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게임용으로 구입한 '지포스 1080' 그래픽카드. 작년 70만 원대였으나 최근 비트코인 열풍 후 110만 원을 넘어섰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투자 열풍 때문에 이들 가상화폐 채굴에 쓰이는 그래픽카드(GPU)가 가격폭등 및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획득할 수 있다. 새 코인을 생산해 내는 것을 ‘채굴(mining)’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래픽카드가 필수적이다.
그래픽카드 판매량 1년 새 145% 증가
그래픽카드는 원래 컴퓨터가 만든 디지털데이터를 영상신호로 바꿔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출력하는 장치다. 일반 PC는 별도의 그래픽카드 없이 CPU(중앙처리장치)에 그래픽 기능이 포함된 경우도 많지만, PC로 최신 게임과 3D 동영상과 그래픽 등을 정교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그래픽카드는 보통 게임이나 동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구매해 왔지만 고성능 그래픽카드는 용량과 비디오메모리 등이 매우 고사양이기 때문에 가상화폐 암호풀이에도 유용하다.
23일 전자상거래 업계에 따르면 그래픽카드는 가상화폐만큼이나 귀한 몸이 됐다. 옥션이 최근 3개월 그래픽카드 매출을 집계한 결과,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이 145% 증가했다. 같은 기간 11번가와 G마켓의 그래픽카드 매출도 각각 141%, 61% 신장했다.
그래픽카드 최저가도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격비교 사이트 에누리에 따르면 22일 기준 인기 제품들의 최저가격은 최근 3개월(2017년 10~12월) 새 36~65%가량 인상됐다.
시판 그래픽카드는 장착된 GPU의 이름에 따라 구별되는데, 엔비디아사의 ‘지포스(Geforce)’ 시리즈와 AMD사의 ‘라데온(Radeon)’ 시리즈가 가장 많이 팔린다. 성능은 제품 뒤에 붙은 숫자가 커질수록 좋아지며 일반적으로 ‘지포스 1060’ 이상 돼야 가상화폐 채굴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포스 1060은 지난해만 해도 20만 원대였으나, 1월 22일 43만6730원으로 3개월 사이 64% 이상 뛰었다.
이보다 더 고사양인 ‘지포스 1080’은 지난해 하반기 60만 원대에 팔렸으나 현재 100만 원이 넘었고, 그마저 쇼핑몰마다 품절상태다.
에누리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채굴용 그래픽카드 수요 증가로 상승했던 가격도 7월 이후 안정화됐지만 하반기부터 다시 가상화폐 가격이 요동치면서 그래픽카드 수요도 급격히 늘었다”며 “당분간 가상화폐의 시세에 따라 그래픽카드의 수요도 수시로 변동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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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IT업체가 만든 가상화폐 채굴기. 여러 대의 그래픽카드를 연결했다. |
고사양 그래픽카드 사면 직접 채굴이 가능할까?
가상화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개인이 고사양 그래픽카드를 구입해 직접 채굴하면 더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비트코인 채굴 과정을 지켜봤다는 한 게임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비트코인 1개 채굴을 위해서는 채굴이 가능한 최소 사양의 그래픽카드(40만 원대) 6개를 연결한 PC가 여러 대 필요하며, 이를 24시간 이상 쉼없이 돌려야 1개를 채굴할 가능성이 생기는 정도다. 또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작업은 그래픽카드를 혹사시켜 성능을 점점 떨어뜨린다.
그는 “수일 동안 채굴 작업을 지켜본 결과 난방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발열이 심했고, 장비를 갖추는 비용과 전기세를 계산해 보니 개인의 비트코인 채굴은 생산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채굴은 주로 중국에서도 전기세가 싼 지역에서 수백 대의 컴퓨터를 장만한 기업형 채굴업체들에 의해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다.
품귀현상에도 중고 그래픽카드는 '조심'
한편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배틀그라운드’ 등 고사양 게임을 하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구입하려던 소비자들은 울상이다.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서 PC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비트코인 때문에 그래픽카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게이머들이 그래픽카드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며 “비싼 가격이라도 좋다며 찾는 사람이 많은데 물건이 없어서 사업자들도 곤란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