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거대 박물관들은 대체로 제국의 기억 위에 서 있다.

루브르박물관, 영국박물관 등 해외 박물관의 전시실을 채운 다수의 유물은 식민지와 원정지에서 건너왔다. 전쟁과 지배, 약탈과 반출의 역사가 박물관의 규모를 키웠다. 바티칸 박물관 역시 전쟁과 교회 권력에 의해 모인 유물이라는 역사성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다르다. 해외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도, 제국의 빛나는 전리품도 없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채운 유물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전해 내려온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럼에도 연간 관람객 600만 명을 넘기며 세계 4위권에 올라섰다. ‘가져온 유물’이 아니라 ‘지켜온 유물’만으로 세계적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욱 이례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5년 12월 11일, 연간 관람객 600만 명을 돌파했다. 10월 중순 500만 명을 넘어선 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기록을 다시 끌어올렸다. 1945년 개관 이후 80년간 누적 관람객은 약 1억84만 명. 용산 이전 개관 첫해였던 2005년(약 133만 명)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관람객 규모가 약 4.5배로 커졌다. 숫자는 이제 국내 최대를 넘어, 국제적 위상을 설명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국제 비교에서도 이 변화는 선명하다. 아트 뉴스페이퍼(The Art Newspaper)가 집계한 2024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통계에서 루브르(약 873만 명), 바티칸박물관(약 682만 명), 영국박물관(약 647만 명)이 상위를 차지했다. 2025년 실적을 기준으로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600만 명을 넘기며 세계 4위권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국의 수집품 없이 이 순위에 오른 사례는 드물다.

‘우리 것’으로 만든 성장

국립중앙박물관의 확장은 구조적이다. 상설전 무료 관람을 유지하면서도 국제 기획전, 어린이박물관, 야간 개장과 공연형 프로그램을 결합해 관람층을 넓혀 왔다. 그 결과 가족 단위와 교육 수요가 꾸준히 유입됐고, 재방문 비중도 높아졌다. 600만 번째 관람객이 자녀와 함께 처음 방문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은, 이 박물관이 관광 명소를 넘어 일상적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국내 다른 국립관들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과천·청주 합산)은 연 300만 명대, 국립경주박물관은 200만 명 안팎을 기록한다. 관람객 수만 놓고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미 독주 체제를 굳혔다.

시선은 2026년으로 향한다. 관측은 두 갈래다. 2025년의 급증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520만~560만 명으로 다소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 반면, 대형 국제 특별전과 외국인 관광 회복이 맞물릴 경우 580만~620만 명 수준을 유지하거나 다시 넘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느 쪽이든 세계 4위권은 안정적으로 지킬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요 박물관들은 루브르 900만 명 전후, 바티칸박물관 700만 명 내외, 영국박물관 650만~680만 명 수준이 예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600만 명 안팎을 이어 간다면, ‘아시아 대표 국립박물관’이라는 위상은 한층 공고해진다.

숫자 너머의 과제

다만 이 성취는 질문을 동반한다. 전체 소장품 약 44만 점 가운데 보존 처리가 필요한 유물의 비중, 급증한 관람객을 감당할 보존·수장 인력, 수익을 현장에 재투입하기 어려운 재정 구조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기록을 지속 가능한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유물을 더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유물을 더 오래 지키는 체계가 필요하다.

식민지의 유물 없이, 오로지 우리 유물만으로 세계 4위에 올라선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600만은 단순한 관람객 수가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2026년은 그 가능성이 일회성 기록이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표준의 출발점이었는지를 가늠하는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