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안보 견학 차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다녀왔다. 최근 방한(訪韓)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곳을 전격 방문하려다 기상 악화로 무산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 11월 13일 북한군 JSA 소속 하사급 군인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하면서 또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북한군 귀순 과정에서 북측 경비병들이 쏜 총탄이 남쪽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우리 군의 응사(應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동서(東西) 800미터, 남북(南北) 400미터 규모의 타원형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이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쌍방이 군사분계선상에 공동경비구역을 설정하면서 생겨났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과 북한 개성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속한다. 구역 내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있다.
    
판문점은 6·25전쟁 전에는 널문[板門]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는데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외딴 마을이었다. 1951∼53년 이 일대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공동경비구역은 주로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로 이용됐으나 1971년 9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소뿐만 아니라 남북 간 접촉 장소, 남북을 왕래하는 통과지점으로 활용돼 왔다.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사건 발생 전까지는 양측 군인들은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오갔다. 남쪽 구역에 북한 초소 4개가 있었고, 북쪽에도 유엔사령부 초소가 있었다. 그러나 도끼만행사건 이후 양측 간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표시, 경비병을 포함한 양측 군인들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양측 군인의 사적(私的) 대화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
      

  
공동경비구역을 둔 목적은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위기를 완화하는 것이다. 유엔사령부 산하 군사정전위원회가 구역을 총괄 관리한다. 남쪽 지역의 경비는 유엔사 경비대대가 맡고 있었는데 2004년 한국군 JSA 경비대대가 창설되면서 업무가 이양됐다. 하지만 구역 내 무력 사용 권한은 여전히 유엔사령부에 있다.
           
이곳에는 일반 교전(交戰) 규칙이 아닌 유엔사 교전 규칙이 적용된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만들어진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르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경우 첫째, 적발 즉시 경고와 함께 신원확인을 하고, 둘째 이에 불응하거나 도주하면 사격을 할 수 있으며, 셋째 적의 선제공격을 받을 경우 야전지휘관의 자체 판단에 따라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 아울러 확전 방지를 위해 공동경비구역 내 양측 군인은 권총만 휴대할 수 있다.
   
‘짝다리’ 북측 경비병

  

기자가 JSA 현장을 찾았던 당일, 판문점에는 정적이 흘렀다.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100미터가량 떨어진 판문각(북측 건물)에서 북측 경비병 4~5명이 남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병사는 ‘짝다리’를 하며 우리 쪽을 쳐다보는 듯했다. 특이사항 없는 평온한 하루 일과가 무료한 듯한 자세였다.
        
안내를 맡은 한국군 JSA 경비대원에 따르면, JSA를 찾는 남측 방문자는 하루 평균 600~1000여 명인 데 반해 북측은 5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경비대원은 “북한 쪽 방문객은 많을 때는 100명가량 되는데 러시아나 중국인 등 외국인이 대부분”이라며 “외국인이 북측 지역 JSA를 둘러보려면 돈을 많이 내야 가능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북측은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JSA 방문 관광상품’을 만들어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외국인이 아닌 일반 북한주민이 이곳을 방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평범한 북한 군인도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JSA를 방문하는 북한 사람은 대부분 노동당이나 군(軍)의 고위인사이거나 출신성분이 확실한 이들이라고 한다. 
     
지난 13일 하사급 북한 군인이 이곳을 통해 귀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북측 JSA 소속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귀순했는지는 그가 병상(病床)에서 깨어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탁자 위 가운데를 가로질러 마이크선이 설치돼 있다. 회담장 내 군사분계선(남북 경계선)이다.

T2 정전위 본회의실 탁자 위에 설치된 마이크 선(線)이 南北 경계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는 모두 24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남쪽에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고, 북쪽에는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는 남북 간 연락업무를 위해 쌍방 적십자사가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두고 있다. 2회선의 직통전화도 마련돼 있다.
   
공동경비구역 가운데 쪽에는 7채의 조립식 막사가 동서 방향으로 있다. 막사 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른다. 이를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지역이 구분된다. 여러 채의 막사 가운데 위치한 하늘색 ‘T2’ 막사가 바로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이다. 왼쪽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다. T는 ‘임시(temporary)’의 약자다.
        
현장을 찾은 기자는 T2 막사 안으로 들어가 봤다. 건물 안에는 정전위 회의를 하는 탁자가 중간에 놓여 있었다. 탁자 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마이크선이 설치돼 있었는데 회담장 내 군사분계선(남북 경계선) 역할을 했다. 실제 회의를 할 때는 탁자 가운데에 유엔기와 북한 깃발을 갖다 놓는다고 한다. 
     
판문점 시대의 부침(浮沈)

       
1953년 휴전 이후 1960년대까지는 남북대화가 드물었다. 1970년대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판문점 시대’가 열렸다. 1971년 예비회담을 통해 1972년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에서 이뤄졌다.
    
