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총선을 치른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참패, 비대위원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또 다시 비대위를 구성했다. 기시감이 든다. 2010년 한나라당 시절부터 한국의 보수당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비대위를 꾸렸고, 그 횟수도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성공한 비대위로 평가받는 건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비대위가 유일하다는 게 중론이다.

2011년 한나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는 그해 10월 26일 서울시장 등을 뽑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의원 보좌진 및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중앙선관위와 박원순 당시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 등에 접속을 할 수 없도록 사이버 테러를 가한 사건이다. 박원순 후보는 당선됐고, 한나라당은 디도스 파문 및 재보궐 패배라는 위기를 맞닥뜨렸다. 한나라당은 그해 12월 19일, 제14차 전국위원회를 통해 박근혜 전 당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한다. 박근혜 체제에 발탁된 11명의 비대위원 중엔 현재 개혁신당 대표로 있는 이준석 국회의원 당선자를 비롯해 김종인 전 의원, 조동성 서울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등 외부인사 6명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제1 야당이었던 민주통합당의 이용선 공동대표는 이날 “디도스 사태는 국기 문란 행위로 박근혜 비대위 체제의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야당이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 진상이 명명백백히 공개되고 드러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고 요구했다. 자당(自黨) 파문에 대한 야권의 공세에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민주주의와 대의정치를 위협한 것으로, 국민이 의혹을 해소할 때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관계자를 엄벌 처리해야 한다”고 되려 강조했다. 실제로 이튿날, 한나라당은 디도스 파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야당 주도의 특검을 하기로 민주통합당과 합의했다. 말에 그치지 않았다. 비대위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기로 의결하고 비대위 산하에 디도스 국민검증위원회를 설치했다.

박근혜 비대위 출범 시점은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데다 북한 김정일이 사망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변수가 오히려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요행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2011년 12월 23일 《서울신문》은 “박 위원장이 독주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김정일 사망’이라는 외부 변수”라며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일의 사망으로 박 위원장이 시간을 벌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선관위 디도스 공격,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 여권을 덮치려던 파도가 잠잠해졌기 때문에 숨을 고를 여유를 갖게 됐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親 박근혜)계 중진들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활동 범위를 터주기 위해 줄줄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 20일 장제원‧현기환 의원이, 23일엔 박진 의원이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박 의원은 “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게를 싣고, 새롭게 변화‧쇄신하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여세를 몰아 다음달인 2012년 1월,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공천 개혁이라 불릴 만한 인적 쇄신을 단행한다.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5%를 받은 지역구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다. 그해 2월 13일엔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152석)을 확보했다. 당을 위기에서 꺼낸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그해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글=김광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