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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의 인간탐험]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의 섬김의 리더십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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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東의 인간탐험] 숙명女大의 르네상스를 이룬 최장수 10년 在任 직선 총장 李慶淑의 섬김의 리더십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10%를 숙대에서 배출하겠다
● 발전기금 목표액 1000억원 중 780억원 모금
● 총장 취임 후 대학 캠퍼스는 두 배로, 건평은 세 배로 키워
● 숙명女大를 3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 조사 대학 부문 1위 대학으로 만들어
● 10년째 총장 재임 중… 직선제 총장 중 최장수 총장
●『고교등급제 금지, 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등 3不 정책은 법제화돼서는 안 돼』
●『평준화 정책은 폐지돼야』
 
李 慶 淑
1943년 서울 출생. 경기女高·숙명女大 정치외교학과 졸업. 숙명女大 대학원 정치학 석사. 美 마칼레스터大 정치학과 수료. 美 캔자스大 대학원 정치학 석사. 美 사우스캐롤라이나大 대학원 국제정치학 및 비교정치학 박사. 숙명女大 정외과 교수. 11대 국회의원. 숙명女大 기획처장. 숙명女大 13, 14, 15대 총장. 헌법재판소자문위원회 위원. 

<출처: 월간조선 2004년 12월호>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ksdhan@chosun.com
 
『총장 언니』
 
 숙명女大 李慶淑(이경숙·61) 총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를 위해서 총장 비서실에서 잠깐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총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학생 두 명이 자연스럽게 총장 비서에게 다가가 초대장을 내밀었다.
 
  『성악과 학생들인데요. 총장님 초대권이에요』
 
  두 학생은 자신들의 성악 발표회에 李慶淑 총장을 초청하는 초대권을 전달하고 나서 들어왔던 그 모습 그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나갔다. 마치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이 거리낌없이 총장실을 드나드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기자와 동행한 李珍(이진) 月刊朝鮮 인턴 기자가 말했다. 李기자는 모 여대 4학년 휴학 중이다.
 
  『우리 학교 분위기와 너무 다르네…』
 
  총장실의 분위기가 권위적이지 않다는 말이었다.
 
  李총장의 단골 미용실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女大 부근이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가는 총장을 불러세우기도 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축제 때면 학생들 앞에서 가수 싸이의 「챔피언 춤」을 추기도 하고 테크노댄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그녀는 「총장님」이 아니라 「총장 언니」다.
 
  ―학교 축제이기는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 테크노댄스도 하고 난타 공연도 하는 걸 보면서 대학의 총장으로서 너무 가벼운 처신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아버지가 아들하고 공놀이를 한다고 해서 품위가 떨어지고 수준이 낮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간결하고 정확한 語法
 
  질문지를 보내고 난 후의 인터뷰나, 질문지를 보내지 않고 한 인터뷰에서나 李총장의 대답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됐는데 가능한 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는 점이었다. 숙명女大 수석 입학, 수석 졸업,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大 대학원 국제정치학 및 비교정치학 박사 등의 공부 이력은 「교과서적」인 李총장의 어법과 잘 어울린다. 정제되지 않은 말이 범람해 문제가 되는 시대에 간결하고 정확한 李총장의 어법은 빛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뉴스를 찾는 기자로서는 아주 재미없는 일이다. 게다가 李총장은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는 발언은 적절히 피해 나갔다. 잠깐이었지만 정치에 몸담았던 경력 때문이었을까.
 
  ―5공화국 시절인 11代 때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내셨는데 自意(자의)였습니까.
 
  『자의는 아니었어요. 일종의 차출이라고 할까요? 여자대학을 대표하는 숙대와 이대에서 한 명씩 차출을 했어요. 제가 국회의원을 하던 1981년 당시 여성 정치학 박사가 국내에 다섯 명이었는데 제가 국내 3호였어요. 그때 두 명이 국회에 들어갔는데 저는 숙대 출신 정치학 박사의 대표로, 4호 정치학 박사인 김행자 의원은 이화여대 출신의 여성 정치학 박사 대표로 들어가게 됐던 거예요』
 
  ―국회의원을 끝내고 다시 강단으로 돌아오셨는데 그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는 어용 교수 시비에 시달렸겠습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강의를 했어요. 無보수로 했죠. 오히려 학생들이 저를 격려해 주었어요. 「교수님이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격려의 편지를 보내주는 학생들도 있었구요』
 
  李총장의 간결, 정확한 어법과 조심스러운 태도는 정치 경력과는 무관한 천성인 듯싶었다.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李총장의 말의 높낮이는 일정했고 차분했다.
 
