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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문화

교과서에 실린 성추문 문인·연출가의 작품은?

고은 ‘선제리 아낙네’ , 오태석 ‘태(胎)’, 이윤택 ‘오구’ 등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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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 검색되는 고교 국어교과서와 문학교과서.

후배 문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산 ‘노털상 후보’ 고은 시인의 작품이 국어·문학 교과서에서 몽땅 사라질까. 또 여배우들의 성폭행, 성추행 ‘미투’가 이어진 이윤택·오태석 연출의 희곡작품이 교과서에 빠질 지 주목된다.
 
현재 고은 시인의 시와 수필은 중학교와 고교 교과서 11종에 실려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눈길’, ‘그 꽃’, ‘문의마을에 가서’, ‘머슴 대길이’ 등의 시와 수필 ‘내 인생의 책들’이다.
 
또 오태석의 희곡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둘러싼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 ‘태(胎)’, 탕아인 춘풍과 남편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처 사이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춘풍의 처’가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윤택의 희곡 ‘오구-죽음의 형식’도 문학 교과서에 실렸다. 이 작품은 전통적 장례 절차를 희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현재 관련 사안은 협의 중에 있으며, 교육적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저자와 충분히 논의해 교육부에 보고한 후 수정·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검정 교과서 출판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내년부터 사용하는 새 교육과정 고교 문학 교과서는 아직 검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문제가 된 작가의 작품이 출판사·집필진 차원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 S고 국어교사는 “문제가 된 문인·연출가의 문학작품이 수업 시간에 다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향후 시험출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은 시인은 교과서에 실린 시 ‘그 꽃’처럼, 자신이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지금 보고 있을까.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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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소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을편지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머슴 대길이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 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겟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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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 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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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고은
 
아버지, 아직 남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시대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안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국경 수비대의 칼날에 비친
저문 압록강의 붉은 물빛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西道)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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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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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리 아낙네들
-고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 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 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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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으로 부치는 편지
-고은
 
누이여, 버들 같은 누이여
회령 남양의 강기슭에
떠도는 얼음 덩어리 풀렸는가
땅이야 한 가지도 사재하는 바 없이 봄이 오고
아이들은 잘 있으며 강물은 얼마나 깊어졌는가
누이여 그대 얼마나 땅으로 늙었는가
말과 마음이 같아도
여기서는 아득아득한지라
그대 얼마나 늙었는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는
이런 인사도 헛되거니와
회령 남양의 저문 강기슭에
서러운 버드나무들은 잘 있는가
누이여 버들같은 누이여
내가 누이라고 하면 백번 누이인 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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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으로 가서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서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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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胎)
-오태석
 
(※‘태’는 지학사에서 펴낸 문학교과서에 실렸다. 다음은 교과서에 실린 부분의 원본이다.)
 
[앞부분 줄거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된 사육신이 족멸당한다. 박중림은 가문의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는데 종이 찾아와서 최근에 낳은 자신의 자식을 대신 희생시킬 것을 제안한다.
 
