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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8년에 걸친 국제마약犯 추적記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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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국정원의 8년에 걸친 국제마약犯 추적記  
 
여대생 등 한국인 21명 감옥 보낸 국제마약조직 두목 프랭크 중국서 검거  
   
● 나이지리아人 프랭크, 유럽·南美·중국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며 마약 거래
● 한국인을 운반책으로 이용해 21명 중 13명은 복역 후 석방, 8명은 외국 감옥에서 복역 중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ksdhan@chosun.com
 
중국 공안의 체포 작전

 
 지난 2월14일 중국 선양(瀋陽) 외곽 주택지역의 5층짜리 아파트단지. 60여 명의 중국 공안 베이징(北京) 특수체포전담반이 이곳을 덮쳤다. 공안의 규모나 움직임으로 봐서는 대규모 폭력조직을 소탕하려는 것 같았다.
 
  중국 공안 베이징 특수체포전담반원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커다란 소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잠시 후 흑인 한 명이 이들에게 체포돼 경찰차에 실렸다. 아주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했지만 동원된 공안의 규모에 비하면 상황은 너무 싱거워 보였다. 중국 공안의 흑인 체포는 한국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제보를 받아 이루어진 작전이다.
 
  국정원은 왜 이날 체포된 흑인에 관한 정보를 중국 공안에 제공했을까. 중국 공안은 왜 이 「싱거운 체포작전」에 60여 명에 달하는 특수체포전담반원들을 투입했을까.
 
  이날 체포된 흑인의 신상명세를 보자.
 
  「본명 오바오하 프랭크 치네두. 국적 나이지리아. 나이 41세」
 
  국제마약조직 두목인 프랭크는 인터폴을 비롯, 한국·일본·덴마크·독일 등 16개국에서 수배된 상태였다. 프랭크는 한국을 비롯 페루·브라질·네덜란드·덴마크·중국·태국·일본·남아공 등에서 코카인 40kg, 대마 282kg(2002년 11월부터 2003년 9월까지)을 밀거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덴마크 감옥에서 탈옥
  
  범행 중 체포돼 덴마크 감옥에서 복역 중 2004년 5월21일 탈옥을 한 경력도 있다. 중국 공안이 대규모 특수 요원을 투입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랭크는 체포된 곳인 중국을 비롯, 유럽·南美(남미)를 主활동 무대로 삼았다. 국정원은 199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8년 동안 프랭크를 추적해 왔다. 프랭크가 여대생 등 한국인을 이용해 국제마약범죄를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을 마약운반책으로 이용했다.
 
  프랭크에게 속거나 꼬임에 넘어가 국제마약범죄에 가담했다가 외국 기관에 체포된 한국인은 2000년 8월부터 2007년 2월까지 21명이다. 여자 한국인 11명, 남자 한국인 10명이 자의든 타의든 이 일에 가담했는데, 15회에 걸쳐 코카인 92.772kg, 대마 40kg을 운반하다 검거됐다.
 
  일본에서 마약을 운반하던 한국인 4명이 검거됐고, 그밖에 아르헨티나에서 3명, 스페인에서 3명, 페루에서 3명, 브라질에서 2명, 영국에서 2명, 네덜란드에서 2명, 덴마크에서 1명, 프랑스에서 1명이 구속됐다.
 
  이 중 13명은 해외 감옥에서 복역 후 석방됐고, 8명은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페루 감옥에 3명, 스페인 감옥에 3명, 아르헨티나 감옥에서 2명이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프랭크는 2003년 10월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검거됐다. 한국 검찰은 독일 정부에 범인 신병인도 요청을 했지만, 독일 정부는 이듬해 2월 프랭크의 신병을 덴마크로 넘겼다. 덴마크도 프랭크의 재판 관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당시 대학생이었던 윤 某 씨가 페루에서 코카인 6.8kg을 소지하고 덴마크에 들어가려다가 덴마크 빌룬트 공항에서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프랭크의 체포 시기를 기점으로 그의 지시로 일어난 범죄사건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건이었다는 점이 독일 정부가 덴마크로 프랭크의 신병을 인도하게 한 主요인이다.
 
