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호의 목발 본 김정은, 잠 제대로 못 잘 것" : 월간조선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에서 탈북자가 소개되는 일은 흔치 않다. 지난 1월 3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 도중 탈북민 지성호씨를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사악한 본성을 보여주는 또 한 명의 목격자가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며 “그의 이름은 지성호”라고 했다.

그러자 의회 회의장 2층 방청석 앞줄에 앉아 있던 지씨에게 기립박수가 이어졌다고 1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지씨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목발을 들어 화답했다고 한다.

지성호씨는 이른바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북한 어린이)’ 출신이다. 1996년 굶주림에 정신을 잃고 기차에 치여 왼쪽 다리와 팔을 잃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 2010년부터는 북한인권청년단체 나우(NAUH)를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나우는 전 세계에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고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씨는 2017년 10월 미국 '옥시데이 재단'에서 수여하는 '커리지 어워드'상을 받았다. 이 상은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한 사람을 선정해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연두교서가 있던 이날 지씨가 들어 보인 목발은 그가 탈북할 때 짚고 나온 것이라고 한다. 지씨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목발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호는 목발을 짚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수천 마일을 여행한 끝에 자유를 찾았다"며 "그의 가족 대부분이 따라왔지만 아버지는 탈북 도중 체포돼 고문을 받아 숨졌다"고 소개했다. 이어 "성호가 서울에 거주하면서 다른 탈북자들을 구출하고 (방송을 통해)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 북한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며 "그의 희생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준다. 성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했다.

지성호씨는 1월 31일 조의준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연두교서 자리에서 목발을 흔든 것과 관련해 “억압과 인권탄압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북한 김정은 정권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 연설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데 대해 "친구처럼 불러줘서 뿌듯했다. 그런 친근감이 너무 좋았다”면서 "지난 여름만 해도 백악관 외곽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가운데 연극을 했다. 당시에 나는 꽃제비 거지 역할을 맡았었는데 지금 내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서 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목발은 아버님이 만들어주신 마지막 유품이다. 목발은 내가 자유를 찾아 새 삶을 살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았던 과거를 북한 정권에게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 인권을 억압하는 것을 숨길 것이 아니라 숨기려고 해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을 김정은 정권에 보여주는 메시지다”라고 강조했다.

지씨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압박 효과에 대해 "북한 내부의 분위기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커졌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핵·미사일이 아니라 잘 먹고 사는 삶, 안정된 삶이다. 그게 힘들어졌다”고도 했다.

지씨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북한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일에 더욱 노력할 것이고 특히 북한 청년들을 위해 일하겠다. 우선 청년들이 좋아하는 케이팝(K-pop)이라든가 음악, 노래 등을 (북쪽에) 공급하는 것이 주가 될 것 같다. 시장·장사·돈버는 방법·기술 등에 대한 정보유입을 하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청년들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비판하고 탈북자 사연까지 소개한 것과 관련해 미국 국가이익센터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1월 31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의회에서 탈북자가 목발을 힘껏 들어 올리는 모습은 그 자체가 극도로 강력한 대북성명(statement)”이라며 “김정은이 편히 잠잘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강조하면서 직접적인 군사행동 거론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고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