[세조]예가 어딘 줄로 알고 아녀자를 대동하느냐.
[소리] 박팽년의 손부(孫婦) 요. 애를 뱄소.
[박중림] 아니 된다. 놓거라. 놓아, 나를 죽여라 이놈들
(뛰어든다. 손부가 뒤따른다.)
[세조] 누군가. 아니 그대가 어떻게 여기.
[박중림] 내 곧 형장으로 가 죽을 테니 염려 말게. 그 먼저, 이보게 이것이 내 손부인데 임신 중이라 유복자를 염려하여 이것마저 죽이려 하기에 데리고 왔네.
[세조] 어명을 바꾸지 못하는 줄 모르는가.
[박중림] 그대가 뱃놈이 아닌 바에야 임산부를 바다 가운데 버리지는 아니할 것이다 하고 데리고 왔네.
[세조] 과인이 왜 국에 사신으로 갔던 일을 두고 그러는 가.
[박중림] 남을 죽여 살기를 구함은 덕에 좋지 못한 일이라고 그대가 뱃놈들을 말려 임산부를 살려내니, 내 아들 박팽년이 그 말을 전해 듣고 와서 내게 이르기를 관후활달(寬厚豁達) 한 그대 성품을 칭송해마지 않데.
[세조] 그대가 나를 농하는가.
[박중림] 이것을 살려 달라는 소리요.
[세조] 여기는 뱃전이 아니다.
[박중림] 생질의 자리를 찬탈하더니 마음도 뱃전에서 다르고 어전에서 다르고나. 이놈 내 너를 먼저 베리라. (칼을 빼든다.) 성삼문 부친 성승이 일찍이 너를 베려하여 내 그를 말리었드니 오늘에 이르러 천추의 한이라.
((덤벼든다. 동시에 사육신이 헛것들의 차림으로 지쳐든다. 다급한 지경 중에 박중림이 잠시 혼미하였는데 순간, 손부가 비수를 꺼내 박중림의 등에 꽂는다. 쓰러지는 박중림.))
[손부] 나으리. 이 손의 피를 두고 맹세합니다. 내 자식을 낳거든 이처럼 죽이리라. 이것을 낳도록 만 하여 주시오.
[세조] 그대 존속을 살해한 죄 면치 못하여 죽음이 마땅하거늘 어찌 살아 배 안에 자식을 낳기까지 바라느냐.
[손부] 역적의 머릿수를 하나 더 보태 주려고 그러오.
[세조] 내가 네 권속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죽이는 게 아니다.
[손부] 이 난세에 저를 내놓았으니 순전한 이 어미 죄가 아니오니까. 이 손으로 저를 거두게 하시오. 천지개벽을 하고 나으리 가 내 배속으로 들어온다 하여도 이 아이한테는 손 못 대오.
(잠시.)
[세조] 면전에서 시 할아버님을 시해하고 또 제 자식을 죽이겠다. 이처럼 앙탈이니 그대 운명이 하마 그토록 기구하단 말이냐.
[손부] 기구하기는 마찬가지요. 위로는 상 왕의 위를 찬탈하고 밑으로는 충신의 삼족을 멸하니 나으리 의 기구한 처지를 뉘라 동정 아니하겠소.
[세조] 아녀자가 아니었다면 같이 국사를 논 하자겠다.
[손부] 하였더라면 단종의 위를 찬탈하지는 아니했을 것이요.
((오랜 침묵.))
[세조]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균(千鈞) 의 활은 작은 쥐를 보고 쏘지 않는다 하였다. 원컨대 아들을 낳도록 해라. 대 역신이 아니오 충신의 손이니라. 가거라. 아들을 낳거든 죽여 바치고 계집이 거든 모녀가 연명하여도 좋다. (나간다.)
[손부] 천은이 망극하오. (박중림을 끌어안고) 할아버님! 아이구, 할아버님. (그 자리에 덮 석 주저앉더니 터 버리고 설리 운다.) 가네, 가네 하시더니 이제는 참 갔구나. 아이구 내 일을 어찌여. 손자를 보시오. 할아버님 이 그렇게 하여 주셨소.
((사육신이 기원하듯 움직인다.))
[손부] 비나이다.
[사육신] 비나이다.
[손부] 일국지명산(一國之名山)
[사육신] 일국지명산
[손부] 제불지대찰(諸佛之大刹)
[사육신] 제불지대찰
[손부] 오십삼불(五十三佛) 부처님
[사육신] 오십삼불 부처님
[손부] 오백나한 제불(五百羅漢諸佛) 미륵
[사육신] 오백나한 제불 미륵
[손부] 사부칠성(四部七星) 님께 발원이오.
[사육신] 사부칠성님께 발원이오.
[손부] 순천 박씨 한석당 박중림, 취금헌(醉琴軒) 박팽년의 대가 소녀 일신 게 맡기었으니 소소한 이 정성 태산같이 굽어 보사 소망성취 발원이오.
[사육신] 소망성취 발원이오.
(사육신과 손부가 어우러져 출산을 의미하는 의식을 벌인다. 종이 나타나 제 자식과 갖 태어난 핏덩이를 바꿔 가지고 사라진다. 손부가 비수로 종의 자식을 찌르고 자결한다.)
[중간부분 줄거리] 세조와 신숙주는 단종을 죽여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을 빚는다. 한편 금부도사 왕방연은 사사로운 판단으로 왕명을 사칭하여 단종에게 사약을 먹이고, 단종은 죽게 된다.
[세조] 고개를 들어라-. 너희들이 어디 사는 누구이며 무엇 하는 자들인데 이리 방자히 구는가. 산 것들이라면 여기가 어전일 줄 알 것이고 한번 물리라 하였으면 돌아갈 것이지, 또 와서 설레느냐.
[사육신] 영월로 사람을 보내시오. 아니면 나으리 신변이 위태롭소.
[세조] 영월이라면 상 왕이 어떠시단 말이냐.
[사육신] 모반이오.
[세조] 누가 또.
[사육신] 희현당 신숙주.
(잠시.)
[세조] 모반이라면 과인을 시해한다는 소리. 희현당이 과인을 보좌하거늘---
[사육신] 신숙주가 영월로 떠났소.
[세조] 영월은 어찌하여-
[사육신] 상왕을 시해하였소.
[세조] (소리친다.) 무고로다. 이놈들, 누구를 모함하느냐. 대왕 생존시 명나라 사신으로 동행하면서부터 생사를 같이 해온 희현당이다. 경을 욕되게 하는 것은 과인을 두고 그리하는 것이니---
[사육신] 신숙주는 변절하였소. 세종대왕의 은의를 져버렸소.
[세조] 과인에게 헌충하였다.
[사육신] 나으리도 버렸소.
[세조] 죽은 것들을 닮았다 하였더니 말마다 대죄로다. 내 너희들을 내다가 버히리라.
[사육신] (왕방연을 가리키며) 금부도사 왕방연이오.
[세조] 누가.
[사육신] 희현당 신숙주.
[세조] 낙인지악(樂人之樂) 비인지비(悲人之悲) 그대가 밝은 얼굴을 보이면 과인의 마음도 맑을 것이오, 흐리면 궂을 터인데 죽은 얼굴을 보이니 과인의 신변에 살기가 돈다는 저들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닌가보다. (소리친다.) 어서 희현당을 오라고 하여라. 희현당이 과인하고는 핏줄과 같고 육신도 같더니 이 어인 일이냐. 그 어린것을 끝내 죽이려는가. 아니면 과인을 저버리는가. (고개를 든다.) 그보다 과인이 핏줄도 육신도 버히리라. 영월로 말을 몰아 둘 다 참하여라. 아니다. 과인이 버히리라. (급히 뛰어 나간다.)
 