  프랭크는 덴마크 질랑트市에 있는 아루후스 구치소에 수감됐다. 덴마크에서의 재판은 한국인 마약운반책 윤 某씨와 함께 2004년 8월 중순에 받을 예정이었다. 덴마크에서 재판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이송돼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재판 날짜를 기다리던 중인 그해 5월 하순 프랭크는 수감돼 있던 아루후스 구치소를 탈옥했다. 다른 죄수 2명과 함께였다. 독일에서 체포된 지 7개월 만이었다.
 
  당시 프랭크 등 탈출범들은 교도관 1명과 함께 작업장에 있었다고 한다. 작업장은 출입문이 철문으로 안전하게 봉쇄돼 있어 탈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교도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장에 있던 지게차를 이용해 철문을 부쉈다. 철문이 부서지자 작업장을 빠져나온 후 버팀 사다리를 이용해 구치소 담을 넘어 탈옥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루후스는 덴마크 제2의 도시로 수도 코펜하겐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다. 아루후스 구치소는 시내 중심지에 있다. 프랭크가 외부의 조직과 연계해 탈옥을 감행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검거되지 않은 마약운반 韓人 더 있을 것
 
  프랭크가 탈출한 후에도 국정원은 추적의 끈을 놓지 않았다. 탈옥 후 프랭크의 행적을 추적한 끝에 중국 선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를 찾아냈다. 탈옥한 지 반 년이 지난 2005년 초였다. 그는 그곳에서 여전히 국제마약조직의 두목으로서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그때부터 현지 에이전트를 프랭크에게 접근시켰다.
 
  프랭크의 일거수일투족이 파악됐지만 범죄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계조직 등 국제마약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프랭크는 탈옥 후 왜 중국을 선택했을까. 중국에서 인구가 많은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니고 선양을 자신의 활동 근거지로 선택했을까.
 
  국정원 관계자는 『선양에는 조선족이 많아 자신의 범죄에 한국인을 끌어들이는 데 용이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랭크 탈옥 前, 그의 범죄에 가담했다가 해외에서 구속된 한국인은 11명이었다. 이때는 여성이 10명으로 남성 1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탈옥 후에 동원한 한국인은 모두 10명으로 이번에는 남자가 9명 여자가 1명이었다.
 
  국정원은 프랭크의 범죄에 동원됐다가 외국 기관에 검거된 한국인이 21명으로 밝혀졌지만, 실제 범죄에 동원된 한국인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마약운반 혐의로 외국 감옥에 갇혀 있는 한국인은 129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여러 명이 프랭크의 마약조직과 연계된 사실을 숨기고 있을 것으로 본다.
 
  국정원은 이때부터 프랭크가 체포된 지난 2월까지 2년여 동안 적어도 300~400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마약운반에 관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명만 적발됐다는 것이다.
 
  프랭크는 한국인들을 중국으로 불러들인 다음 페루로 보냈다. 마약운반책이 된 한국인은 이곳에서 마약 가방을 받은 후 스페인에 있는 조직에 전달한 후 중국을 거쳐 귀국했다.
 
  프랭크는 마약 운반에 하필이면 왜 한국인을 선택했을까. 국정원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아직 한국은 「마약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공항 통과시 의심을 덜 받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공짜 해외여행 빌미로 접근
 
  프랭크는 1998년 4월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후 1999년 6월 서울 용산에 가공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국내에 입국한 후에는 이화女大, 건국大 등에서 한국어를 학습했다. 이미 全세계 11개국 마약조직의 두목이었던 그는 유창한 영어와 한국말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독일어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미국인인데 결혼하자』, 『공짜 해외여행을 시켜 주겠다』는 등의 말로 유혹한 후 마약운반책으로 포섭했다. 남성들에게는 미국인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접근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제마약조직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게 된 것은 1999년이다. 국정원은 1999년 2월 검찰과 공조해 코카인 230g을 판매하려던 나이지리아人 돈킹 일당 3명을 검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은 국내 체류 중인 西南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 가운데, 특히 나이지리아人들이 서울 이태원을 무대로 코카인·대마초 등을 밀매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0년 8월에는 일본 경찰청이 한국에서 일본 고베로 배송한 EMS(업무용 서류나 상품견본 등을 全세계에 2~4일 이내에 배달하는 국제우편서비스)에 은닉된 대마초 15kg을 적발하고 한국 수사기관과 수사 공조를 했다.
 