  두 번째 인터뷰는 마침 국민적 관심사였던 「新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던 날인 10월21일에 이뤄졌다. 그날 오후 2시30분부터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는데 기자는 위헌 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인터뷰 시작 1분 전에 알았고 위헌 결정은 불과 수십 초 전에 있었다. 기자가 『수도이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났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李총장은 『그렇게 결정이 났느냐』고 되물으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으니까, 법이라는 게 상식이니까』라고 조용하게 말했는데, 1차 인터뷰 때의 목소리 톤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발전기금 1000억 모으겠다』고 선언
 
  李慶淑 총장은 1943년 서울에서 건축업을 했던 아버지 이순재(1967년 작고)씨와 어머니 정양순(1990년 작고)씨 사이의 2남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李淑子(이숙자) 前 성신여대 총장이 친동생이다. 朴正熙 대통령 시절인 1976년 유치과학자로 들어와 고려大 부총장을 지낸 崔永翔(최영상·65) 교수가 李총장의 남편이다. 崔교수는 1998년에 고려大 총장 선거에 출마해 「부부 총장」의 탄생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金貞培(김정배·64) 교수와 경합 끝에 낙선했다.
 
  李총장은 숙명女大 재학 중에는 학생회장을 지냈고, 1994년에 총장으로 뽑힌 후 3회 연속 총장에 선출돼 10년째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직선제 총장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장 기록이다.
 
  1994년 3월 총장에 취임했을 때 李총장을 맞이한 것은 7억8000만원짜리 세금고지서였다고 한다. 이 세금고지서는 숙대 캠퍼스와 무관하지 않다. 숙명女大는 1906년 高宗(고종) 황제의 부인인 엄귀비가 세웠다. 개교 당시 황실은 숙명女大에 황해도에 있는 토지를 財源(재원)으로 하사했다. 이 財源은 남북분단으로 잃어버렸고 현재의 청파동 캠퍼스마저 국유지에 편입됐다. 결국 숙명女大는 半세기 동안 국가 소유의 땅을 임대해 사용해 온 것이고 학교 건물들 역시 법적으로는 불법건물인 셈이었다.
 
  총장 취임 이듬해인 1995년 2월 李慶淑 총장은 「제2 창학」을 선언했다.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06년에 맞춰 학교 규모를 1994년 당시보다 2배 이상 키우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를 위한 발전기금 목표액은 1000억원. 당시까지 숙명女大가 모아본 기금 가운데 가장 큰 액수가 도서관 건립 기금 2억원이었던 상황에서 1000억원을 모으겠다는 李총장의 선언은 당연히 웃음거리였다.
 
  총장 취임 10년이 지난 지금 李慶淑 총장이 제2 창학 선언에서 제시했던 2006년까지의 기금 목표액 1000억원 중 780억원이 걷혔다. 캠퍼스의 크기는 두 배로 늘어났고 건평은 세 배로 늘어났다. 새로 생긴 건물만 16동이다. 1998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무선 랜을 구축했고, 2002년에는 휴대전화를 통해 학사행정을 처리하는 모바일 캠퍼스를 구현했다. 이런 변화는 1999~2001년 3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 1위 대학 선정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학교가 진 빚도 더 이상 없다.
 
  무엇보다도 李총장은 국유지로 묶여 있던 캠퍼스의 소유권을 숙명女大 소유로 되찾아 왔고 공원용지로 묶여 있던 땅을 풀어 제2캠퍼스를 조성했다. 밤새 국유재산법을 읽고 공무원과 市의원, 區의원 등을 찾아다닌 결과였다. 외부에서는 李총장이 숙명女大를 이끌어온 지난 10여 년을 「숙명女大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평가한다.
 
