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문화

[남북頂上회담 幕後]국가정보원과 통일전선부는 왜 손을 잡았나!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남북頂上회담 幕後] 국가정보원과 통일전선부는 왜 손을 잡았나! 
  
金正日『6者회담 기대 말라』교시
통전부「大選 공작」차원 접근  
   
 『大選 전까지 대형 경협 프로젝트 발표,「앞으로 퍼주기」 계속된다』(對北사업 전문가)
통전부는 햇볕정책 逆이용해 경제실익 챙기는 對南사업 총괄기구, 「대화를 앞세운 경제이익 창출」로 對南전략 변경. 이번 頂上회담을 金正日이 제안한 「평양發 頂上회담」으로 보는 시각 많아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eaglebsk@chosun.com〉 
  
 「뒷구멍」, 「개구멍」 대신 정보기관 작동
  
  예상대로 12월 大選(대선)을 앞두고 남북頂上(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金萬福(김만복) 국정원장은 두 차례의 비밀訪北(방북) 끝에 지난 8월5일 김양건 북한 통전부장을 만나 頂上회담 개최 합의문에 사인했다.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두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협상의 주체가 됐다.
  
  지금까지 청와대와 권력의 핵심들이 추진했던 남북頂上회담은 秘線(비선) 혹은 非공식라인을 통해 추진됐다. 그 때문에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청와대가 「뒷구멍」, 「개구멍」만 파고 있다』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頂上회담을 추진했던 盧武鉉 대통령의 최측근 安熙正(안희정)씨의 북한 측 카운터파트는 조선 亞太(아태)평화위원회였다. 지난 3월 평양을 방문했던 李海瓚(이해찬) 前 총리를


徐薰 국정원 3차장(左),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右) 

맞은 것은 최승철 아태委 부위원장이었다. 북한의 對南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약칭 통전부)」 부부장이기도 한 최승철은 당시 통전부의 유령단체인 아태委 부위원장 명함을 들고 나타났다.
 
  최근까지 頂上회담에 「군불」을 지핀 李光宰(이광재)·李華泳(이화영) 열린당 의원 역시 非공식라인을 통해 북한측과 접촉했다. 이 때문에 『북한 통일전선부의 기능이 크게 약화됐고, 金正日의 수표(결재)를 직접 받기 어려울 정도로 견제를 받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결국 頂上회담을 만들어 낸 것은 남한의 정보기관인 국정원과 북한의 對南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였다. 「私設(사설) 라인」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힘을 쓰지 못했던 국정원과 통전부가 어떻게 남북 頂上회담 추진 협상의 주역이 됐을까?
 
  통전부가 북한 측 카운터파트로 등장한 사실은 앞으로 남북頂上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복수의 우리 측 정보기관 관계자와 對北소식통을 취재한 결과, 이번 남북頂上회담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킨 주역은 徐薰(서훈) 국정원 3차장과 최승철 북한 통전부 부부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萬福 국정원장과 김양건 통전부장은 頂上회담 성사를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했다.
 
 
  徐薰, 7월6일 최승철에게 「정보기관장 만남을 주선하자」 메시지 전달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徐薰 차장이 북한의 최승철에게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통전부장의 만남을 주선해 보자」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지난 7월6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의 설명이다.
 
  『徐薰 차장은 양 정보기관 수장의 만남을 제의하는 동시에 「이 루트로 頂上회담을 추진하자」는 말을 건넸습니다. 북측은 「頂上회담을 논의하자」는 제안에 가타부타 명시적인 언질을 주지 않았습니다. 徐차장은 7월 중순 다시 한번 북측에 같은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분명 「정보기관장 실무접촉」이 아니라 「頂上회담을 협의하자」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다 7월29일 느닷없이 통전부의 최승철이 徐薰 차장에게 「金萬福 원장이 평양으로 오라」고 답을 주었습니다. 국정원이 「頂上회담 협의」 카드를 던졌지만, 결정은 평양이 했던 겁니다』
 