들판
[소리] 명정(銘旌) , 공포(公佈) 가 든다. 엎드려라-.
(사육신이 명정, 공포를 들고 온다.)
[세조] 어디로 가는 상여인가 상주는 나서라.
[신숙주] (엎드린다.) 전하께서 상주이시오.
[세조] 에이 무지한 거 같으니. 기어이 그 어린것을 죽였더란 말이냐. (칼을 뺀다.) 칼을 받아라.
(무리들 명정, 공포로 가로막는다.)
[사육신] 전하, 상중이시오.
[세조] (칼을 떨어뜨린다. 명정을 찢으며 소리친다.) 상여를 돌리거라. 상 왕은 생존하시다.
[신숙주] 전하, 더 이상 피를 보지 마시오.
[세조] 피를 흘릴 것 없다. 상 왕은 죽지 않았어.
[신숙주] 어명을 내리시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체말고 전하께서 상 왕께 사약을 하사한다는 어명을 내리고 이를 공포하시오. 상 왕께서 전하의 어명으로 명을 거두게 하시오.
[세조] 과인이 죽었다고 공포하여라.
[신숙주] 상 왕의 죽음을 헛되이 마시오.
[세조] (비통하여) 섧고도 섧다. 내 결국 저를 먼저 보냈으니 어찌 선왕들 계열에 들겠느냐. 하마 죽지도 못하리라. (소리친다.) 아니 된다. 내 저를 살리리라.
[신숙주] 전하-
(명정, 공포가 설레 인다.)
[세조] 상 왕을 내놓아.
[신숙주] 저들을 버리지 마시오.
[사육신] 나으리.
[세조] 과인을 나으리라고 부르는 너희는 누구냐.
[사육신] 죽어질 몸들이오.
[세조] 너희는 또 왜.
[사육신] 상 왕과 통정을 하였소.
[세조] 상 왕을 보기보다 반갑구나. 너희가 나를 도와라.
[신숙주] 전하.
[사육신] 전하.
(단조로운 요령소리.)
[신숙주] 어명이시다.
[사육신] 어명이시다.
(오랜 침묵.)
[세조] 과인이 그의 운명을 거두었다. 같이 저들을 보낸다.
((정, 공포가 하늘거리며 나간다. 무리 중에 종이 강보에 싼 아이를 안고나선다.)
[종] 상전 님.
[신숙주] 누구냐.
[종] 이 몸을 벌하시오. 천벌을 받을 죄인이옵니다.
[신숙주] 상 왕하고 통정을 하였느냐.
[종] 이것이 전에 살아 계시던 상전님네 대를 이을 자손이 온데, 소인이 종의 몸이라 통 먹을 것을 찾아 못 주니 이러다가 죽이면 귀한 가문 씨 말리기 영낙 없어, 상전 님께 도루 바치오니 이것은 살려 주시고 소인은 죽여주시오. 감히 어명을 어겼사옵니다.
[세조] 그것이 뉘댁 자손인데 니게 맡기었더냐.
[종] 취금헌 박팽년의 손이옵니다.
[신숙주] 어전이시다. 바로 아뢰어라.
[종] 어명이 무서운 줄 모르옵고.
[신숙주] 사실이 그러하다면 너희 둘 다 참하리라.
[종] 사실이오.
(잠시.)
[세조] 어디 보자. 죽지는 않겠다. 뭐라 불렀느냐.
[종] 없사옵니다.
[세조] 어명을 어기어 이것이 태어났네. 과인의 손이 미치지 못하니 어쩌겠나. (안고서) 이것의 손이 산호가지와 같으니 일산이라 부르도록 하고 취금헌 박팽년의 후손으로 대를 잇도록 하여라. 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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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의 처
-오태석
 