 
  섬김의 리더십
 
  화려한 언변을 가진 것도 아니고, 때로는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축제에서 춤을 추는 등 튀는 행동도 하지만, 오히려 조용하기만 한 작은 체구의 李慶淑 총장. 그의 무슨 힘이 숙명女大로서는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를 이끌어 냈을까.
 
  기자는 李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풀면서 한 가지 질문이 반복적으로 던져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문을 대상으로 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 모바일 캠퍼스 구축, 리더십 인증제 실시 등 숙명女大만의 독특한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자는 『그건 총장님의 아이디어였습니까』 하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李총장의 대답은 『아뇨, 중지를 모은 거죠』라고 대답을 했지만, 아이디어를 직접 내기도 하고 신입생 모집 광고를 내면서 실무자들이 낸 「울어라 암탉아」라는 헤드카피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李총장의 유연함도 숙명女大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한 축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하나가 있다면 李총장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으로 보이는 신앙생활일 것이다. 기독교 신자인 李총장은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신앙생활의 영향 때문인지 李총장이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섬김의 리더십」이다. 남을 먼저 섬기고 희생과 헌신 속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권위에서 21세기 리더십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숙명女大는 금년에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리더십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됐다. 2003년부터 리더십 관련 과목을 수강한 뒤 일정기간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에게는 「리더십 인증서」를 교부하고 있다. 「발표와 토론」, 「글쓰기와 읽기」, 「리더십 워크숍」, 「사회봉사」 등의 과목을 수강하고 학교內 봉사그룹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1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리더십 인증서」를 받게 된다.
 
  ―근래에 들어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고 할까요. 朴正熙 前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보는데 朴대통령의 리더십의 문제는 무엇이고 장점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저는 산업사회 시대의 리더십과 지식정보화 시대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산업사회 시대에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그리고 수직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리더십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근대화·현대화 과정에서는 그런 리더십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것이 민주화되고 수평 조직화하고 의식이 어느 정도 개방화되는 사회로 발전되면 그런 방식은 리더십으로 발휘되질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21세기형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섬김의 리더십이 설득력이 더 있고 호응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왜 이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朴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이 많을까요.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內에서만 대안을 찾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가 보고 겪은 리더십 중에서 고르잖아요. 새로운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리더십이 그때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도 더 잘 해결해줬고, 발전을 시켰다는 인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워하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데 경제도 발전시키고 민주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총장님이 말씀하시는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말에서는 語感(어감) 때문인지 소극적이면서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아요. 21세기 리더십은 강압적이고 힘에 의해 유지되는 수직적 리더십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적인 개념이죠. 지금과 같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섬김의 리더십은 더 절실하게 필요하죠』
 
  ―여성스럽기도 합니다.
 
  『섬김의 리더십은 여성이 더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모토가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인데 여성의 감성과 섬세함, 포용력, 관계 지향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숙명女大는 2010년에는 세계 100大 대학 진입이 목표다, 하는 식의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있습니까.
 
  『2020년에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10%는 숙대에서 배출하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李慶淑 총장은 숙명女大 13, 14, 15代 총장을 연임하고 있다.
 
  ―16代 총장에도 도전하실 생각입니까.
 
  『(웃음)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학교가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봉사를 해야죠』
 
  ―그만 쉬고 싶지는 않습니까.
 
  『할 일이 아직 많아요(웃음)』
 
  ―주변에서 붙드는 겁니까, 아니면 본인이 원해서입니까.
 
  『글쎄요, 둘 다라고 할까요(웃음). 총장이라는 자리를 권력이나 명예로만 생각한다면 그만두어야죠. 총장은 봉사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요즘 CEO 아닌 총장도 있나요?』
 
  李총장은 웃음도 조용했다. 대학발전기금 모금을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기업가들을 만나고 동문들을 만나러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지난 10월12일 숙명女大 초입 좌측에 있는 행정관 건물 6층 총장 접견실에 들어설 때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2002년 5월 한국능률협회가 수여한 한국의 경영자상이었다. 대학의 총장과 CEO란 말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함께 붙어다닌 지 오래지만 총장 접견실에서 만난 경영자상패는 아직은 왠지 낯설었다.
 
  기자가 준비해 간 『총장께서는 CEO 총장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문보다는 지나치게 경영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李총장은 『요즘 CEO 아닌 총장도 있나요?』라는 말로 답했다. 그러면서 『대학총장에게 덕망과 학문적 업적은 기본 아닌가요?』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과거보다 요즘의 총장 역할이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었다.
 