  이 사건 수사를 통해 西南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이 아프리카産 대마초 등 마약류를 한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밀수출하는 국제 마약범죄에 개입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2000년 10월 한 우체국 직원이 신고를 했다. 그의 신고로 대마 3.3kg을 일본으로 우송하려던 잠비아人 1명과 모잠비크人 1명을 검거했다. 이후로 한국 체류 아프리카人들이 개입된 마약조직 사건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랭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프랭크는 아마 그 당시 이태원 밤거리를 활기차게 누비면서 예의 그 순하고 착해 보이는 얼굴로 미국인 사업가 행세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프랭크가 두목임을 확인
  
  西南아프리카人들이 개입된 마약조직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 사건들이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통제가 있는 것 같은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아프리카人들이 개입돼 있는 마약사건의 정점에 나이지리아人인 프랭크가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정황상 마약사건의 배후는 분명 프랭크였다.
 
  그러나 그를 체포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증인 확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옷을 말쑥하게 잘 차려입고 흰색 차를 몰고 다니며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잘나가는 자칭 「미국인 사업가」였다.
 
  국정원은 범죄증거를 잡기 위해 1999년에 프랭크가 차린 가공무역회사인 「페친코 코리아」를 주시했다. 2002년 1월부터는 협조자를 통해 프랭크의 최근 사진 및 페친코 코리아 관련 정보사항을 입수해 연계 혐의자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했다.
 
  2002년 1월 프랭크가 치밀하게 숨겨왔던 국제마약범죄의 마각이 그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페친코 코리아의 여직원 朴 某양(당시 27세)과 朴양의 친구 沈 某양을 마약운반에 동원했다.
 
  프랭크는 이들에게 의류 샘플 운반을 부탁하면서 항공권과 수고비 150만원을 건넸다. 두 친구는 그해 4월 함께 페루로 출발했다. 그런데 페루 도착 후 신변의 불안을 느낀 沈양은 駐페루 한국대사관에 가서 귀국지원을 요청했다. 朴양은 그곳에 두고 혼자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국정원 관계자는 프랭크가 범죄에 관련됐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페루에 남아 있던 朴양은 애초 프랭크에게 부탁받은 대로 의류 샘플로 위장한 코카인 4kg을 페루 리마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배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검거됐다. 朴양은 그곳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밖으로 드러난 프랭크의 범죄 가운데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
 
  朴양이 구속된 사실을 알게 된 프랭크는 신분이 탄로날 것에 대비해 위조여건을 만들었다. 자신의 姓(성) 「Chinedu」에서 「e」를 삭제해 위조여권을 만든 그는 월드컵이 한창이던 그해 6월 말 해외로 도피했다.
 
  프랭크의 뒤를 추적한 국정원은 그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네덜란드 현지에서 마약사범으로 수감 중인 朴양이 한국 知人(지인)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다. 그 편지를 통해 프랭크가 마약운반을 사주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증거는 잡았지만 프랭크는 이미 한국을 떠난 상태였다.
 
  네덜란드에서 朴양이 검거된 이후 영국·브라질 등지에서 동일 수법으로 마약 운반을 하던 한국 여성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어배울 욕심, 공짜여행에 「마약 운반책」 돼
  
  프랭크는 위조여권을 만들어 한국을 떠나는 순간까지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프랭크가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인 2002년 6월29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는 한국인 여성 4명이 검거 됐다. 李某양(당시 22세·대학생), 전 某양(당시 22세·술집 종업원), 강 某양(당시 22세), 손 某양(당시 21세)이 그들이다.
 
  이들은 2002년 6월27일 한국에서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흑인 남자로부터 가방 4개를 수령한 후, 같은 달 29일 서울을 경유해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갔다가 구속됐다. 방콕에서 흑인 남자로부터 건네받은 가방 4개에는 대마초 40kg이 들어 있었다.
 