  徐薰 차장은 평양의 반응에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국정원장-통전부장 미팅을 열어 頂上회담을 논의하자」는 카드를 북측에 던졌지만, 북한이 이렇게 빨리 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번 頂上회담을 「평양發 頂上회담」으로 보는 對北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金正日은 왜 徐薰이 던진 「頂上회담 협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徐薰 차장이 現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頂上회담」 카드를 밀어붙인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徐薰 차장은 2006년 11월 국정원 3차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야당 쪽에서는 「頂上회담 정지작업용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徐차장은 2000년 頂上회담 직전 金正日을 처음 만난 이후 최근까지 수차례 공식·非공식으로 金正日을 만났다. 金正日은 2005년 6월 평양을 방문한 徐차장의 손을 꼭 잡으며 상당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徐차장은 국정원 3차장으로 승진한 후 남북頂上회담 개최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한이 유지해 왔던 공식 혹은 非공식 「핫라인」이 모두 끊긴 것이다. 秘線라인이 기승을 부렸고, 秘線 혹은 非공식라인을 타고 李海瓚·金爀珪(김혁규) 등 열린당 의원들이 잇달아 訪北하자, 국정원의 對北 주도권이 취약해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런 난맥은 곤란하다. 對北접촉 라인을 정리해야 한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徐薰 차장은 지난 4월17일 鄭亨根(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에게 『평양을 방문해 최승철을 만나겠느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鄭亨根 의원은 이를 거절했다. 한 對北소식통은 『국정원의 對北 주도권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해, 徐차장이 야당 의원의 訪北을 성사시켜 여권 인사들의 對北 러시의 의미를 축소하고, 제동을 가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盧武鉉, 6월 徐薰 차장에 협상추진 지시
   
  徐차장은 現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頂上회담」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徐薰 차장의 청와대 쪽 카운터파트는 盧武鉉 대통령의 최측근인 李鎬喆(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다고 한다.
 
  徐차장은 지난 6월 李鎬喆 실장을 통해 盧대통령에게 남북頂上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다시 보고했고, 盧대통령은 협상추진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소식통의 말이다. 그는 徐薰 차장과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을 모두 직간접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다.
 
  『徐차장이 7월 초에 제안한 「국정원장·통전부장」의 미팅 아이디어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徐차장이 李海瓚 前 총리 등 현 정부 실세들이 만들어 놓은 사설 라인을 제치고 頂上회담 개최와 관련한 업무를 주도하게 된 거죠. 盧대통령이 평소 非공식라인 가동에 펄쩍 뛰면서, 공식라인을 강조한 것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소식통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번 頂上회담은 徐薰 국정원 3차장이 북한 통전부의 최승철 부부장을 거쳐 金正日에게 頂上회담을 제안해 성사됐다. 「국정원→金正日 측근→金正日→통전부 실행지시→국정원→청와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盧武鉉 대통령이 『頂上회담은 공식라인을 통해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해 온대로 頂上회담은 공식라인으로 결정됐다.
 
  徐薰 차장은 남북협상 자리에서 여러차례 최승철을 만났으나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는 않았다. 최승철이 대화상대로 급이 낮았기 때문이다. 최승철이 올해 초 북한 통전부의 부부장으로 승진하자, 徐차장이 자주 접촉해 왔다고 한다.
 
 
  『金正日, 올 겨울 식량 걱정할 정도』
 
  金萬福 원장은 지난 8월8일 남북頂上회담 개최 사실을 공개하면서 『1차 訪北(8월2~3일)시 김양건 통전부장은 金正日 위원장의 「중대제안 형식」으로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 상봉을 개최하자」고 제의해 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측이 국정원의 제안을 「중대제안 형식」으로 전격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 정치권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盧武鉉 정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金正日이 盧대통령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중국을 거점으로 북한과 여러 형태의 거래를 하고 있는 한 관계자에게 頂上회담에 응한 북측 사정을 물어봤다. 그의 말이다.
 
  『金正日이 얼마 전 함경도 일대를 시찰했습니다. 남한에서는 「건강이상說(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건강과시用」이라고 평가했지만 사실과 달라요. 金正日은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위험지역 단속에 나섰던 겁니다. 최근 평양 내부에서는 「간부사업」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간부사업이란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말해요. 나이 많은 인사들을 퇴진시키고 신진세력을 등용하고 있습니다. 金正日 입장에서는 내부단속과 세력교체가 중요한 현안문제로 떠올랐던 겁니다.
 
