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미투' 관련 조사 착수했지만... '미온적'이란 시각도 있어 : 월간조선

미투 운동으로 사회 유명 인사들의 성추문이 불거지는 가운데 경찰이 몇몇 인사에 대한 내사 및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수사 당국이 성폭력 조사에 다소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성추문이 드러난 인사는 시인 고은씨,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씨, 극단 대표 조증윤씨, 배우 조민기·조재현·오달수씨 등 수십여 명에 이른다. 이중 경찰이 정식수사에 착수한 건은 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미투 수사와 관련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위주로 15명 가량을 들여다보고 있다"라며 "정식수사 착수는 3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기준으로 보아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인물은 이윤택, 조민기, 조증윤씨인 것으로 파악된다. 조증윤씨 미성년자 단원 성폭행 혐의로 지난 1일 경찰에 구속됐다. 충남경찰은 비서에 의해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안희정 충남지사도 조만간 내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경찰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조민기씨에 대해 강제 추행 혐의로 입건했으며, 오는 12일 조씨를 직접 불러 조사한 후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윤택씨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에 대해선 피해자들이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경찰로 사건이 넘어왔다.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진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교수 4인에 대해서도 지난 5일 내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2013년 친고죄 폐지 이전 발생한 범행이라도 수사를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에서 오늘 중으로 고소장과 기록 등이 송달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도착하는 대로 내용을 보고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신속하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윤택씨의 경우, 대부분 2013년 친고죄 폐지 이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2010년 신설된 상습죄 조항을 적용하면 2013년 이전 범행이라도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이 부분을 집중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주민 청장은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올 수 있고, 다른 법률을 적용할 여지도 있어 수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법조계나 여성계 등 외부 전문가 의견도 충분히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경우 현재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미투’와 관련해 2건을 내사 중이며, 8건은 기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경찰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들은 경찰 수사가 미온적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미투'처럼 사회적으로 파장이 예상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반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선 여전히 조사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관으로 2018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언자로 나선 ㄱ씨는 “4년간 사귄 전 남자친구가 이별에 앙심을 품고 텀블러 등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를 사칭하는 계정을 만들고 내 신상 정보를 올렸다”고 고백했다. ㄱ씨는 “전 남자친구는 해당 계정에 내 얼굴 사진과 모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올리고 나를 사칭해 ‘하룻밤 상대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ㄱ씨는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돼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찾아갔지만 번번히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수사에 임하는 수사기관이 성폭력 신고의 약 45%를 무고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사기관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수사기관이 그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