  ―발전기금 목표액 1000억원 중 780억원을 모금하셨는데 목표액 달성은 가능하리라고 보시는지요.
 
  『개교 100주년이 되고 2020년 대한민국 지도자의 10% 배출을 위한 프로그램, 커리큘럼 등의 기틀이 완성되는 2006년까지는 무난하리라고 봐요』
 
  ―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습니까.
 
  『저는 동문들과 각 기업들에게 숙대의 비전과 꿈을 팝니다. 그 비전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대학의 모습을 보여주면 호응도 따르는 거구요.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누가 돈을 주겠어요?』
 
  숙명女大의 발전기금 모금 가운데 독특한 것은 6만여 명에 이르는 동문들을 대상으로 전개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이다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은 총장님 아이디어였습니까.
 
  『재단 법인으로 돼 있는 숙명선교회라는 단체가 있어요. 우리 숙명女大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죠. 총장 취임 후 그분들과 함께 기도했어요. 학교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달라는 기도였는데 그 결과가 동문들에게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펼치자는 거였습니다. 저 혼자만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죠』
 
 
  賢母良妻 배출 대학 이미지는 옛 얘기
 
  숙명女大는 賢母良妻(현모양처)형 여대생을 배출하는 대학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李총장은 숙명女大의 이런 이미지를 『디지털 대학, 지식경영대학, 문화선도 대학의 이미지로 바꾸어 나가고 있고 이미 그런 이미지가 사회에 심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비교하기 뭣합니다만 일반적으로 같은 여자대학인 이화女大 하면 떠오르는 게 「발랄함」이라면, 숙명女大 하면 떠오르는 게 「조용함」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이미지는 대학에 마이너스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이미지가 좋게 얘기하면 겸손하구요, 나쁘게 애기하면 조용하고 소극적이었죠. 그런데 지금 경쾌하고 발랄한 건 저희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학생들 굉장히 밝습니다. 얼굴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치고요. 옛날의 숙대 이미지와 지금은 완전히 달라요』
 
  ―지금까지 상명大, 세종大 등 몇몇 대학들이 여자대학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는데 숙명女大는 그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계획은 없어요. 비록 조그마한 여자대학이지만 최초의 민족 여성私學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여성 리더의 산실로 남아 있을 겁니다』
 
  ―여자대학의 남녀공학으로의 전환, 일부 여자대학과 남녀공학 대학 간의 학점 교류를 통한 캠퍼스 개방 등의 시대변화를 보면 여자대학이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은 여성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예요. 앞으로 여자대학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여자대학만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성 리더십을 잘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은 없으니까요』
 
  ―대학 발전 계획을 세우시면서 이화女大를 경쟁상대로 삼지는 않았습니까.
 
  李慶淑 총장은 이 질문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은 레드클리프, 스미스, 웨슬리 등 미국의 7개 명문 女大들이에요. 이화女大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1999~2001년, 3년 연속 종합대학 부문 국가고객만족도 조사 1위, 1997년 대학교육협의회 대학평가 최우수 대학 선정 등 李총장 취임 후 숙명女大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지만 李총장이 못내 아쉬워하는 점이 있다. 모 일간 신문이 매년 9월에 발표하고 있는 대학평가에서는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工大·醫大 소유 대학만 유리한 대학평가 문제 있다
 
  ―중앙일보가 해마다 실시하고 있는 대학평가에서 숙명女大는 올해 종합순위에서 25위를 차지했던데 만족하십니까.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인터뷰에 응하던 李총장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저는 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학생들의 인성이라든가 대학의 비전, 추진력, 의지, 화합하는 분위기 이런 게 대학 발전의 원동력인데 그런 건 측정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기준이 남녀공학 기준이기 때문에 신설대학이라든지, 여자대학은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고시합격자를 몇 명 배출했느냐, CEO를 얼마나 배출했느냐, 하는 것도 평가의 기준인데 우리 대학 같은 경우에는 졸업생의 80% 이상이 주부이니까 그 분야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지요. 고시합격자 수도 매년 누적한 숫자로 하니까 신설대학이나 여자대학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름대로 생각하시는 공정한 평가방법이 있습니까.
 
