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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호의 베푼 동료 아내 능욕한 '문제의 시인'은 곡기를 끊고 숨진 시인 옆에서 반야심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이 밝힌 충격적 회고...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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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선생의 단편소설 사로잡힌 악령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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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실로 공교롭게도 내가 직접 그의 악을 확인할 기회가 왔다. 연수를 끝내고 신출내기 검사로 일 년쯤을 지내고 났을 때의 어느 날 바로 그가 관련된 사건이 내게 맡겨진 것이었다. 한 중년이 요건도 맞지 않은 고소장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는데 그 내용은 대강 이랬다.
“상기자(上記者)는 승려였다가 환속한 자로서 약간의 글재주가 있어 시인으로 이름을 얻은 자입니다. 제 아우 권지훈도 역시 한 시인이었는데 그자의 재주를 아껴 오다 종당에는 갈 곳이 없어 떠도는 그를 자신의 가난한 단칸 셋방에 거두어 숙식까지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상기자는 아우가 출근한 틈을 타 제수를 유혹했습니다. 제수는 아우와 팔 년 전에 결혼해 남매를 둔 평범한 주부로서 천성이 그렇게 방탕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처음에는 당연히 그의 유혹을 뿌리쳤을 것입니다. 남편이 워낙 아끼는 사람이라 바로 얘기는 못해도 그를 이만 집에서 내보내라고 아우에게 조르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착한 아우는 눈치 없이 그런 제수를 나무라고 그자를 그대로 잡아두었는데 그만 일이 나고 말았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제수가 끝내 그자의 집요한 꾀임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그자의 겁탈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거듭 정을 통하는 사이에 마음까지 주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우가 그 일을 안 것은 몇 달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착한 아우는 문단에서의 체면도 있고, 또 어린 남매도 어쩔 수 없어 둘의 관계만 청산되면 없었던 일로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자도 그만 낯짝은 있었던지 순순히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살겠다며 남아 있더니 며칠 안 돼 결국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자를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착한 아우는 그래도 고소는커녕 제수를 찾지조차 않고 그날부터 폭음으로만 상심을 달랬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날 만에 어느 여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여관 종업원의 말을 들으면 무언가 약을 먹은 것 같습니다. 믿던 후배에게 배신당하고 문단에 웃음거리가 된 데다 가정과 아내를 잃어버린 상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입니다.
이왕 아우는 죽었고 또 뼈 없이 착하기만 한 아우가 평소에 워낙 여러 사람에게 그자를 용서한다는 소리를 해놔서 제가 법에 호소해 봤자 그자를 벌줄 수 없다기에 저는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렇게 죽은 아우가 가련하고 반성의 기색이 없는 그자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직접 손을 댄 것은 아니나 아우는 그자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이같이 극악무도한 죄인을 벌할 법이 이 나라에는 없다는 것입니까? 저의 무지 탓인지 모르나 이 나라 법전 어디엔가는 상기자를 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으리라 믿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상기자를 법에 고발합니다.”
바로 그의 숨겨진 죄상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힘을 얻게 된 악이 드디어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고 피해도 명백히 발생해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를 벌할 법적인 근거는 찾아낼 길이 없었다. 기껏해야 간통죄에나 문의할 수 있지만 그것도 친고죄라 그 착한 시인이 이미 죽어 버린 데다 평소 유서(宥恕=용서)의 의사를 여러 군데에서 밝혔다면 공소권의 발생 자체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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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이 이문열씨의 요즘은 찾기 힘든 소설을 게재한 후 이씨는 전화를 걸어와 전문 게재를 취소해 달라소설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고 소설이 남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 않아 내 작품집에서 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의 요청에 따라 본지는 사로잡힌 악령들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했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소설적 허구일까. 이에 대해 본지는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으로부터 제보를 받게 됐다. 이 소설에 등장한 문제의 부분은 사실이며 본인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익명으로 처리된 권지훈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금은 거의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권지훈으로 그려진 인물은 1972년 사망한 시인으로 한때 김수영과 쌍벽을 이뤘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 태생인 그는 러시아어에 능했으며 모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다만 다리에 장애가 있어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고정일 사장은 문제의 사건은 종로구 견지동 시인의 자택에서 벌어진 사실이며 남편이 데려온 또다른 시인으로부터 능욕당한 시인의 부인은 남편을 볼 수 없어 아들 둘을 데리고 가출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의 탐험이라는 기사에는 그 시인에 대해 가난과 불구와 가정적 불행에 목덜미를 잡힌 채 오로지 불운과 불행에 의해서만 견인되는 삶을 참담하게 끌어안고 있던 시인은 그 슬픔과 비장함을 이렇게 노래한다고 썼다.
자신이 호의를 베푼 동료 시인에게 아내가 능욕당하고 가정이 풍비박산난 것을 이렇게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사장은 문제의 시인이 곡기를 끊고 숨진 채로 발견된 면목동 집에서 목격한 장면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출판사에서 러시아어 번역을 하던 분이라 한걸음에 그 시인이 숨진 현장으로 달려갔다. 웃목에는 문제의 시인이 죽은 채 누워 있었고 요즘 문제가 되는 시인(詩人)과 박모 소설가가 죽은 시인을 지키고 있었는데 광경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커다란 자배기에 막걸리를 잔뜩 부어놓고 시신(屍身) 옆에서 젓가락을 두들기며 '마하반야 바라밀다...'로 시작되는 반야심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요즘 그의 과거 추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폭로들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입력 : 2018.03.05

조회 : 7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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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세상읽기’

gsmoon@chosun.com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편집부-스포츠부-사회부-정치부를 거쳐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부기자 당시 중국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삼풍백화점 참사-씨랜드 화재-대구지하철화재 등 대형사건의 현장을 누볐다. 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때 한국기자로선 처음 현장에서 들어가기도 했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이 간다'같은 고정코너를 맡고 있다.
댓글달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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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포리 (2018-03-23)   

    한 마디로 악마로군요. 사람이라면 자신으로 인해서 죽은,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이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반야심경을 읖조릴 수 없을 것입니다.

  • 고포리 (2018-03-23)   

    한 마디로 악마로군요. 사람이라면 자신으로 인해서 죽은,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이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반야심경을 읖조릴 수 없을 것입니다.

  • 빠가야본도 (2018-03-05)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졌고 천사와 같았던 시인 구자운이라던데.... 맞나요

  • 럭키가이 (2018-03-05)   

    문기자(언론인을 저는 그냥 기자로 부릅니다)님 고맙습니다
    계속 저들의 2중성을 알려야 합니다
    좌파의 기본이 이중성(내로남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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