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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북한

테러와 억지, 정치적 선전으로 얼룩진 남북 스포츠 '협력史'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땐 인공기 나부끼고,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땐 '김정일 플래카드' 둘러싸고 말썽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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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가운데 그동안 한국에서 열렸던 국제 스포츠 대회에 북한이 참가했던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선수단은 총 4차례 참가했는데, 이때마다 북한은 체제(體制) 선전장으로 활용해 왔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중요 스포츠 행사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우리 정부는 IOC를 통해 북한에 몇 차례 참가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한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비난한 채 양 대회에 불참했다. 오히려 북한은 테러를 자행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닷새 앞둔 9월 14일, 김포공항 테러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1987년 11월엔 서울 올림픽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KAL-858기 폭발테러를 자행, 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북경 아시안게임 땐 단일팀 구성 문제로 우리 정부 압박
 
1980년대 말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우리 정부는 북한에 스포츠를 매개로 한 화해의 손을 적극 내밀기 시작했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그해 1월 29일 남북체육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북경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구성을 북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합의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1990년 1월 25일 자 《경향신문》 사설의 일부다.
   
<북경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도 8차 본회담(29일)을 남겨 놓고 있지만 그동안의 경과로 보아 북측은 진심으로 단일팀을 구성할 생각이 없다는 징후를 여러 측면에서 드러냈다. 우리 측이 합의서 부칙으로 요구한 단일팀 구성 참가 이행 보장 7개항 중에 친선경기 교환 등 3개항을 철회했는데도 북측은 부칙의 전면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당시 남북체육회담은 11개월간 계속됐다. 그러나 북한의 무리한 요구로 단일팀 구성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11차 체육회담을 끝으로 단일팀 구성은 결렬되고 말았다.
 
1991년 남북 단일팀 결성과 北의 의도
   
이듬해인 1991년 2월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 및 청소년 축구대회’ 때 남북 단일팀 결성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그해 4월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리는 세계탁구대회와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청소년 축구대회를 앞두고 남북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단일팀 합의 직후인 1991년 2월 13일 자 《동아일보》의 사설 일부다.
    
<북한 측이 단일팀 구성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북한·일본 수교 협상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적 계산과 조총련 사기앙양, 유엔 문제(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의미-편집자註)와 통일문제에 관한 정책적인 배려를 지적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일팀의 단장은 하나이며 남북한 윤번제로 맡는다는 공식 확정이다… 북한 측이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나 그 공식은 단일의석에 교대 대표제를 제의하고 있는 북한의 유엔 가입 공식과 일치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정부 구성안과 같다.>
   
사설은 “체육 단일팀의 전례가 통일문제에까지 연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공연한 걱정일까”라고 끝맺었다.
   
인공기와 북한 국가가 연주되다
    
북한은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대회에 네 차례 선수단을 파견한다. 첫 번째가 김대중 정부 말인 2002년 개최된 부산 아시안게임이다. 2년 전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덕분에 북한은 별다른 저항 없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 배경엔 북한이 내건 조건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인공기를 공식적으로 게양하고 북한 국가를 연주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결국 북한의 인공기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게양되고 북한 국가도 정식 연주된 대회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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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기를 흔드는 북한 응원단.

     
당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된 것’을 두고 비판이 제기됐다. 또 한반도 모양이 그려진 ‘한반도기’가 등장해 "인공기와 한반도기가 난무하고 태극기는 찾아볼 수 없는 대회"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 북한은 선수단 외에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이른바 ‘미녀 응원단’을 파견, 한국 언론이 이를 집중조명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정일 플래카드’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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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플래카드를 떼는 북한 응원단.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북핵이란 긴장 요소를 안고 열린 대회였다. 대회 직전인 2002년 12월 북한이 핵시설 봉인과 핵시설 감시 카메라 제거를 포함한 NPT 탈퇴를 선언해 남북한 긴장관계가 고조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라, 이때도 북한은 별다른 저항 없이 대회 참가 의사를 표명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300명이 넘는 응원단을 보냈다. 문제의 발단은 응원단이었다. 2003년 8월 28일 경북 예천에서 응원을 마치고 돌아오던 응원단 일부가 김정일 사진이 실린 환영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 "장군님(김정일) 사진을 이런 곳에 걸어둘 수 있냐"고 항의하며 플래카드를 철거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이 체제 선전의 장으로 대회를 활용했다는 지적과 함께 수령 독재를 재확인한 대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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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 대회에 응원단으로 참가한 리설주(가운데). 사진=조선DB
선수단 20명과 124명의 응원단이 파견된 2005년 8월 열린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청년·학생협력단 소속으로 방문한 대회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안상수 당시 인천시장이 방북, "북한이 서해상에서 잡은 꽃게를 우리가 매입기로 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안상수 시장은 ▲2014년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 추진 ▲2005년 제16회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 북측 선수단 및 응원단 참가 ▲개풍공단 조성 및 강화-개풍 간 다리 건설 검토 ▲2006년 `동북아 축구대회' 북측 참가 검토 ▲평양 유경호텔의 남측 민사업단 운영 등을 북측과 합의했다고도 했다.
     
스포츠 대회를 ‘체제 선전장’으로 악용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한 것보다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이른바 북한의 실세 3인방이 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게 화제였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만큼 이들이 참석한 의도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북한 내 휴민트와 접촉하며 북한 뉴스를 공급하는 <데일리NK>(2014년 10월 6일 자)는 “북한이 지난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 고위급 대표단을 전격 파견한 것은 김정은의 위대성과 체제 결속을 위한 '선전용'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6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4일 오후에 모든 공장기업소, 노동자, 인민반에서 '김정은 원수님께서 체육선수들과 일꾼들에게 돌려주신 믿음과 배려'라는 제목의 긴급 군중 강연이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긴급 강연회에서는 "적후(한국)에서 불굴의 투지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조국의 명예를 떨친 우리 선수들을 위해 당과 군의 책임 간부들을 현지에까지 파견하였다"면서 "이들(황병서·최룡해·김양건)을 현지에 파견하는 사업을 몸소 조직하고 특별 비행기까지 동원시킨 김정은 원수님의 사랑과 배려로 일관되었다"고 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고위급 대표단에 특별 전용기까지 내준 것에 대해 "선수단 파견에서부터 대회 끝날 때까지 관심을 갖고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남북 간 스포츠 '협력사(史)'를 종합분석하면, 북한은 한국에서 열린 각종 스포츠대회를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회 참가를 둘러싸고 남한과 줄다리기를 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우리를 '요리'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1.06

조회 : 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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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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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8-02-08)   

    대한민국의 걸그룹들과 비교해볼때 230여명의 북한미녀응원단들의 외모수준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에서 1980년대수준인거 인정한다!!!!!

  • 박혜연 (2018-01-15)   

    정치선동이라도 좋고 정치선전이라도 좋으니까 우선 현송월이 오는지 안오는지 보시랑께용!!! ㅋㅋㅋㅋㅋ 모란봉악단이야 말을 안해도 우리나라 걸그룹 여가수들에 비한다면 아줌마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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