  『지금과 같은 평가는 레슬링 선수와 테니스 선수를 맞붙여 놓고 누가 센가를 판정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미국의 대학 평가는 인문사회 계통이 강한 학교는 그쪽으로 모으고, 자연과학 계통이 강한 학교는 그쪽으로 모으고 하는 식으로 세분한 후 기준을 다르게 정해서 평가를 해요. 그러니까 공정한 평가가 되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공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이 있는 대학이 유리한 평가를 받게 돼 있어요. SCI 논문을 얼마나 발표했느냐 하는 것도 평가의 기준이니까요.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25위라도 차지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인성이나 비전 같은 것들까지 평가 대상에 포함할 경우 숙명女大의 순위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보시는 거죠.
 
  『그럼요. 상위권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10위 안에 든다고 확신해요』
 
  ―숙명女大를 대표하는 학과를 꼽아줄 수 있습니까.
 
  『교육부 평가에서 최우수를 받은 약학대학하고 디자인 학부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다른 학과들도 특성에 따라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학과들이고요』
 
  ―학생들의 등록금이 숙명女大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 됩니까.
 
  『60% 정도』
 
  ―어느 정도가 적정한 비율이라고 보십니까.
 
  『한 40%대까지는 떨어져야 한다고 봐요. 그게 우리 학교의 최종 목표가 될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 60%의 재정은 어떻게 채우실 계획입니까.
 
  『선진국들의 대학을 보면 학교에서 학교기업을 경영하면서 수익 사업도 하잖아요? 이런 게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금도 해야 하고, 수익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야죠. 저는 이제 18~22세까지만 대상으로 하는 대학으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 입학 정원이 응시자보다 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다 충당하겠어요. 평생교육의 장이 돼야지요』
 
  학교기업과 관련해 숙명女大가 구상하고 있는 것이 음식사업이다. 이를 위해 숙명女大는 2001년 9월 세계 최고의 프랑스 요리 학교로 알려진 「코르동 블루」에서 25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투자를 바탕으로 숙명女大는 「숙명-코르동 블루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음식 문화 서비스 전문인을 양성하는 기관이지만 레스토랑 등 여러 관련 사업도 병행할 계획으로 설립됐다.
 
  ―코르동 블루와의 음식사업은 시작됐습니까.
 
  『아직 경영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지금 사업자등록까지 내놨어요. 우리 학교에는 한국음식연구원도 있거든요. 여학교에서 잘할 수 있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구상하고 있죠』
 
  ―15代 총장 임기 중에 실천하시겠네요.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튼 수익이 될 수 있는 것은 해야죠. 재정 기반이 확대가 되겠죠』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줘라』
 
  두 번째 인터뷰에서 李慶淑 총장과 주로 나눈 대화는 교육 문제였다. 서울大 페지론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李총장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이해를 못 하겠어요. 좋은 학교는 더 잘 되도록 해줘야지 다른 학교들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아닌가요?』
 
  ―교육인적자원부는 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본고사 금지 등 이른바 3不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직 법제화돼 있는 건 아니지만 법제화할 움직임도 있습니다.
 
  『법제화돼서는 안 되죠. 왜냐하면 대학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자율성이거든요. 고교 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전반적인 프로그램 개편으로 방향을 정해야지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이렇게 해서 언제까지 규제하는 식으로 해가지고 되겠어요?』
 
  ―고교등급제 실시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때 江南과 非江南 지역 간 상당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교육 문제가 계급갈등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겠는가」라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되겠죠』
 
  ―나름대로 처방 같은 것을 제시한다면….
 
