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있어 징계를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 교수가 사표를 내고 학교가 이를 수리해 의원 면직이 되면 진상조사와 징계 등 성폭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를 거칠 수 없게 된다. 가해 교수가 사학연금을 받거나 재임용되는 데도 제한 사항이 없다.
대학이 사표를 반려하고 진상 조사와 징계 절차를 거쳐 '파면' 조치하면 사학연금의 절반만 지급되고 재임용이 제한되는 등 제재가 가해진다. 가해 교수들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사표를 제출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이 사표를 제출하자 한국외대와 세종대는 우선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성폭력 혐의가 사실일 경우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징계 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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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생 단체 카톡방에 올린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의 글. 성추행 의혹을 받은 서 교수는 19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진=뉴시스 |
지난 2008년 한 대학원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서정민 한국외대 중동·아프리카어과 교수는 지난 19일 사표를 제출했다. 한국외대 측은 서 교수의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진상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성추행 혐의가 사실이면 징계 절차에 들어간다.
김태훈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도 20여 년 전 제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일자 지난 19일 사표를 제출했다. 세종대는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사표 수리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세종대 측은 "조사위를 통해 징계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파악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사표 수리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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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하일지(본명 임종주) 동덕여대 교수가 19일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하 교수의 미투 운동 비하 발언 및 성추행 혐의에 반발해 수업 거부, 대자보 부착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하일지(본명 임종주)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도 강의 중 미투 운동을 비하한 데 이어 학생에게 강제로 입을 맞춰 논란이 일자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동덕여대는 사표 수리를 보류하고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측은 23일 "학교 측은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성윤리위원회와 별도로 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해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의 사표를 수리한 곳도 있다. 성균관대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가 해당 사유로 앞서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사표를 수리했다.
이경현 전 문화융합대학원장은 2014년 4월 남정숙 전 교수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자 2월 중순 사표를 제출했고 성균관대 측은 이를 수리했다. 성균관대 측은 이 전 대학원장이 앞서 성추행 의혹을 받았던 2015년에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진상 조사나 징계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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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남정숙 전 교수와 성균관대 미투·위드유운동 특별위원회 회원들이 남 전 교수 성추행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그러나 남 전 교수와 '성균관대 #미투#위드유운동 특별위원회(성균미투)' 측은 이 전 대학원장이 앞서 받은 징계는 남 전 교수에 대한 성추행 건이 아닌 다른 건으로 받은 징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 측에 관련 서류 확인을 요구하고 추가적인 진상 조사와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대학 측이 성폭력 혐의를 받는 교수의 사표를 진상 조사도 없이 수리하는 것은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진상 조사와 징계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가해 교수의 사직서가 먼저 수리되면 잘못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며 "또한 사직서를 내면서 유지할 수 있는 '혜택'이 있다. 그런 면에서도 사직서 수리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학교는 문제를 조용히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직도 이 같은 경향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에서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징계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활동가는 "많은 성폭력 사건이 덮이거나 징계 절차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며 "학교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징계가 이뤄졌으며 사후 대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점검해야 한다. 또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점검하는 시간을 통렬하게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해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지금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는 것은 파면이나 해임을 피하기 위해서로 보인다"며 "미투 열기와 운동이 계속될 것 같으니 일단은 피하자는 반응"이라고 했다.
김 부소장은 "학교 측은 가해 교수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한 상황이다. '이 사람이 먼저 사임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교수 징계에 매우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절대 사직서를 그냥 수리하면 안 된다. 사의를 밝혔다고 해도 보류하고 조사를 끝까지 해야 한다"며 "만약 교수가 조사 과정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학교 측에서 이에 대해서도 징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학교에서 제대로 해임 절차를 받지 않으면 가해 교수가 교수 때와 비슷한 사회적 지위에서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