  북측이 頂上회담을 받아들인 또 다른 배경에는 식량난이 있습니다. 아주 심각해요.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서울에서 쌀이 올라오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죠. 金正日은 올 겨울을 지낼 식량을 걱정했어요. 또한 올해 12월 大選을 북측에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남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을 가졌습니다』
 
  ―정부는 「頂上회담의 代價(대가)는 없다」고 발표했는데, 그렇다면 金正日이 「현찰」을 챙기지 않고 頂上회담을 받아들인 이유는 뭡니까.
 
  『頂上회담은 철저히 정치적인 게임입니다. 양측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대목이 있었어요. 金正日은 북한 내부사정上 頂上회담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울러 盧대통령은 「頂上회담을 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칠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現 정부는 2000년의 金大中처럼 돈을 만들 여건이 못 됩니다. 특검을 수용해 金大中 대통령 측근들을 감옥에 보낸 盧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검은돈」을 만들려고 하겠습니까. 임기가 넉 달밖에 안 남았는데. 게다가 盧대통령은 그 점에서 자기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는 입장입니다. 평양도 그걸 잘 압니다. 문제는 盧대통령이 「내가 합의하면 다음 정권에서도 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은 정말 위험합니다. 현재까지 頂上회담의 代價는 합의되지 않았겠지만, 頂上회담의 결과물로 거대한 經協(경협) 프로젝트가 있을 것 같아요』
   
  
  『冷戰의 틀로 복귀했다』
 
  ―이른바 「개구멍」, 「뒷구멍」이 많았는데, 국정원-통전부 라인이 頂上회담을 성사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냉전시대의 「룰」로 돌아간 셈입니다. 朴正熙 시대의 李厚洛(이후락) 中情부장이 평양에 다녀온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남북한의 두 정보기관은 협력자이면서도 분명히 對蹠點(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모양이 우습지 않아요? 정보기관은 배후에서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집단이지 전면에 나서면 안 됩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지난 7월6일(徐薰 차장이 최승철에게 정보기관 책임자 미팅 제의)과 7월29일(최승철이 徐차장에게 金萬福 원장을 평양으로 오게 하라는 뜻을 전달)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金正日이 보위부나 내부 통제기관에 중요한 「교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가 전한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6者회담의 결과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하지 말아라. 사회주의 우수성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투쟁이 필요하다. 외부적 도움보다 자력갱생을 목표로 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金正日은 내부단속을 철저히 하면서 「우리 식대로 가자」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 평양에는 「미국을 믿지 말고 우리식으로 가자」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남측의 頂上회담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徐薰 차장은 이번에 남북頂上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對北문제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3차장 승진 당시 야당이 제기했던 「頂上회담 정지작업用 인사」라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서울大 사범대 출신인 그는 1980년 국정원에 입사했다. 金萬福 원장의 6년 후배이다. 2000년 남북頂上회담 당시 실무자(국정원 과장)로 일했던 徐薰 차장은 金正日로부터 각별한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 徐차장은 「청와대 국장」이라는 위장감투를 쓰고 남북頂上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당시 金大中 대통령의 對北특사였던 朴智元(박지원) 前 장관을 수행해 싱가포르, 중국의 上海(상해)·北京(북경) 등지에서 宋浩景(송호경) 북한 아태평화委 부위원장을 비밀리에 만나 頂上회담을 준비했다.
 
  徐薰 차장은 국정원의 對北전문가 라인 「최준택 - 김보현 - 서영교」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다. 2000년 남북頂上회담의 국정원 실무라인이었던 「김보현 - 서영교 - 서훈(KSS 라인)」은 「국보급 對北라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徐차장은 頂上회담 이후 남북회담조정관(이사관) 자리로 옮겨 갔다. 盧武鉉 정권의 국정원장·통일부 장관을 여럿 보좌하면서 對北전문가 자리를 확고히 했다.
 