  『저는 지역이나 어떤 고교를 따라서 등급을 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득을 봐서는 안 되죠. 또한 그것을 인위적으로 구분해서 강남, 非강남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것은 국민 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갈등,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에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입시제도 자체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기 대학이 키우고 싶은 방향의 人材들을 뽑을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고교를 등급으로 구분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죠. 처방이라는 게 대학에게 선발 자유권을 주는 거죠』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봐야』
 
  ―학생 선발 자유권을 대학에 일임하면 고교등급제가 자연스럽게 실시되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학교나 지역을 등급으로 나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을 봐야죠. 강남에 있는 1등보다 강북에 있는 학생이 훨씬 잘할 수 있는 여지도 있잖아요. 내신 성적 부풀리기 등으로 공정한 평가가 안 된다는, 이런 부분이 시정돼야 하겠죠. 정말 공정하고 객관적인 신뢰할 수 있는 내신 성적표가 나와 줘야 하죠. 석차 백분율 등 고교가 충분한 자료만 대학에 주면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죠』
 
  ―숙명女大는 혹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고교 내신의 변별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지는 않았어요. 약속된 원칙은 지켜야 하니까요』
 
  ―다른 대학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는 대학들이 과연 고교등급제를 했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회의가 들어요. 제대로 하지도 않았을 거 같아요.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그냥 심층면접 같은 걸 참고자료로 썼을 뿐이지 고교를 등급화해서 점수를 주고 이런 것 같지는 않은데 부풀려서 얘기가 떠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大 鄭雲燦(정운찬) 총장이 지방부터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자고 했습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점차 폐지하자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총장님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저는 공감해요. 사람이 교육받을 기회는 모두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능력이 다 똑같지는 않거든요. 능력 있는 사람들은 그 능력을 키워 주는 교육 제도가 돼야 해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거기에 맞춰서 같이 득을 보도록 하는 그런 시스템이 되도록 해야 人材가 양성되고,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거죠.
 
  잘 하는 사람도 잘 하지 못하도록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 본능에 맞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지 매사가 물 흐르듯이 흐르게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제도나 법에 의해서 규제해서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문제가 나타나게 되잖아요』
 
  ―기여입학제도 3不 원칙에 들어가는데 숙명女大는 기여입학제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습니까.
 
  『기여입학제에 대한 원칙이 아직은 없어요.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은 저도 반대예요. 하지만 순수한 기여입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할아버지代에 정말 우리 학교를 위해서 기여를 많이 했으면 손자代에는 학교에서 좀 혜택을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죠.
 
  부자가 있으면 그의 돈이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연계가 되고 하는 식의 서로가 Win-win(윈윈)이 되는 그런 시스템으로 갈 때 기여입학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좀 전에도 말씀하셨지만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일임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텐데 왜 그 권한을 대학에 안 줄까요.
 
  『불신 때문에 그래요. 지금 한 200개 정도의 4년제 대학이 있는데 거기에 비리를 일으키고 불신을 받는 대학들이 한 10% 정도는 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대학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를 하면 돼요.
 
  대학의 본분을 잃어버린 대학에 대해서까지 동정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 법적으로 제재를 할 수 있고 퇴출까지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나머지 잘 하고 있는 대학들 90%에 대해서는 오히려 격려하고 지원하고 자율화하는 방향 쪽으로 과감하게 풀어야 해요』
 
 
  교육개혁은 중고등학교 수업 분위기 개선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을 한다고 기구도 만들고 요란을 떨지만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4700만 국민 전부가 교육 전문가잖아요』
 
  ―총장님한테 지금 가장 시급한 교육을 하라면 어떤 분야를 개혁하고 싶습니까.
 
  『중고등학교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면 수업할 분위기가 제대로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와서 떠들지 않고 제대로 수업 받게 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돼요. 저희가 의사소통 능력 개발 과목이라고 해서 한 반에 한 25~30명씩 나눠서 필수과목으로 읽기, 쓰기, 토론 발표를 시킵니다. 다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거죠. 대학에서 학생들을 졸업시켜 놓으면 기업들이 다시 교육시키듯이 대학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나 중학교의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는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을 교육시키잖아요? 어린아이들이 지적인 흥분이나 호기심이 있어야 재미있게 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자극이 없는 거 같아요. 모르는 것을 배우는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는 것을 배우려니 재미없잖아요.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지적인 흥분을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정상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體罰(체벌) 금지 등 엄한 선생님을 교단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요.
 
  『선생님들이 야단을 치거나 체벌을 하면 고소를 하는 일도 발생하는 풍토에서 교사들이 엄하게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죠. 그 다음에 또 우리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라고 배워서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대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선배로부터 많이 들어왔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랬잖아요. 그 풍토가 없어진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혹시 體罰에 찬성하십니까.
 
