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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일부 친문(親文) 지지자, 박정희 시해한 김재규 재평가 요구

박정희 지지자, 김재규 묘소 찾아가 비석 훼손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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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당시 김재규는 박선호 과장의 권총으로 차지철을 쏜 다음 박정희 대통령을 쏘았다.

친(親)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중심으로 김재규 재평가 논의가 한창이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작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당시 중앙정보부장)를 ‘열사’, ‘정말 감사한 분’, ‘갓재규’라 칭송하는 글을 올리고, 일부는 직접 김재규 묘소(경기도 광주 오포읍 소재)를 찾아 인증사진을 올기도 한다.
 
한 친문 지지자는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박정희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수백만이 피를 흘리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절박함이었을 듯...”이라며 김재규를 옹호했다.
또 “10·26 사태가 없었다면 지금쯤 박씨 왕조시대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다른 지지자는 “김재규는 5·16 군사 쿠데타와 관련이 없고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던 이종찬 계열 사람이었다”며 “중정 부장 취임 이후 남산 고문실을 폐지했으며 간첩조작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 중정 부장 임기 3년간 70건이 넘던 간첩조작 사건이 김재규 부장 시절 0건”이라는 사실확인이 어려운 주장도 펴고 있다.
 
이와 관련, 국군기무사령부가 보안사령관을 지낸 김재규의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진 곁에 걸리게 된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무사에 대한 국정감사 때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의원이 기무사 회의실에 걸려있는 전직 사령관들의 사진을 문제삼았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관의 사진 중에 유독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보안사령관의 사진만 왜 없느냐”고 따진 것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이 여당 의원은 또 “역사적 사실로서 12·12 군사반란 수괴죄와 광주 5·18 유혈사태와 관련해 내란죄 등을 확정받은 전두환·노태우 사진도 걸려 있다”며 “같은 차원이라면 김재규 사진도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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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추모비의 ‘의사(義士)’자가 훼손된 모습이다. 출처=위키트리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칭 ‘애국순찰팀’ 소속 인사들이  최근 김재규 묘소를 찾아가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 글자 중 ‘의사(義士)’ 부분과 ‘장군(將軍)’ 부분을 훼손해 논란이 일었다.
 
조갑제의 김재규 평가는...
 
평생 박정희와 그 주변을 취재하고 연구한 ‘조갑제 기자’는 김재규를 어떻게 평가할까.
조갑제의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2005년 刊)에 따르면, 김재규는 ‘인간적인 바탕은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격동기를 주도할 만한 안목과 추진력을 갖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행동을 했다는 점에 김재규의 남다른 면이 있다. 그가 지녀왔던 인간적인 선량함과 정의감에다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그리고 평소의 시국 판단을 확인시켜 준 부마사태의 민란화가 보조적인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또 남자다운 사생관(死生觀)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 무사정신의 숭배자였다....〉(p.115)
또 일각에서는, 김재규가 박정희 암살의 이유로 든 민주회복이란 말이 그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후(事後)에 지어낸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조갑제 기자에 따르면, 김재규는 대체로 시국대책에 있어 온건론을 견지한 것처럼 보였지만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의 말대로 그것은 논(論)이랄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김재규는 YH여공의 신민당사 농성 때는 청와대와 경찰의 안전대책이 미흡하다고 반대하는 것을 누르고 경찰을 투입하도록 했고, 한 여공(女工)의 사망을 가져왔다. 그는 또 1979년 8월 하순 대통령이 주재한 시국수습대책회의에서 “각하, 칼날이 시퍼린 긴급조치 10호를 쥐어 주십시오. 그래야만 정국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지금 학생, 종교, 근로자들을 다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이 난국을 타결해 나가겠소. 당분간 9호로 밀고 나가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
정보부 간부들도 긴급조치 10호를 신설하자는 발상에 반대했다.

입력 : 2018.02.04

조회 : 9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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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chosun.com
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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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수 (2018-05-20)

    김재규 의사 덕에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이 가능했다. 멍청한 가축들은 닭아빠에 선동세뇌되어 그가 친일빨갱이인줄도 모르고 빨갱이는 죽여도 돤단다. 닭부터 빨갱이니 죽아고 나불대면 애국자라 인정해주겠음. 503번 나오면 군사재판소 가즈아... 김재규 의사 아니었음 대한민국 진작에 공산화돠었다...

  • 시인 (2018-02-04)

    폐류의 극치다.
    지성의 저질스런 타락이다.
    얼치기 공산주의자들은 수단방법안가리고 이용하고 버리고 비 인간성의 극치다.
    한국의 사회가 왜이리 저질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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