 
  徐薰은 누구?
   
  徐薰 차장은 2004년 2월 金萬福 원장이 NSC 정보관리실장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승진·복귀하자, 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12월 그는 對北전략실장으로 국정원에 복귀한 후, 2006년 11월 국정원 對北부서 최고 자리인 3차장에 발탁됐다.
 
  그는 2000년 6·15 頂上회담 직전 국정원 과장 신분으로 두 차례 비밀訪北했다. 2000년 5월27일 林東源(임동원) 당시 국정원장, 金保鉉(김보현) 對北전략국장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갔다. 남측 일행은 金容淳(김용순) 對南담당사업 비서를 만나 頂上회담 의제와 공동선언문 채택 문제를 협의했다. 徐차장은 그해 6월3일 林東源 원장 등과 함께 다시 訪北, 金正日을 만났다.
 
  徐薰 차장은 2005년 6월 訪北한 鄭東泳 당시 통일부 장관과 함께 金正日을 만났다.
 
 
  최승철, 金正日에게서 공작자금받는 측근
 
  鄭東泳 前 장관이 金正日과 전격 회동할 때 徐薰 차장은 鄭 前 장관의 왼쪽 자리에 앉아 金正日을 대면했다. 북한 TV는 金正日이 徐薰 차장과 악수를 하며 각별함을 표시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徐薰 차장은 金大中·盧武鉉 정부에 걸쳐 頂上회담을 두 차례 성사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徐薰 차장의 對北사업 파트너인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은 金正日로부터 직접 공작자금을 받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노동당 국제부장 출신인 김양건이 통전부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최승철 부부장이 사실상 통전부의 최고 실세인 셈이다.
 
  1956년 북한 함경남도의 한 평범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최승철은 軍복무 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노동당 비서국 통일전선부 지도원을 시작으로, 1993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 2000년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상무위원을 지냈다.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이 됐고, 올해 통전부 부부장에 올랐다.
 
  그는 2000년 6·15 남북頂上회담 이후 남북행사에 꾸준히 관여해 온 對南사업 전문가이다. 최승철 부부장은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단장을 맡은 이후 남북장관급회담 참석차 서울을 두 차례(2001년 9월, 2002년 8월) 방문했다.
 

 
  최승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문제 발생한다』
 
  2005년 玄貞恩(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訪北해 金正日을 면담했을 때도 배석했다. 그는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6·15 행사에 참석해 李鍾奭 당시 통일부 장관과 밀담을 나눴다.
 
  최승철 부부장은 조선 아태평화委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김용순 對南비서, 임동옥 통전부장이 사망한 후 對南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지난 3~5월 평양을 다녀온 李海瓚 前 총리, 孫鶴圭(손학규) 前 경기지사, 金爀珪 의원 등을 단독으로 만나 남북관계를 논의했다.
 
  최승철은 남측 인사와 「코가 비뚤어지게」 폭탄주를 마실 정도로 남한 문화에 익숙하다. 그는 지난 5월 평양에 갔던 孫 前 지사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孫 前 지사를) 알고 싶었고, 얼굴을 익히기 위해 초청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金爀珪 의원 일행이 訪北했을 때 그는 金의원과 두 차례의 단독면담을 가졌다. 그는 金의원이 쓴 책까지 읽고 나올 정도로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한다.
 
  최승철은 지난 3월 평양을 방문한 李海瓚 前 총리에게는 「특별한 잔치」까지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승철은 남한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12월 大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그를 만났던 한 정치인은 『최승철 부위원장은 우리 일행에게 北核문제·BDA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상세히 밝혔는데, 지식에 깊이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승철은 남한 정치인에게 『올해 大選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적잖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한의 정권교체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고 한다.
   
  
  『최승철은 對南정치공작 전문가』
 
  북한 내부 상황을 관찰해 온 한 정보기관 관계자와 북한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인사는 최승철을 「요주의 인물」로 꼽았다. 최승철이 아태평화委 부위원장으로 남측에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명백하게 對南공작부서인 통전부의 최고위 간부라는 사실 때문이다.
 