  2002년 11월11일에는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서 한국인 여성 2명이 검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역시 마약운반혐의였다. 문 某양(당시 26세)과 추 某양(당시 27세)이 페루 리마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코카인 12.29kg을 전달하려다 체포된 것이다. 문양은 『프랭크를 이태원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고 한다.
 
  같은 달 24일에는 南美 카리브海 부근 가이아나에서 영국 맨체스터로 코카인 10kg을 운반하려던 한국인 방 某양(당시 24세), 태 某양(당시 24세)이 맨체스터 공항에서 검거됐다. 해외 체류 중이던 프랭크는 서울에서 알고 지낸 방 某양에게 국제전화를 해 영국 런던으로 놀러올 것을 제의했고, 방 某양은 친구 태 某양에게 함께 놀러갈 것을 제의했다. 프랭크는 그해 11월16일 두 사람을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직접 맞이했다.
 
  이후 가이아나에서 맨체스터로 코카인을 운반하다가 잡힌 것이다. 태 某양은 친구를 따라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가방 하나만 전달해 주면 해외여행을 공짜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이후에도 한국인들의 피해는 계속됐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영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한 프랭크에게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만났다가 공짜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마약 운반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프랭크는 유럽에 체류하면서도 이태원 유흥업소 종업원 등 한국 체류 당시 내연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마약 운반이 필요할 경우 이들을 통해 한국인들을 동원하는 수법을 썼다.
 
  국정원은 프랭크의 국제마약범죄에 동원됐던 한국인들에게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한편, 증거를 함께 수집했다. 사법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증거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터폴에 수배 요청
 
  이 증거들을 토대로 프랭크와 연계된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지속해 2002년 12월에는 한국에서 마약운반用 가방과 항공권 등을 한국인 여성들에게 전해 준 프랭크의 한국內 연락책인 나이지리아人을 검거했다. 국정원은 서울중앙지검을 통해 인터폴에 공개수배를 의뢰했다. 프랑스 리옹에 있는 인터폴 본부 사무총국은 이 자료를 토대로 2003년 2월 全세계에 프랭크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프랭크가 덴마크 구치소에서 탈옥하기 직전인 2004년 4월에는 프랭크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면서 대마초 등 마약을 유통시켜오던 나이지리아人 일당을 검거했다.
 
  프랭크가 탈옥한 후 중국 선양에 거주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은 선양 외곽에 있는 그의 거주지를 확인한 후 그의 동선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프랭크는 낮 시간에는 주로 잠을 자고 유럽과 南美가 낮이 되는 밤 시간대에 활동했다. 그 시간부터 5개의 휴대전화로 하루 100통 가까운 국제전화를 했다. 당연히 그 전화의 대부분은 국제 마약범죄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국정원, 『우리 국민 피해 입히는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겠다』
 
  프랭크의 동선을 파악한 국정원은 경찰청, 중국 공안에 프랭크 관련 정보를 주고 함께 검거에 나섰다. 지난 2월14일이 바로 그날인 것이다. 프랭크는 현재 선양 도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선양감옥에 수감돼 있다.
 
  프랭크의 검거로 국제마약조직의 검은 손길이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제2, 제3의 프랭크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선양에 체류할 당시 자신의 집에서 나이지리아人 5명을 합숙시키며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한국어 학습을 위해 이들은 한국 방송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수사당국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프랭크의 부하들을 인터폴에 수배해 놓은 상태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다. 그것은 인터폴 수배 상태에서 탈옥까지 감행하며 끊임없이 국제마약범죄를 저지른 프랭크의 사례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국제마약범죄조직 두목을 체포하기 위해 8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추적하는 국가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안보와 국익을 침해하는 국제범죄에 대한 정보수집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우리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에 대해서는 사법당국과 협조,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했다.
 
  그는 『프랭크 같은 범죄자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공항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짐 운반을 부탁할 경우 들어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부득이할 경우는 공항에 상주 중인 경찰·세관 등의 기관에 짐 검사를 의뢰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2007년 8월호)

입력 : 200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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