(※‘춘풍의 처’는 지학사의 문학교과서와 교학사의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다음은 교과서에 실린 부분의 원본이다.)
 
[앞부분 줄거리] 평양으로 장사하러 갔다가 기생 추월의 유혹에 빠져 돌아오지 않는 춘풍을 그의 처가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수중 세계에서 노모를 살리기 위해 지상에 온 이지와 덕중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은(銀)을 밀반출한 부자(父子)를 서울로 압송하던 중이었으며, 그 상금으로 더덕을 구입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부자의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 그들을 놓아주고 만다. 셋이 서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데 춘풍이 나타난다. 그리고 춘풍의 처는 춘풍과의 대화 중에 춘풍에게 맞아 졸도한다.
 
처  : 너희 두 외사촌간에 내 말을 또 들어보거라. 내가 길쌈장사 수삼년 만에 천하부자 석숭이도 못당할만큼 많은 돈을 벌었으니 세상 부러울 일이 있겠느냐마는, 똑 한가지로 내가 태냇병신으로 서방한테 소박을 맞았어.
덕중 : 언청이냐?
처 : 육손이다.
덕중 : 어디 보자. 말이 좋다. 이것은 곰배팔이로구나.
처 : 내 행색은 이래도 우리 서방님은 웬만한 계집은 깔고 앉는다.
이지 : 함자가 무어요?
처 : 춘풍이.
이지 : 지금은 어딨소?
처 : 나랏돈 집엣돈 다 긁어 가지고서 장사를 한답시고 평양 가서는, 평양 명기 추월네로 작은 집을 삼아 날 가는 줄을 몰라. (한바탕 놀아난다) 그래 내 하도 분해서 지난 달에 “홧병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덕중 : (의아해서) 숟가락을 놨어?
처  : 식은 방귀 꼈어.
덕중 : (배시시~) 냄새가 났어?
처  : 아, 이 자가 말을 어찌 듣나? 노랑머리 박박 긁구 두 손뼉 탁탁 치구 칠성판(七星板) 위에 누웠다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춘풍 : (소리만) 아이고, 하이고... 오... 호...
처  : (듣다가) 아, 우리 영감여, 우리 영감! (가다가 통박을 굴려보고는 당당하던 기세가 꺽여) 내 두 눈 성한 걸 보면 개 잡듯이 두둘겨 팰 것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나, 어쩌나. 날 좀 살려다고.
덕중 : 죽여요? 그럼 식은 방귀 새나가지 못하게 밑구멍을 꼭 막고-
 처  : 밑구멍을 꼭 막고-
덕중 : 숟가락을 꼭 잡고-
 처  : 숟가락! 숟가락이 어디 있냐?
덕중 : 없으면 짚세기라두 움켜쥐구려. (덕중이 면상을 치니 쓰러진다. 치마로 얼굴을 가려준다. 이지, 덕중 곡을 한다)
이지 : 가련하다 춘풍의 처, 침제 길쌈 능난하여
      오푼 받고 새 버선 짓고, 서푼 받고 한삼을 짓고...
      (춘풍, 등장하여 슬피 운다) 제문(祭文)이 이래서 쓸런지 모르것네.
춘풍 : (리얼하게 운다) 아이고오~!!!
이지 : (나레이션) 가련하다 춘풍의 처, 침제 길쌈 능란하여...
춘풍 : 이, 그려... (나레이션 중간중간에 섧게 운다)
이지 : 오푼 받고 새 버선 짓고, 서푼 받고 한삼을 짓고, 이렁성 사시장철 주야로 쉴새 없이 거둔 돈을 장리에 일수 월수 놓아 수천금을 모았구나.
춘풍 : 잠깐, 이보게 그것이 무슨 소린가?
덕중 : 염라국 십전대왕께 제문을 올리는 중이오. 참견을 하려그든 글로 하시오.
