 빚이죠. 내년쯤에는 갈 수 있겠죠(웃음)』
 
  ―삼랑진 성당과 盧대통령의 김해 집과는 멉니까.
 
  『대통령 고향집에서 25분 거리죠』
 
  ―항상 신부복을 입고 근무하십니까.
 
  『성당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진 찍을 때만 입어요(웃음). 모임이나 회의 같은 게 없을 때는 자유롭게 입습니다』
 
  ―「성직자의 마음으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이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드린 질문입니다.
 
  『그것도 필요한 거고. 먼 시골에서 우리 위원회로 상담하러 오신 분들이 위원장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야 한다는 분들이 많아요. 멀리서 오셨는데 거절할 수 없으니까 그분들을 만나 드리죠. 만나려면 깨끗하게 입고 있어야죠』
 
  철도 레일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인터뷰가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宋신부는 『왜 이렇게 까다롭고 어려운 질문만 하노. 좀 재미있는 이야기 좀 물어보라』고 했다. 두 기자가 돌아가며 계속한 「신문」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인터뷰를 해보니까, 신부님 생각과 月刊朝鮮 생각은 아주 큰 거리가 있습니다. 세계관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차이가 많죠,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朝鮮日報 데이터베이스에 「주량은 소주 1병」이라고 기록돼 있던데, 소주는 정말 한 병만 드십니까.
 
  『예전에는 여덟 병까지 마셨는데 지금은 한 병이에요. 안주가 좋으면 두 병은 마시죠(웃음)』
 
  ─임기 마치고 한가하실 때 저희랑 소주 한잔 하시죠.
 
  『아, 좋지』
 
  인터뷰를 마친 宋신부가 시원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 정부가 끝나고 宋신부와 소주잔을 앞에 놓고 「盧武鉉 정부 5년」의 의미와 功過(공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한 번 더 토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사진 : 이태훈  

입력 : 2008.01.23

조회 : 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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