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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敵將)을 숭배하고 동맹국을 배신하였다가 피살된 표트르 3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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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영토, 헌법, 체제 등 국기(國基)를 훼손하거나 뒤엎으려는 반역에 대해선 대역죄(大逆罪. high treason)로 다스리는데 보통 사형(死刑)으로 처벌한다. 우리 형법엔 대역죄에 해당하는  죄목이 여적죄(與敵罪)인데, 사형뿐이다. 
     
적장(敵將)을 숭배, 동맹국을 배신, 국민들과 군인들의 분노를 샀다가 부인이 주동한 쿠데타를 당한 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경우가 러시아의 표트르 3세이다. 그는 표트르 대제(大帝)의 딸인 앤의 아들이었다. 표트르 3세의 아버지는, 스웨덴의 칼 12세(그는 북방전쟁에서 표토르 대제와 자웅을 겨루었던 영웅이었다)의 여동생을 어머니로 둔 칼 프리드리히였다. 덴마크령 홀스타인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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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황제.
부모가 일찍 죽어 10대에 공작인 된 표토르는 독일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러시아어를 거의 하지 못하였다. 표트르의 어머니 앤의 언니인 엘리자베스는 쿠데타로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그는 여동생의 아들인 표트르를 러시아로 불러 황태자로 지명하였다. 엘리자베스는 1761년 12월 25일에 죽었다. 표트르가 황제가 되어 3세로 불리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생래적으로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를 싫어하여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프랑스와 연합, 프러시아를 상대로 7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의 폴란드 영토인 실레지아 영유권을 둘러싼 전쟁에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여하였다. 프러시아는 영국 및 하노버와 동맹하였지만 막판에 영국이 휴전 협상을 압박, 코너로 몰렸다. 러시아 군은 한때 베를린을 점령하는 등 승기(勝機)를 잡았고 프리드리히 왕은 항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숙적 엘리자베스가 죽고 표토르가 황제가 된 것이다. 
  
표트르 3세는 어릴 때부터 독일적 환경 속에서 자라 위대한 개명(開明)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 숭배자였다. 프리드리히는 대왕이라 불릴 정도로 군사적 천재였다. 표트르 3세는 황제가 되자 평소 품었던 감정대로 동맹국을 배신하고, 일방적으로 프러시아와 휴전, 평화협정을 맺었다. 프러시아는 몰락 직전에 기적적으로 구제되었다. 이를 브란덴부르그 가문(家門)의 기적이라 한다. 
 
프리드리히 대제 숭배자였던 히틀러는 1945년 포위망이 좁혀오는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브란덴부르그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랐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급서(急逝)하자 히틀러는 러시아 엘리자베스 황제의 죽음이 가져다 준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여기면서 환호하였다고 한다. 
  
적장을 숭배하고 동맹국을 배신한 표트르 3세로 인해 유럽의 판도가 바뀌었지만 그의 몰락을 재촉하였다. 항복 직전에 갔던 프러시아는 기사회생하여 오스트리아를 공격한다. 표트르 3세는 러시아 군대를 프러시아에서 철수시킨 뒤엔 러시아 군대를 프리드리히 지휘하로 넘겨 오스트리아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80도의 배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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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2세.
이 무렵 표트르 3세는 프리드리히 왕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러시아의 황제보다 프러시아의 장군이 되는 게 더 좋다'고 고백했다. 오스트리아 편이던 프랑스와 스웨덴은 러시아가 이탈하자 세(勢)가 불리함을 깨닫고 오스트리아 원조를 철회하였다. 프러시아의 역전승으로 귀결된 7년 전쟁은 프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밀어올렸다. 7년 전쟁은 범(汎)세계적인 전쟁이었다. 북미와 인도에선 프러시아 편에 선 영국과 오스트리아 편에 선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데 결국 영국이 이겨 세계제국으로 부상(浮上)한다. 
  
표트르 3세의 배신은 영국 프러시아를 유럽의 주역으로 밀어올리고 프랑스의 쇠락을 예약하였으니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럽의 세력관계를 결정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그 발단이 표트르의 프리드리히 숭배였다. 비유하면, 김정은 숭배자가 한국 대통령이 되자마자 김정은을 압박하던 미국 주도의 연합세력을 배신,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북한 정권 편에 섬으로써 핵무장한 북한 정권이 살고 중국이 동북아의 맹주가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표트르는 러시아 정교(正敎)의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개신교를 지원할 태세를 보임으로써 러시아의 오랜 전통을 무시, 러시아 민중의 분노를 샀다. 
     
러시아 장교들은 그들이 어렵게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프러시아를 살려준 '이상한 황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자란 표트르 3세는 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이었는데, 황제가 되자 친(親)프러시아 감정을 외교에 그대로 노출시킨 것인데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러시아 군의 복장, 훈련, 전술을, 적군(敵軍)인 프러시아 모델로 바꾸도록 명령, 장교들을 모욕주었다. 적장을 사모하는 군통수권자로 비친 표트르 3세는 홀스타인 문제를 트집잡아 덴마크에 선전(宣戰)포고, 수도 페테르부르그를 비웠다가 쿠데타를 당한다.
   
주도자는 황비 캐서린(러시아 어로 에카트리나)과 근위대의 젊은 장교단이었다. 에카트리나는 남편이 황태자 시절에 바람을 피우자 맞바람을 피워 아이까지 낳았다. 이 아이는 나중에 황제가 되는데 생물학적 아버지는 쿠데타 때 그녀를 도운 근위대의 오를로프라는 장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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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 전경.


폐위된 표트르 3세는 그 직후 오를로프 형제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남편을 죽음으로 몰면서 즉위한 에카트리나 2세는 대제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를 잘하여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개명군주로서 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든 사람이다. 
  
표트르 3세는 적장과 적국의 문화에 영혼을 판 사람이었다. 러시아 군대는 프러시아 군에 못지않는 전통과 전투력을 가졌는데 최고 사령관이 적군에 굴종적 자세를 취하면서 고립된 적에 탈출로를 내어주어 다 이긴 전쟁을 망치고 적장을 승자(勝者)로 만드니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비유를 든다면 스탈린주의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경우나 김일성주의자(주사파)가 한국의 국가 지도부를 장악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글=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입력 :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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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ol@chogabje.com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공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사태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lt;마당gt;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lt;月刊朝鮮gt;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lt;月刊朝鮮gt;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lt;月刊朝鮮gt;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lt;月刊朝鮮gt;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lt;조갑제닷컴gt; 대표로 있다. 著書로 《金大中의 正體》 《역적모의》 《一流국가 紀行》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軍部》 《조갑제의 광주사태》 《朴正熙》(全13권) 《한반도의 핵겨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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