춘풍 : 추월의 얼굴 모습 들어보게 (곡을 붙여서) 사챙을 반개하고 녹의홍상 두르고 처년히 앉았으니 영광은 십오 세라. 해당화 저리 가고, 서시는 이리 가고, 양귀비는 저리 가고. 세월 가고, 소리도 다 가고 나서 남은 것이 추월이다. 내 이것을 천자문 보듯 두고 보려고 그러한다. 그돈 수천금은 꼭 나를 다고.
덕중 : 원, 사람이 누웠거든. 문상은 놔두고 문안이나 한 마디 해 보시오.
춘풍 : 내가 지금은 상거지가 돼서 그 집 물 져 나르는 사환 노릇을 하고 있어. 먹느니 이 빠진 헌사발에 누른 밥에 토장덩이 한 가지로 연명을 하는 지경이여. 그 돈 수천 금은 나를 꼭 다고.
황진이 저리 가고, 서씨는 이리 가고
처  : 영감! 어디 마모색이나 봅시다. (형색을 살피고서) 애벌레 망건(網巾) 쥐꼬리 당줄 통영갓은 어디 두고 파립파관(破笠破冠)이 웬일이요?
      (붙잡고 슬피 운다)
춘풍 : (뿌리치고서는) 아, 그려. 내가 집 나올 적에 돈 한푼 팔푼이며, 자식 삼형제를 살기 좋게 마련을 해주고 훨훨 단신 나온 나를 웬 송장 시늉까지 해가면서 이리 추잡하게 찾아다닌단 말이냐?
 처  : (비비 꽈 가며) 그래 그 돈 한푼 팔푼은 당신이 집 떠날 적에 하두 섭섭혀 서 청어 한 못 사가지고, 당신 한 마리 나 아홉 마리 안 먹었소?
춘풍 : 그려? 그건 그렇고...... (고추 세개 묶음을 던져주고) 또 자식 삼형제는 다 어쨌나? 봉팔이, 봉구, 봉지. 음, 많이 컸을게구만.
 처  : 큰 놈은... (간간히 춘풍이 “음, 큰 놈은...?”) 나무하러 가서 정자나무 밑에서 낮잠자다가 솔방울 맞아 죽고... (“음, 솔방울 맞아 죽었구먼, 뭐여?”)
 처  : 두째 놈은... (“이, 두째 놈은...?”) 앞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다가 물에 빠져  죽고, (“뭐어여!!”)
 처  : 싯째 놈은...(“으, 응 싯째는”) 하두 귀여워... (“이, 귀엽지 귀여워.”) 귀여워서 어루다가 경끼로 풍에 걸려 되져 번졌소. (“뭐어어여!!!”) 아이고, 때 리지 말아요, 때리지 말아요... 내가 죽일 년이오. 때리지만 말아요. (약간 가라앉자) 여보, 우리가 이러고 다시 만났응께 아들낳고, 딸놓고, 명주놓고, 배놓고...또 한세상 살아봅시다.
춘풍 : 한세상? (“잉~”) 하나, 원(One)? (“오야-”) 그려 별 수 있나, 일루 와.
 처  : 영감!! (달려온다)
춘풍 : (그대로 뻑- 쳐서 넘긴다) 어, 시원하다!
이지 : 아니, 돈 수천금을 꼭 달라고 해서 말을 붙여보라고 살려 놓았더니 기껏 도루 죽이나?
춘풍 : 아들 삼형제간을 다 죽여버렸는데 세간은 남겨서 뭘 혀!
덕중 : 세간 없이 추월이는 어찌 보구?
춘풍 : 아참, 그렇지. 의원, 의원!
이지 : 급상한이라 난치병이여.
춘풍 : 난치면 경을 읽으라 했겠다. 봉사, 봉사님!
부자 : 어디서 불렀소-오?
춘풍 : 여기요, 여기. 어서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읽어주시오.
부자 : 타박타박 타박머리- 엉금성금 섞어내어-
      영석세라 금보되게- 곱다랗게 배를 낳아-
      정선장에 팔아나가- 엄마사러 갔더란다-
      수박전에 수박 낳고 오이전에 오이 낳네-
      엄마전은 아니 낳네- (춘풍이 부, 자를 노려보자)
      일세동방 절도량 나무관세음
      이세남방 연할연 나무관세음
      삼세서방 절도량 나무관세음
      사세북방 연할연 나무관세음
      <오데서 불러 오데서 불러 오데서 오데서-
      오오데서 부우울러 오오데서 부우울러
      오데서 불러쌌남 오데서 불러
      바쁜 행로 하는 우릴 오데서 불러
      어렵고 힘든 사람 고통받고 병든 이
      우리가 왔으니께 걱정을 말어요 빠밤빰
