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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종교개혁 500주년... 최악의 상황에서 사상을 생산-교육-홍보해 역사를 바꾼 루터를 생각한다

<루터의 밧모섬-바르트부르크성에서 보낸 침묵과 격동의 1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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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밧모섬>,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른비 펴냄(2016)

"봉헌함에 금화가 딸그랑거리며 떨어지는 순간 구원된 영혼은 천국으로 곧장 올라간다."

아주 잘 뽑은 광고 카피 같은 이 말은 16세기 초 독일의 면죄부 판매책인 도미니코수도회 소속 수도사 요한 테첼이 한 말이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에 성피에트로성당을 짓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면죄부(免罪符)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비텐베르크대학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는 15171030일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대자보를 붙였다. '95개조의 반박문'이라는 제목의 이 대자보 제21조에서 루터는 "면죄부를 사려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교황의 면죄부로 모든 형벌을 면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86조에서는 "오늘날 교황의 수입은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자의 수입보다도 많은데, 베드로 대성전쯤이야 궁핍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교황 자신의 돈으로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마디로 "면죄부는 죄와 범죄로부터의 구원을 통한 참된 통회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금전거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었다.

루터는 운이 좋았다. 당시 유럽에 보급되기 시작한 활판인쇄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보다 100년 전 종교개혁을 주장하다가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진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는 달리, 루터의 주장은 활자로 인쇄되어 순식간에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교회사가 베른트 묄러는 이를 두고 "인쇄서적 없이는 종교개혁도 없다"고 말했다. 루터 자신도 "인쇄술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최후의 선물이자 가장 위대한 은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루터가 쓴 일련의 종교개혁 관련 서적들은 당시 신성로마제국 국민 1인당 1권씩 돌아갈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셈이다. 심지어 루터를 두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을 팔 수 있었던 최초의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루터는 처음부터 교황청과 척을 질 생각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교회 내의 부조리에 대해 온건하게 문제 제기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루터에게서 '이단'의 혐의를 발견했다. 교황은 수차례 루터를 로마로 소환했지만, 루터는 이에 불응했다. 오히려 루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규탄했다.

교황은 15206월 교서를 내려 루터의 모든 저작을 불사르도록 명령하는 한편, 루터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그해 10월 지지자들을 이끌고 비텐베르크 성문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1월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파문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루터를 처단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이미 제후와 백성들 가운데 루터 지지자가 적지 않음을 카를 5세는 알고 있었다. 루터를 잘못 다루었다가는 반란에 직면하게 될 것을 우려한 그는 보름스에서 열리는 제국의회 청문회에 루터를 소환했다.

1521416일부터 열린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철회할 수 없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기 제가 서 있습니다. 저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이 장면을 독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루터는 426일 보름스 출발, 비텐베르크로 향했지만, 도중에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 루터를 지지하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꾸민 납치극이었다. 이후 1년 동안 루터는 융커 외르크라는 이름으로 바르트부르크성에 은신했다.

제임스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섬(원제 Luther's Fortress)>은 바로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성에서 보낸 1년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밧모섬은 복음서의 저자 중 하나인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쓴 섬의 이름이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신의 계시를 받았듯이, 루터 또한 이곳에서 그에 필적하는 체험을 했다는 의미겠다.

이 시기는 루터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파문을 당했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사회적으로도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지자들과 고립된 것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건강도 상했다. 수시로 악마를 만나고, 악마와 싸웠다고 후일 술회할 정도로 심적으로도 지쳐갔다. 하지만 루터는 이 시기를 한탄만 하면서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우선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비텐베르크대 신학교수인 니콜라우스 폰 암스도르프, 게오르규 슈팔라틴 등을 통해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지지세력과 연락을 취했다. 이를 통해 멜란히톤 등 지지세력을 조직화하고 격려했다.

이와 함께 루터는 각종 교회의식, 교회의 권위, 성직자의 역할, 성직자의 결혼과 성()문제 등 교회와 관련된 각종 이론들을 다듬어 나갔다. 많은 찬송가를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개신교 신앙의 핵심이론을 창출해 낸 것이었다.

이어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에라스뮈스의 그리스어 성서 등을 바탕으로 10주만에 신약 27권을 번역했다.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루터의 독일어 성서가 최초의 독일어 성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염집 아낙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했다는 점에 루터가 번역한 성서의 특장점이 있다. 루터가 성서에 사용한 독일어는 근대 독일어의 기초가 되었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성에 은거해 있는 사이에 종교개혁은 더욱 급진화됐다. 루터의 옛 동료 교수이던 카를슈타트나 토마스 뮌처 등은 종교개혁을 사회혁명, 민중혁명으로 이끌어가려 했다. 곳곳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루터는 이들과는 엄격하게 선을 그었다. 심지어 제후들에게 농민반란을 철저하게 진압하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루터는 농민 등 기층민중들의 바람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성에서 한 일은 결국 사상의 생산-교육-홍보-조직화로 요약할 수 있다. 1년 후 루터가 성에서 나와 비텐베르크로 돌아왔을 때, 루터도,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 후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세계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가톨릭 보편세계가 무너졌다. 처음에는 제후들에게만 인정된 신앙의 자유였지만, 이는 훗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로 발전해 나갔다. 가톨릭의 보편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진 자리에 근대 국민국가가 들어섰다. 유럽세력의 팽창에 따라 그러한 가치관과 질서는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지역으로 전파됐다.

이 모든 것이 15171030,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이라는 대자보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못질해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거대한 위선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수의 대중은 거기에 따라가는 형국에 루터 혼자서 진실을 보고진실을 외쳤다. '95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하는 소리는, 근대로의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한 사람, 마르틴 루터라는 한 사람이 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자유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애국자들도 어쩌면 바르트부르크성의 루터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과 위선이 득세하는 세태 속에서 많은 이가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루터는 좌절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루터는 스스로의 사상을 다듬고,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교육시키고, 책을 펴내 홍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승리했다. 그게 종교개혁 500주년에 루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입력 : 2017.10.29

조회 : 4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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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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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2017-10-29)   

    감격하게 읽었습니다. 양심의 자유, 표현,정치적,경제적 자유의 시작이다! 라는 글 너무나도
    동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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