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의 사용자 정보가 미국과 영국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유용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20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의 정치 컨설팅업체가 페이스북 사용자 5000만여 명의 개인 정보를 유용해 '정치 심리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컨설팅업체는 영국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투표 당시 영국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정보를 이용해 국민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가디언은 ‘사상 최악의 데이터 스캔들’, 파이낸셜타임스는 ‘소셜 미디어의 정치 무기화’라고 표현했다. 18일 이들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의회는 마크 저커버그(33)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를 청문회에 출석시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1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의 데이터 분석 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는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과 그 이용자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주고 'thisisyourdigitallife'라는 '성격 검사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표면적으론 성격 검사 앱이었지만 정치적 목적을 갖고 설계된 개인 성향 분석 알고리즘(프로그램)이었다. 이 앱의 제작자는 데이터 과학 전문가인 케임브리지대학 심리학과 코건 교수였다. CA는 페이스북 측에 27만 명에게 동의를 받아 성격 검사 서비스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CA는 5000만여 명의 개인 정보를 얻어냈다. 이는 미 유권자 2억여 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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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의 '美 대선 데이터 스캔들' 개념도. 사진=조선DB |
CA 측은 페이스북 사용자의 '친구' 목록이나 '좋아요'를 누른 항목 등을 토대로, 그들의 소비 성향에서부터 관심 있는 사회 이슈, 정치·종교적 신념까지 파악했다.
당시 근무했던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당신의 아버지나 애인이 당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CA는 수집한 개인 정보를 분석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비판하는 기사나 광고를 누구에게 보낼지, 특정 유권자가 어떤 문구에 반응할지, TV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 트럼프가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해야 효과가 클지 등의 맞춤형 전략을 짰다.
이 선거 전략에 공화당의 큰손인 헤지 펀드 거물 로버트 머서(72)가 620만 달러(약 66억 원)를 후원했다. 인공지능 연구자 출신인 머서는 이미 2014년 미 중간선거 때부터 신생 기업인 CA에 1500만 달러(약 160억 원)를 투자했고 CA는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해 그들의 당선을 도왔다.
전직 CA 직원인 크리스토퍼 와일리(28)는 NYT와 가디언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 와일리는 페이스북에 먼저 "CA가 수천만 명의 정보를 도용하고 있다"고 알렸으나 묵살당했다고 했다.
미국 검찰과 의회 등은 페이스북이 주요 광고주인 CA의 불법을 알면서도 방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CA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해당 정보가 페이스북 정책을 위반해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모두 폐기했으며, 미 대선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연 매출 406억 달러(2017년 기준·43조5000억 원)인 페이스북의 주요 수입원은 개인 정보를 활용한 기업·기관의 '맞춤형 광고' 수익이다. 세계 21억 명의 사용자가 '제3자 정보 제공'에 동의한 뒤 페이스북에 가입, 사생활을 자발적으로 올리고 '친구 맺기'와 '좋아요'를 통해 개인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영미 언론들은 페이스북의 사용자들이 상품 광고의 대상이 된 차원을 넘어 자신도 모르게 거대 정치 자본의 여론 조작 대상이 됐다는 점에 경악하고 있다. LA타임스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사업 모델 자체가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