      부자 부자 명의원 명콤비 빠밤빰
      엉덩이 살짝 볼기짝 엉덩이 살짝 볼기짝->
춘풍 : (경을 듣다 못해 부의 이마를 뻑- 치고) 엄마전이 어디 있냐? (사이) 아참! 경을 다 읽었나?
      <춘 ; 그게 경인가? 부 ; 최신 경인디 아직도 못 들어봤는감?>
 부  : 경을 다 읽으면 살겠소.
춘풍 : 경을 얼마나 읽었나?
 부  : 경을 꼭......
 자  : 절반.
춘풍 : 어서 읽게.
 부  : 해동 해동 조선국, 성씨가 무엇이오?
춘풍 : 심달래 심씨여.
 부  : 심달래 심씨. 해동 해동 해동... 조선국 대전시 대덕골 거주 심달래 신운이  불길하여 우연절도 명재경각(命在頃刻)하였으니 복채를 내시오.
춘풍 : 얼만가?
 부  : 돈 꼭 천냥.
 자  : 오백냥.
 부  : 천!
 자  : 오백!
 부  : 천!!
 자  : 오백!!
 부  : 처언!!!
춘풍 : (가만히 하는 짓거리를 보다가) 아, 치워.
부자 : 오백냥~
춘풍 : 그만 둘라우.
 부  : 이대로 중도막에 끝내두면 죽었다, 살아났다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하여 나중에 성가셔서 어쩔라고?
춘풍 : 수천금 너 다 주고 난 이 빙-신 업고 장마다 구걸 댕기구? 치워, 갖다 묻어야것어.
 부  : 그럴라면서 뭐하러 경을 읽으라고 불렀나. 그냥 편케 가게 놔두지, 이 ㅅ-시앙.
 자  : 아...아버지. 아버지!
춘풍 :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네. 이것이 생기기는 찌그러졌어도 명색이 조강지처(槽糠之妻)여. 가 향도꾼이나 부르게, 출상을 하여야겠네.
 자  : 출상은 뭣하러 허냐? 그냥 여기다 묻지. 시-양, 쓰비릴..!
춘풍 : 저 후레자슥이... 칵! 일세동방 절도량 나무관세음 (처의 전대를 뒤지다가 이지가 눈치를 주자) 으응, 내가- 이것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와서  아직 후행을 못하였어. 내 저를 버린 것은 기왕지사요. 내 후행이나 한자리  신명지게 놀아야것네. (신파조로) 조선땅 춘풍의 처 심달래 심씨 심낭자 영결종천(永訣終天), 향도 향도꾼! (옥리들 부, 자 함께 뛰어나온다)
일동 : 에헤 에헤헤 에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 헤야
      삼천갑자 동방석은 삼천갑자 살았는데
      우리네 인생은 백년도 못 살아
      에헤 에헤헤 에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 헤야
      어디를 갈 꺼나 어디를 갈 꺼나
      심산 버리고 어디를 갈 꺼나
      에헤 에헤헤 에야 에헤헤 에헤헤 에헤 헤야 쉬-!
      (춘풍을 떼메려 한다)
춘풍 : (소리친다) 아다닷...... 이것들아, 죽은 것이 내가 아니여! 어찌 나를 떠메느냐. 저기 죽어 자빠져 있는 것이 안 보인단 말이냐. 어찌 생사람을 잡어?!
옥리 : (감정 없이, 내뱉는다) 평양을 가오!
춘풍 : 피-양! 아니, 그러면 너희가 추월이가 보낸 사환이로구나. 옳거니, 추월이 요년이 내 본마누라 보러 갔다고 앙탈이 났구만, 그것이.
옥리 : 평양 감사가 보냈소. 나랏돈 썼다고 국문(鞫問)을 하잡디다.
춘풍 : 나랏돈! (처의 전대를 떠올리고) 으, 나랏돈 여기 다 있소.
옥리 : 택두 없는 소리! 감사한테나 가서 아뢰시오.
춘풍 : 아이고, 이제 영락없이 죽었구나.
옥리 : 하직이로구나......! (쑤욱 빠져나간다)
 자  : 여~그, 겡 한자리 읽읍시다.
이지 : 이, 그려 어서 읽어라. 경을 읽어.
 부  : 복채가 천금이요.
이지 : 이 돈 너 다 가지구 우리 성님이나 살려내어. 저기 저 서방님 끌려가는게 안 보인단 말이냐?