  북한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통전부는 경제를 관장하는 부서가 아닙니다. 최승철은 對南사업을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뒤에는 金正日의 호위세력이 있어요. 최승철은 「정치꾼」입니다. 對南사업과 정치공작을 전문으로 해왔어요. 남한 언론이 「金正日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표현하며 다소 우호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를 조심해야 해요. 그는 남한의 大選을 북측에 이용하기 위해 頂上회담을 「지렛대」로 쓸 겁니다』
 
  최승철은 올해 초 통전부의 실세로 등극했지만, 작년 한때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를 떠받치던 아태평화委의 내부조직이 무너졌던 것이다. 亞太에 대한 권력층 내부의 견제 또한 심했다. 최승철 개인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졌다.
 
  최승철은 수세 국면을 이겨 낼 돌파구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런 와중에 찾아낸 탈출구가 「남한 大選」이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최승철은 「남한의 2007년 大選을 이용하겠다」고 金正日 측근 그룹에게 보고합니다. 이 과정에서 金正日은 최승철을 다시 신임하게 되죠. 물론 아태평화委에 최승철만큼 일을 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최승철의 「남측 大選개입」 전략에 따라, 李海瓚·孫鶴圭·金爀珪씨의 訪北이 이뤄졌습니다. 남측 정치인들도 나름대로의 목적에 따라 평양을 다녀왔지만, 그들의 訪北을 받아들인 최승철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최승철 부부장을 만난 남측 인사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對北사업을 하는 남한 기업인들도 다수 있다. 그를 직접 만난 한 중견기업의 회장은 『최승철씨는 술을 잘 하고, 얼굴이 북한 사람답지 않게 잘생겼다. 몇 차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최승철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對北관계자들은 「최승철이 통전부 소속」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통전부의 햇볕정책 逆이용 전략
 
  그렇다면 북한 통전부는 어떤 조직일까.
 
  지난 6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발간한 「북한조사연구」에 「특별보고서」가 실렸다. 북한 통전부 간부로 활동하다가 한국에 들어와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脫北者 출신 장철현씨가 쓴 글이었다.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 해부」라는 보고서는 통일전선사업부의 조직실체와 위장명칭들, 조직운영 방식, 전략 및 전술방향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베일에 싸여 있던 통전부의 실체를 자세히 공개한 최초 보고서이다.
 
  장철현 연구원은 『통전부는 정치·경제·안보·민간교류 등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부서로, 침투와 파괴보다 대화를 앞세운 경제이익 창출·정보수입·교란 등 유연한 접근이 통전부의 對南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통전부는 이 전략을 「햇볕정책 逆이용 전략」으로 부른다고 한다.
 
  장철현 연구원과의 인터뷰는 신분상의 제약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보고서를 문답형식으로 정리했다.
 
  ―통전부의 규모는 얼마인가.
 
  『1998년경 1500명 규모에서 3000명으로 확대됐다. 남북한 민간교류에서 남한은 민간인들이 주축이지만, 북한은 통전부 구성원이 민간인으로 위장해 활동한다』
 
  ―언제 만들어졌나.
 
  『1970년 金日成이 내놓은 고려민주연방제에 의해 신설됐다. 對南조직은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군부(인민무력부)가 중심이었다. 1970년 이후 金正日이 당조직 비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권력이 당조직부로 집중됐다. 이때부터 노동당의 對南부서는 세분화됐다. 「대외조사부」(現 35호실)·「사회문화부」(現 대외연락부)·「작전부」·「통일전선사업부」로 나뉘었다. 통전부는 對南선전 및 심리전, 남북협상을 수행해 왔다』
 
  ―북한의 對南전략은 어떻게 변해 왔는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무력통일이 본질이었다. 197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핵심이었다. 한국의 군사정권을 민주세력으로 교체하고, 그 정권과 연합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전략에 따라 통전부는 민주주의 운동을 폭력혁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고려연방제 찬양 선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했다.
 