1980년대에는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 남북경제회담, 남북국회회담, 남북체육회담, 수해물자 인도·인수를 위한 남북 접촉, 남북적십자회담,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등 다양한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판문점을 통한 남북 민간교류도 이어졌다.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제에 전대협 대표로 간 임수경씨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면서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0년 들어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등이 판문점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고 1991년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대학생들이 남북학생회담을 열었다. 당시 북측 여성대표들은 판문점을 통해 서울을 방문, 남북 여성대표 접촉이 이뤄졌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남북대화는 뜸해졌다. 김대중 정부 들어 개성과 금강산이 회담장소로 이용되면서 ‘판문점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북한군 귀순 당시 북측 추격조 한 명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와 중립국감독위 회의장 건물의 중간 아래까지 왔다가 되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빨간색 화살표가 군사분계선이다.

군사분계선 넘은 북한군 추격조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북한군이 총상을 입고 귀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북측 경비병 4명은 귀순하려는 북한군에게 권총과 AK 자동소총으로 40여 발을 쐈다. 이 중 총탄 일부가 남쪽 지역으로 넘어왔다.
    
17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는 북한군이 쏜 것으로 보이는 총탄 여러 발을 남측 구역 초소 인근에서 발견했고 이를 북한군 몸에서 빼낸 총탄과 대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귀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온 상황에서도 북측 경비병들이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군 추격조는 엎드려 쏴 자세로 조준사격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또 북한군 추격조 중 한 명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넘어와 중립국감독위 회의장 건물의 중간 아래까지 왔다가 되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또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국군 JSA 경비대원들은 북한 추격조를 향해 경고사격 등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17일 기자들에게 “JSA 교전수칙은 초병에게 위해(危害)가 가해지는 상황인지, 위기가 고조될 것인지를 동시에 판단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북한군의 총격은 다 합해 15초를 넘지 않았다. 지난 13일은 관광객이 없는 날이기 때문에 최소 인원만이 초소를 지키고 있었다”면서 “JSA 경비대대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17일 <중앙일보>는 전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회의에서 “교전수칙을 논의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유엔사는 초병이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했지만 우리를 조준해 사격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쪽으로 총알이 넘어왔다면 경고사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국민이 생각하는 평균적 교전수칙일 것”이라며 국민 정서적 측면을 고려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당국은 유엔사와 협의해 JSA 교전수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사건 당시 우리 군은 북한군과의 충돌에 대비해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방탄조끼를 착용하는 등 교전 준비에 나섰고 증원병력도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1군단도 대비태세를 강화했다고 한다.
   
한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휴전 이후 JSA에서 북의 총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최초의 사건 아니냐”는 말에 “맞다”고 답했다. 
           

     
송영무 장관의 말처럼 이번 북한군 귀순 과정에서 넘어온 북(北) 총탄이 휴전 후 남쪽 구역에 들어온 첫 총탄일까.   

    

그동안 판문점 내(內) 총격전은 여러 차례 있었다. 첫 총격전은 1967년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기습 귀순 때다. 이수근은 그해 제242차 군정위원회 취재차 판문점을 찾았는데 갑자기 귀순 의사를 밝히며 남쪽으로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총격전을 벌였다. 북한 국영통신사 부사장의 귀순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북측 인사의 귀순이었다. 하지만 이수근은 2년 뒤인 1969년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刑場)에서 사라졌다.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미국군 특별고문이었던 제임스 리는 이수근을 두고 “그는 개인문제로 귀순했으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공산주의자였다”고 했다.
               
총격전은 아니지만 도끼와 몽둥이로 무장한 북측의 무자비한 도발 사건이 1976년 발생했다. 그해 8월 18일 발생한 이른바 ‘도끼만행사건’이다. 당시 공동경비구역에서 15명의 한미(韓美) 경비병과 노무자들이 남측 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군 장교 박철이 부하들과 함께 달려와 ‘가지치기를 중단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서로 왕래가 가능했다.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북한군의 말을 묵살하고 ‘작업을 계속하라’고 노무자들에게 지시했다. 이에 박철 등 북한군 11명이 도끼로 미군을 내려쳤고 현장에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바렛 중위가 살해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자기 구역에서만 활동하고 상대 쪽은 넘을 수 없도록 했다.
            
1984년 11월 소련인 마투조크가 판문점을 통해 망명하면서 또 총격전이 벌어졌다. 소련 관광안내원 바실리 마투조크가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면을 촬영하던 중 돌연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이를 지켜본 북한군은 권총을 쏘며 그의 월남(越南)을 저지하려 했다. 조준 사격에 실패하자 북한군은 마투조크를 쫓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구역 ‘자유의 집’ 앞까지 달려와 양측이 30여 분간 총격전을 벌였다. 다행히 마투조크는 살아남았으나 교전 과정에서 한국 카투사 장명기 일병이 사망했고 미군 한 명도 부상했다. 북한군은 3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해당 사건은 판문점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총격전이었다. 살아남은 마투조크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처럼 JSA 내의 크고 작은 총격전을 고려할 때 정진석 의원이 송영무 장관에게 “휴전 이후 JSA에서 북의 총탄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 최초의 사건 아니냐”고 한 질문이나 “맞다”고 한 송 장관의 답변은 엄밀히 말해 사실과 다르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