 부  : (신명지게) 자손이 늘어 평토제(平土祭)를 지낼 제, 칠팔 촌 강건지척 처자 공 자식공이 지절하게 엎쳤으니, 송장공은 어서 반짝 눈을 뜨시오.
      <한 번 가신 우리 엄니 어딜 가고 안 오시나 저녁해는 저물었는데
      그믐밤이 어두운데 달이 뜨면 오시려나 어서 와요 울 엄니
      아주 가신 우리 엄니 이내 나를 잊으셨나 갈바람 소슬히 부네
      겨울날의 눈이 오니 봄이 되면 오시려나 어서 와요 울 엄니 (계속)>
      (자, 처의 전대 세 개를 뒤져 낸다. 마지막 커다란 전대째 그만 놀라)
 자  : 꺄악!! 아버지, 아버지! (이지, 덕중이 고개를 들자) 엎어져, 엎어져! 쉬잇! (엎드려서 처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이렇듯이~ 어린 것이 와서 젖보채요, 응~
 부  : 그랑께 송장공은 어서- 반짝 눈을 뜨시오!!
 처  : 아가, 아가.......
 자  : (이지, 덕중에게) 잡어, 잡어! (각각 처의 팔과 다리를 잡는다)
부자 : (함께 전대를 잡고) 이렇듯이 어린 것이 와서 젖보채니 송장공은...... 송장공은...... 어서 반짝 눈을 뜨시오! (전대를 빼내고서) 계명(鷄鳴)이로구나!!
      (노래가락을 하며 신이 나서 빠져 나간다)
 처  : 아휴~! (개운한 느낌) 그런데 저자들이 왜 남의 허리는 뒤져가나? (허리를 확인하고는) 내 돈! 저 놈, 도적놈! 도적놈 잡아. 아니, 뭣들 하고 서있는 게냐? 이놈들, 너희가 저것들하고 한 통속이었다는 말이냐, 그럼?
덕중 : (배시시) 기껏 살려내니 보따리 내란다더니, 아 이건 경우가 아주 급살을 맞았소.
 처  : 급살을 맞았어?!
이지 : 성님, 그 전대는 목숨하고 바꾼 것이니 잊어버리시오, 잊고. 성님, 성님이 아직 자식을 낳을 재간이 있것소?
 처  : (의아해서) 자식은 또 왜?
이지 : 그 재간만 있으면 벼슬을 하는 길이 있소. 벼슬을 해야 서방님을 구하겠소.
 처  : 서방님! 그렇지, 서방님이 어디 가셨냐? (덕중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음질 하다가 이지의 말에 멈칫한다)
이지 : 평양에 끌려가셨소. 나랏돈 썼다고 감사가 국문을 하잡디다.
 처  : 평양에! 어찌하면 서방님을 구한단 말이냐?
이지 : (다정다감하게) 자식을 낳을 재간이 있으면 서방님을 구하것소.
 처  : 그러게, 한 배 꼭 남겨둔 것이 있기는 있다만......
이지 : 그럼 됐소. 벼슬을 합시다.
 처  : 되기는, 서방님이 안 계신데 한 배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서 된다는 말이냐?
덕중 : 아 긍께, 그럴만한 힘깨나 쓰는 어른이 한 분 있는디, 성님이 가서 그 분에게 한 배 탁- 놔주고 벼슬을 받아오시면 되오.
 처  : ...... 그러면 뒤에 서방님 얼굴은 어찌 보고?
덕중 : 아니면 꺼멓게 죽은 얼굴이나 보지.
이지 : 성님!
 처  : 꼭 한 배 남겨두었어.
덕중 : 성님, 서방님을 구합시다.
 처  : 인정도 없구나.
이지 : 성님, 독하게 삽시다.
 처  : 야속하구나.
      (천둥이 친다. 이지, 덕중 덩실덩실 춤을 춘다. 처는 마치 번갯불하고 놀아나는듯 몸을 뒤척인다. 불길처럼 논다)
이지,덕중 :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놓아라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놓아라
      (천둥소리, 처의 비명과 함께 쫙- 찢어지는 강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본문이미지
오구-죽음의 형식
-이윤택
 
