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코지(왼쪽)와 카다피. 사진=조선DB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건넨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금됐다. 사르코지는 2007년 프랑스 대선 직전 카다피로부터 최대 5000만 유로(약 660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프랑스 경찰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전 불법정치자금·돈세탁·탈세 등 혐의로 사르코지를 구금해 심문 중이다. 당시 두바이에 있었던 사르코지는 소환 통보를 받고 급거 귀국해 자진 출두했다. 경찰의 48시간 조사가 끝나면 법원이 구금을 연장할지, 석방한 상태에서 수사할지 결정하게 된다.
차고 넘치는 증거들
프랑스 사정당국은 5년 전부터 사르코지의 부패 의혹을 내사해왔다. 증거는 속속들이 나왔다. 당시 프랑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리비아 석유장관 추크리 가넴이 사망하기 전 남긴 비망록을 입수했다. 이 비망록에는 리비아가 사르코지 쪽에 거액의 불법자금을 넘긴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검찰 또한 카다피 비자금을 찾는 과정에서 사르코지에게 검은 돈이 흘러간 정황을 확보해 프랑스 정부에 넘겼다. 당시 프랑스 탐사보도 언론사 '메디아파르'도 카다피가 불법자금을 보냈다는 리비아 정보국장의 서명이 적힌 문서를 보도했다.
프랑스 경찰은 2016년 카다피 측 정치 브로커로부터 "2006~2007년 사이 5000만유로를 사르코지 쪽에 송금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실제 프랑스 정치권에는 사르코지가 불법자금을 받은 대가로 재임시절 1억유로(약 1320억원) 상당의 군사적 지원을 리비아에 약속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제 사르코지는 집권한 뒤 카다피를 파리로 초청, 무기와 원전 세일즈에 나서는 등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당시 몇몇 프랑스 각료들은 사르코지가 독재자인 카다피를 왕궁으로 불러 환영 만찬을 벌인 데 반발하기도 했다.
그동안 사르코지 본인은 부패 의혹을 강력 부인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사르코지는 2012년 재선에 나서면서 법정 선거 비용을 초과해 사용한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사르코지 오른팔' 게앙도 유용했나
현재 사정당국은 리비아의 불법자금이 중개인들을 거쳐 '사르코지의 오른팔' 게앙 전 내무장관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앙은 이 검은 돈의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앙은 2007년 대선캠프를 총괄한 책임자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사르코지의 최측근이다.
프랑스 검찰은 50만 유로(약 6억6000만원)의 외화가 게앙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파악했다. 그가 2008년 자신의 남프랑스 별장을 리비아의 한 투자회사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각한 경위도 수사 중이다.
한편 사르코지가 소속된 제1야당인 공화당은 그의 구금 당일 성명을 내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면서 "완전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게 보낸다"고 밝혔다. 사르코지파가 여전히 공화당 내에서 주요 계파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당의 요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초대형 부패 스캔들에 당내 분위기는 적잖이 놀란 모양새다.
헝가리계 이민 2세인 사르코지는 2012년 대선 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에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2년 만에 다시 대중운동연합(현 공화당) 대표로 돌아왔다. 그는 또 다시 대권을 노렸지만 작년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뒤 정치적 위상이 흔들렸다.
사르코지는 평소 호화 생활을 즐겨 빈축을 샀다. 2007년 대선 승리 당시 샹젤리제의 최고급 클럽에서 자축 파티를 열어 파문이 일었다. 2015년에도 코르시카섬의 호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