  1998년 남한에 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략이 바뀌었다. 바로 「햇볕정책 逆이용 전략」이다. 金正日은 1998년 통전부에 「햇볕정책을 逆이용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2000년 6·15 頂上회담 이후 민족공조를 부각시키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끼리」 전략이란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고 정세가 성숙될 때까지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햇볕정책을 逆이용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햇볕정책 逆이용 전략」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 가지이다. 남북관계를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시키고,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으로 남한內 북한지지 세력을 확대하고, 남북화해를 전략화해 미군을 축출함으로써 적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햇볕정책 逆이용 전략」이 등장한 이후 통전부의 기능은 어떻게 변했나.
 
  『對南정책에 관해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기능을 갖게 됐다. 대외적으로 통일외교기관으로 탈바꿈했다. 對南전략이 대화를 앞세운 경제이익 창출, 인물 포섭, 정보 수집 등 유연정책으로 바뀌면서 통전부의 기능은 강화됐다』
 
 
  조평통은 통전부의 위장 명칭
   
  보고서에 따르면, 통전부는 합법적인 통일외교기관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각 科(과)마다 위장조직을 가지고 있다. 평양市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있는 통전부 청사의 귀빈실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라는 간판이 있다. 통전부의 위장 명칭이다. 조평통 명의의 성명이나 담화문은 내용에 따라 「조국평화통일 서기국」의 해당 科에서 만든다고 한다.
 
  남북관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약칭 亞太평화委)는 건물도 구성원도 없는 통전부 산하 유령조직이다. 조평통이 통전부의 위장 명칭이라면, 亞太는 「통전부 정책과」의 假名(가명)이다.
 
  「통전부 정책과」는 남북 경제교류나 모든 회담의 유무를 감안해 亞太의 사업범위와 내용을 북한에 유리하도록 조절한다. 亞太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나 동조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남북관계·국제우호관계를 강조한다. 亞太는 북한 고위층 인물들을 명예직으로 포함시킨 非상설기구이다.
 
  장철현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통전부 유령조직인 亞太와 남북관계의 중요한 合意를 하는 게 문제다. 북한이 개성공단이나 기타 다른 남북관계에서 「군부 강경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亞太」의 非정부성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남한 정부와 亞太의 관계」로 구속시키려 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전략적 의도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남북기구를 주장해야 한다』
 
  ―金大中 정부 이후 통전부는 어떤 일을 해왔나.
 
  『통전부는 NLL(북방한계선)을 새로운 카드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金正日은 1999년 초 통전부에 교전지역을 바다로 옮기는 전술(예: 서해교전)을 지시했다. NLL은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면서 남한內 체제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선으로 부상했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도 주도했다. 「우리 민족끼리」 전략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남한內 좌익세력 확산, 親北정서 주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 밖에 민간교류를 역이용했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다. 개성공단을 準(준)군사화·정치화의 요새로 이용하기도 했다』
 
 
  對敵하는 통전부
 
  ―대표적인 전술은 무엇인가.
 
  『통전부는 실리를 챙길 때는 亞太나 민화협, 민경협을 내세우고, 압박·중단이 필요할 때는 軍강경론을 제기한다. 얼마 전 북한이 남북열차 시험운행과 관련해 「군부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이 예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열차 시험운행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열차 시험운행 쇼를 통해 이익을 챙겼다. 남한 정부로부터 비료를 추가로 받아 냈고, 경공업품 원자재 제공합의를 이끌어 냈다. 통전부는 軍을 전술적으로 이용할 만큼 사업 범위와 권한이 막강해졌다』
 
 
  『쌀과 비료로 北 요리할 수 있다』
 
  ―통전부 구성원이 남측과 협상할 때 사용하는 협상전략은 무엇인가.
 