(※ ‘오구’는 교학사의 문학교과서에 실렸다. 다음은 교과서에 실린 부분의 원본이다.
줄거리는 낮잠 자다가 죽는 꿈을 꾼 노모가 아들에게 산오구굿을 해 달라고 조른다. 산오구굿의 일부가 행해지는 도중, 신나게 춤추던 노모가 급작스레 죽는다. 그리고 노모의 초상집에 저승사자가 출연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돈에 집착을 보이는 인물들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세태를 풍자한다. )
 
사자2 : (관에서 뛰어 나온 노모에게) 여노는 무슨 애로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반칙을 범하고 계시오?
노모 손가락질로 다가오라는 시늉.
사자2, 노모에게 다가가 귀를 댄다. 알았다는 듯 끄덕거리는 시늉.
사자2, 뚜벅뚜벅 걸어와 둘째 멱살을 잡아든다. 번쩍 들리는 둘째 상주.
둘째 상주 : 살려주!
사자2 : 안 되겠다! 어머니가 너하고 동행해야 되겠단다.
둘째 상주 : 아이고, 나느 상주지 저승 갈 사람은 아니오.
사자1 : 야! 이 후레자식아! 저승이 제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여행 취소하는 온천장인줄 알아!
석출 : 어떻게 편리 좀 바줄 수 없겠소?
사자1 : 무슨 편리?
석출, 사자1에게 다가가 귀엣말.
사자1, 눈을 끔뻑이며 의미심장한 미소, 그리고 사자2에게 놓아주라는 눈짓. 털썩 떨어지는 둘째 상주.<중략>
둘째 상주, 옷 속에 꿍쳐 둔 부조금을 하나 둘 끄집어내어 관 속에 넣으며, 애고애고 돈 잃어 원통한 곡.
둘째 상주 일어서려는데, 노모, 어깨를 찍어 꿇어앉힌다. 노모의 수화(마임)-
사자2 : (통역) 내 통장 내놔!
둘째 상주, 더욱 서러운 곡 놓으며 통장과 인감도장을 관 속에 집어 넣는다.

입력 : 2018.02.22

조회 : 1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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