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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의 공천을 '수뢰 전과' 있는 김종인이 한다?

'뇌물 수수 전력' 김종인이 그 누구의 '도덕성' 평가할 자격 있을까?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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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통칭 '이준석당'으로 불리는 '개혁신당'이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종인씨를 선임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개혁신당은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공관위원장을 선임한다"며 "예정된 시점보다 다소 늦었지만, 어느 당보다 중량감 있고 정무적 능력이 탁월한 김종인 위원장을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종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국민에게 선보이는 공천 업무에 신속하게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준석 대표의 '김종인 소개'는 '김종인의 과거'를 익히 아는 우리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일방적인 '선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이 과연 '개혁'을 지향하는지, '새로움(新)'을 추구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최소한 '개혁신당'이란 그 이름만 놓고 보면, '김종인'이란 인물은 개혁신당과 어울린다고 보기 힘든 인물이다. 또한 그 한 정당의 '공직후보자 추천'을 주도하고, 평가하고, 우리 국민 앞에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는 인사라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단 1940년생인 김종인씨는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이다. 그것도 이 당, 저 당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함께 한다. 그런 까닭에 김종인씨에게는 철마다 '색'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스스로 '당색'을 바꾸고 다시 나와 매번 '전권'을 달라고 주장하는 '전권 호소인', 자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를 비판하면 이내 '칩거'하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별난 노인과 같은 오명이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84세 고령임에도 다시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또 정치판에 돌아온 김종인씨를 우리 국민은 어떻게 평가할까. 과연 이준석 대표가 추켜세운 것처럼 김종인씨에게 '탁원한 정무적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1940년생인 그가 2024년 총선판에 참여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김종인씨의 소속 진영 또는 참여 정당 변천사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김씨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에서 전국구 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도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의 전국구 의원(14대)을 지냈다. 사실상 지지 세력, 지역 기반 없이 전국구로만 3선을 지내며 국회의원 생활을 했다는 얘기다. 

  

김종인씨는 1993년 '동화은행장 연임 로비' 사건과 관련해서 뇌물 2억1000만원을 받는 범죄를 저질러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란 확정 선고를 받았다.  그랬던 그가 2004년 정치권에 복귀해서는 '김대중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또 차지했다. 


그러다가 2010년에는 '안철수 신드롬'의 주인공,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 옆에서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이내 안철수 교수가 "김종인이 멘토라고 한다면, 그런 멘토는 300명쯤 있다"고 해 김종인씨의 '안철수 구애'는 금방 끝났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이후 새누리당으로 개명)에 비상대책위원으로 합류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6년에는 '문재인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으로 가서 이른바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역할을 하면서'친노' '친문'을 대거 탈락시키고,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공천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당에 들어가서 '김종인당'으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김종인씨가 2017년 탄핵 정국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을 '김종인당'으로 만들고 나서 이를 발판으로 삼아 대권에 도전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 아주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김종인씨는  스스로 '비례대표 후보 2번'에 공천을 했다. 이로써 그는 전무후무할 '전국구/비례대표 의원 5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종인씨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정국'이 이어지자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가 불과 일주일만에 뜻을 접었다. 스스로는 각종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전략가' '선거 기술자'를 자처했고, 소위 '킹메이커'란 식으로 자부했으나 그 누구도 '김종인 대선 출마'에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준석 대표가 추켜세운 김종인씨의 '정무적 판단 능력'의 '수준'을 살필 수 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했지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김종인씨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또 손을 잡으려고 했다. 

 

김종인씨는 또 2020년에 미래통합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총선 참패 뒤에는 미래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일했고, 당명을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바꿨다. 하지만 현존하는 정치인 중 가장 '전략적 사고'가 뛰어나다는 듯이 자처하는 이준석 대표가 '존경'한다고 하는,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김종인씨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있을 때 국민의힘 지지율은 특기할 정도로 오르지 않았다. 

 

만일 '문재인 부동산 실정' '문재인 농지법 위반 의혹' '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조직적인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다면, 김종인씨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국민의힘 지지율은 황교안 전 대표가 있을 당시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결국 김종인씨는 '개혁'이라는 그 가치, 구호와 어울린다고 보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우리 정치권에서 혐오하는 '당적 바꿔 국회의원 되기' 행태를 수 차례 자행한 이다. 그것도 선거 때만 되면 당적이 바뀌는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은 온갖 문제를 다 안다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정작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그 신묘한 '지략' 또는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 일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김종인'을, 정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돌림노래'를 불렀던 그 '김종인'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왜 '재소환'했을까. 그에게 뭘 기대하는 것일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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