  『남북협상에서 남측은 대화를 하지만, 통전부는 對敵(대적)한다. 「적과 싸운다」는 의지와 결심으로 협상에 임한다. 「가진 자의 여유와 못 가진 자의 조급성」이 아니라 통전부의 이념적·제도적 원칙인 것이다. 통전부가 협상과정에 돌출 제안을 내놓으며 시비를 따지는 것은 준비된 제안인 경우도 있고, 협상자가 金正日에게 보여 주기 위한 충성 과시용일 때도 있다』
 
  ―남북은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남쪽에서 비료를 주지 않으면 북한은 농사를 못 짓는다. 북한이 독재체제가 갖는 조직력이 장점이라면, 우리의 최대 장점은 돈이다. 햇볕정책의 장점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선진화의 장점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료와 쌀을 잘 이용하면 협상력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은 亞太를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NLL와 같은 불필요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남한은 쌀과 비료로 북한을 요리할 수 있다』
 
  북한은 두 차례의 頂上회담 과정에서 통전부 핵심인물을 내세웠다. 2000년 頂上회담 때 통전부 소속 宋浩景(송호경) 亞太 부위원장이, 이번에는 최승철 부부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통전부 간부 출신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의 보고서처럼, 對南공작기관인 통전부가 頂上회담의 북측 파트너라는 점에서 이번 頂上회담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된다.
 
  2006년 10월 북한 核실험 이후 남북대화 통로가 꽉 막혀 있을 무렵, 盧武鉉 정부의 「對北통로」 역할을 했던 南北경협 전문가 權五鴻(권오홍)씨는 『남북 당국자들이 頂上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버렸다면 지난 3월 頂上회담이 열렸을 것』이라며 『이번 頂上회담은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 頂上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년부터 지난 3월까지 頂上회담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망록을 최근 책으로 출간했다. 남북한이 頂上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비밀자료를 책을 통해 공개했다. 그에게 頂上회담 추진 배경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南北경협 전문가 권오홍씨. 
 
『정치판으로 흐를까 걱정이 앞서요』
   
  ―남북頂上회담이 결국 성사됐습니다.
 
  『정치판으로 흐를까 걱정이 앞서요. 미국의 한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급한 한국이 사고를 쳤다」고 말입니다. 이번 頂上회담은 복합적인 목적을 가졌다는 걸 부인할 수 없어요. 大選만 놓고 보면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할 수 있어요. 이른바 진보세력에게 頂上회담이 과연 이로울 것인가 하는 점이고, 정권이 교체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가 무조건 경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죠』
 
  ―여권 大選주자들 가운데 頂上회담 성사를 자신의 공로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我田引水(아전인수)격이죠. 李海瓚 前 총리가 평양을 다녀온 후 이뤄진 게 뭐가 있습니까. 이광재·이화영 의원 같은 사람들이 지난 3~7월 사이에 중국, 북한을 왔다갔다 하면서 「물밑 작업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데, 미약했어요. 그들은 「큰 건」의 경협 사안들을 줄줄이 읊조리는데 현 시점에서 무용지물입니다』
 
  權五鴻씨는 『金萬福 원장과 김양건 통전부장이 체결한 합의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음은 頂上회담 개최 합의문이다.
 
  <남북 정상의 상봉은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관계에로 확대발전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權씨는 합의문에 대해 『이번 頂上회담이 「정치회담」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합의문이다.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의례적 修辭(수사)라고 치더라도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관계로 확대발전시킨다」, 「평화와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 등은 분명 정치적이다』고 분석했다.
 
  ―의제를 정하지 않고 頂上회담에 합의한 것을 어떻게 봅니까.
 
  『참여정부의 한계라고 봅니다. 盧대통령은 「회담의 정례화를 목표로 한다」는 점을 밝힌 적이 있어요. 이 개념은 제가 작년 10월30일 대통령께 보내 드린 보고서에서 잘 나타나 있죠. 비망록을 정리해 출간한 「나는 통일정치쇼의 들러리였다」에 보고서 전문을 그대로 실었어요.
 
  「頂上회담의 정례화·非형식화라」는 주제는 남북관계에서는 필수입니다. 한 번 만나서는 남북문제가 해결 안 된다는 뜻이죠. 6·15 이후 지금까지 장관급회담 21회, 경협추진위원회 회의 13회, 장성급회담 5회를 했어요. 주고받은 전통문까지 포함하면 수도 없이 연락을 했을 겁니다. 그 결과가 이것뿐이라면 문제가 있는 거죠』
 
 
  頂上회담의 정례화·非형식화하라
  

  ―頂上회담에서 국제문제, 남북한 정치군사문제, 남북경협, 기타 이산가족 등을 다룰 것으로 예상됩니다.
 