  『반대예요. 무조건 때려서 가르치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득이 체벌이 필요할 경우는 약속을 해서 체벌할 수는 있어요. 부모자식 간에도 네가 거짓말 해서 또는 뭘 잘못해서 종아리를 맞아야 하겠는데 동의하지 않니, 해서 맞다고 하면 종아리 때리잖아요. 그런 식으로 서로 동의해서 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자녀들을 키울 때 동의下에 체벌을 한 적이 있습니까.
 
  『필요할 때는 동의下에 체벌을 했어요』
 
 
  『피곤해서 교수 못 하겠다는 사람도 나올 것』
 
  ―세계 100대 대학에 들어가는 대학이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어느 목표를 세워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비전을 우리 대학들이 갖고 있지 않았고, 가지고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미흡했고요. 비전을 뚜렷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은 리더십과 연결이 돼요. 리더십을 만들어갈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총장들의 임기가 너무 짧아요.
 
  하버드 대학 총장의 재직 평균 임기는 10년을 넘는데 서울大 총장의 임기는 평균 2년 몇 개월에 불과해요. 안정되게 비전을 세우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가 안 돼 있는 거죠. 비전과 리더십이 뚜렷하게 세워질 수 있는 체제가 안 되다 보니까 구성원들이 힘을 한 방향으로 정렬해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모아지지 않는 거죠』
 
  ―그렇다면 숙명女大는 안정되게 비전을 세우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 거네요?
 
  『총장을 10년 넘게 했으니까 그런 면에서 덕을 본 거죠. 그런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재정이에요. 아무리 좋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어도 거기에 뒷받침되는 재정지원이 없으면 그 비전은 탁상공론에 불과한 거죠. 뜬구름 잡는 소리죠.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예요』
 
  ―대학의 수준도 문제지만 교수들의 경쟁력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교수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공무원들처럼 철밥통을 안고 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건 과거의 얘기죠. 저희 같은 경우는 1997년경부터 교수 업적 평가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강의 평가도 학생들이 하고, 그 다음에 업적 평가해서 1등부터 300명이면 300등까지 그게 순서대로 다 나와요. 단과대학별로 평가를 해서 정월 초하룻날 시상을 하거든요. 상위 5% 되는 분들은 인센티브제로 격려금 같은 것도 주죠. 경쟁체제예요. 요새 교수 자리 굉장히 부담이에요. 교육 평가 있죠, 연구 평가 있죠, 또 봉사도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면 너무 피곤해서 교수 못 하겠다는 분들도 나오겠네요.
 
  『앞으로 나오겠죠. 아직은 없지만 아직은 다른 직업보다 안정되고 좋으니까 존경받고…. 대학은 굉장한 경쟁 체제로 가고 있는데 그거에 비하면 중고등학교는 평가를 안 하고 있잖아요. 대학이 그 면에서 상당히 앞서가는 거죠. 중고교도 배워야 할 거 같아요. 중고등학교 교사들도 마다하지 않을걸요. 잘하는 분들은 격려되고 인센티브로 가잖아요?』
 
 
  『시간 아까워 부부싸움도 안 했다』
 
  李慶淑 총장이 처음부터 총장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내 이름을 딴 이론을 하나 만드는 게 꿈이었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李총장의 꿈은 후배들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자였다고 한다. 유학 시절 박사과정을 밟으며 부부싸움을 유보하게 된 이유는 李총장이 얼마나 학자의 길을 가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 준다.
 
  ―부부싸움은 하십니까.
 
  『초창기에는 자존심 싸움을 했어요. 그때 남편이나 저나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싸우고 나면 하루 공부를 못 하게 돼요. 그러면 그 다음날 공부를 따라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부부싸움은 시간낭비이고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하고는 남편과 박사과정 끝날 때까지 싸우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지금은 서로 바빠서 못 싸우고 있어요(웃음)』
 
  인터뷰를 끝낸 후 李慶淑 총장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기자 일행이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李총장은 다시 한 번 목례로 배웅했다. 인터뷰 중 습관처럼 李총장이 말하던 「겸손」이란 단어가 그 모습 위로 오버랩됐다. 4년제 대학 직선제 최장수 총장으로서 숙명女大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입력 : 200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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