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최순실(62)씨의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안종범(59)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이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에선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모두 63권 분량이라고 한다. 2014~2016년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조정수석으로 일하며 쓴 것이다. 안 전 수석은 개인 메모는 앞에서부터,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뒤에서부터 정리해 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지난 5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선고공판에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안종범 수첩에 대해 “안종범의 수첩은 그 기재 존재에 관해선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기재된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론 간접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8일 만에 열린 최씨의 재판에서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스모킹건’이 돼 돌아왔다. 최씨의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업무수첩을 정황증거로 사용하는 범위 내에서 증거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박 전 대통령의 단독 면담에서 대통령과 개별 면담자 사이에 대화가 있었고, 그 대화내용을 추단(推斷)할 간접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각종 사업의 구체적 내용이 적혀 있고, 이것이 최씨의 범죄 행위를 설명하는 유력한 정황이 된다는 점도 증거 능력이 있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항소심 재판부와 정반대의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14일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안종법 수첩과 같이) 동일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인되지 않으면 이번처럼 엇갈린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하급심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담당 판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순실 변호인 측 관계자는 "우리도 당황스럽다. 곧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안종범 수첩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 당시 작성된 게 아니라 최순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작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었다. 63권 중 일부는 사후(事後) 작성된 것이라 증거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최씨 측 관계자는 “그 부분에 대해선 (재판부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월간조선'에 밝혔다.
앞서 최순실 측 이경재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 직후 기자들에게 “법정에서 재판장님 설명을 들어보면 이것은 우이송경격(쇠귀에 경 읽기)이라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
이렇듯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 능력이 재판마다 바뀌면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첩의 주인인 안 전 수석은 이날 징역 6년에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