  『頂上회담의 결과가 좋게 나올 것 같지 않아요. 北核을 해결하자고 모인 6者회담에 대해 참여정부는 「잘되게 지원한다」는 입장입니다. 남북한 두 頂上이 할 수 있는 일은 「한반도 非核化를 천명」하는 수준에 그칠 겁니다.
 
  남북한 경의선 철도문제를 봅시다. 지난 5월 시범개통에서 남측은 분단 이후 최초의 열차 개통을 운운했지만, 북측 입장에서는 「쌀 싣고 올 열차」에 불과했어요. 쌀을 싣고 오는 열차가 아닌 것은 통항의 의미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또 한 가지, 민감한 주제가 바로 북방한계선(NLL)입니다. 만일 이 지역을 「평화의 바다」로 한다면 그 반발은 우리 내부뿐 아니라 미국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남북경협은 더 심각합니다. 우리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강조하지만, 북측에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어요. 생각보다 돈이 안 되거든요. 다른 경협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공업품 對 광산개발이라는 주제가 그렇습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데 진행과정에서 삐걱댈 요소가 다분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 頂上회담은 좋은 결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나중에 비판받을 소지가 큽니다. 북측은 남측에서 뭔가를, 그것도 많이 받아 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어요. 두 頂上이 각론과 실행방안을 토의하고 찾아야 합니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다시 만나서라도 하고, 내년에 들어설 차기 정권이 새로운 각론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頂上회담을 정례화할 경우 악용될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 頂上회담 이후 12월 大選을 앞두고 金正日이 제주도에 답방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가능한 얘기입니다. 북측의 남측 大選 개입 의지가 꺾인 적이 없었죠. 사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정치적 화장질」입니다. 북한을 변하게 하려면 「보따리」가 필요해요. 그냥 퍼주지 말고 북한을 조금씩 변화하게 만들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巨額 들어가는 경협방안 大選 때까지 계속 나올 것』
  
지난 8월10일 함경남도 함흥시 룡성기계련합기업소 시찰에 나선 金正日. 그는 통제력이 약화된 지역을 중심으로 내부단속에 들어갔다.
  ―이번 頂上회담의 의미를 찾는다면.
 
  『단순하게 보자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내내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관계가 한 번 정리된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측 大選의 정치적 활용물이 된다면 그건 심각하죠. 實事求是(실사구시)의 회담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남북頂上회담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두 정권에 돌아갈 겁니다』
 
  權五鴻씨는 작년 연말 盧武鉉 대통령의 측근 安熙正씨와 남북頂上회담을 추진하면서 청와대에 「100大 남북경협 프로젝트」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협의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측이 필요로 하면서 남북한 양측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진 경협 프로젝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기 경협 프로젝트가 아닌 단·중기형 경협 아이템」이었다.
 
  정치권과 對北전문가들 사이에는 『남북頂上회담 이후 巨額(거액)이 들어가는 경협 방안이 연말 大選 때까지 계속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하게 돌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정부는 7大 新(신)동력사업(에너지 협력·철도 현대화·백두산 관광·남포항 현대화·북한 산림녹화·남북 공동 영농단지 개발·남북 공유하천 이용), 한반도 경제구상, 백두산·묘향산·구월산 관광사업, 200억~300억 달러 규모의 동북아개발은행 프로젝트 등을 내놓았다.
 
 
  경제성 바탕 안되면 어떤 경협도 진전없어
 
  북측과 개발사업을 추진해 왔던 한 중견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과 사업을 하려고 해도 통전부 조직인 亞太 쪽 사람과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사업이 제대로 진척이 안 됐습니다. 남북 頂上이 만나 경협문제를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경제성이 없는 대규모 개발은 무조건 실패합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남북한 경제협력은 「남북경협의 기초 인프라」를 구축한 후에 하나씩 풀어 나가야 성공합니다』●  (월간조선 2007년 9월호)
 

입력 : 2007.09.20

조회 : 403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성동의 人’

ksdhan@chosun.com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