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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壽星 특조단장...『軍의 명예보다는 眞實만을 캤다』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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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鄭壽星 국방부 許일병 사망사건 특별진상조사단장 『軍의 명예회복보다는 眞實만을 캤다』 「콜롬보 수첩」 『許일병 사건이 의문사委에 의해 조작·날조됐다는 수사관들의 보고를 받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특별진상조사단(이하 「특조단」) 단장으로 저의 36년 軍 생활이 끝나도 좋다는 所信(소신)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국방부 특조단 鄭壽星(정수성·58·육군중장) 단장은 許元根(허원근) 일병 수사를 마친 소감을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온 것 같다』고 말하며 홀가분해 했다. 특조단은 2002년 11월28일, 1984년 軍 복무 중 발생한 許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許일병은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02년 9월10일 『許일병은 타살됐다』는 의문사委의 발표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鄭단장은 『인권을 중시해야 할 의문사委가 자살을 타살로 날조·조작해 許일병 동료 부대원들의 인권을 말살했다』며 조목조목 의문사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방부 특조단이 許일병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것은 2002년 8월27일. 국방부는 조사의 객관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의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 7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한편, 24명의 전문수사관으로 하여금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軍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再수사에 들어갔었다. 이번 특조단 조사에 임하면서 鄭단장은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한 타살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鄭단장은 특조단이 출범하자마자 24명의 수사관들에게 매일 「숙제」를 내주는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시켰다. 그는 출근하면 밤새 메모한 「콜롬보 수첩」을 꺼내 수사관들에게 과제를 냈고, 이것은 그날의 「체크 리스트」가 됐다. 수사관들은 이 爭點(쟁점)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고, 그 결론에 따라 수사의 가닥이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27사단 77연대 수색중대 소대장과 21사단 수색대대장까지 지낸 鄭단장의 야전 경험은 전방 근무 경험이 없는 일부 수사관들에게 「藥(약)」이 됐다. 특히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베트남戰에 참전해 양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적이 있는 그는 許일병의 「세 발 총격 후 자살」을 체험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방부 특조단의 조사과정에서는 어떤 형태의 「외압」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특조단장으로 부임할 때, 상관인 金鍾煥(김종환·육군대장) 1군 사령관은 『옷 벗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고, 李俊(이준) 국방장관도 鄭단장의 보직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의문사委의 의견을 존중할 것」, 「軍의 명예회복보다는 眞實(진실)만을 캘 것」 등 두 가지 사항을 주문했다고 한다. 鄭단장은 최종 발표 전날 발표문안을 손질하면서 「날조·조작」이라는 문구의 推敲(퇴고)에 고심했다고 한다. 결국, 특조단에서는 국방부의 所信을 나타내기 위해 「의문사委의 조사는 날조·조작되었다」로 강하게 가기로 했고, 발표문 마지막에 「진실은 하나다」를 삽입했다. 軍內 사고예방 전문가 경북 경주 출신인 鄭단장은 경북高(45회)를 졸업한 뒤 師大(사대)에 진학하라는 伯兄(백형)의 권유를 뿌리치고 1966년 198명의 동기생과 함께 갑종 202기로 軍門(군문)에 들어갔다. 동기생 중 姜基昶(강기창·예비역 소장) 비상기획委 사무처장, 尹武長(윤무장·예비역 준장) 국방부 정훈공보관, 李將欽(이장흠) 예비역 소장 등 4명이 별을 달았다. 鄭장군은 27사단 수색중대 소대장, 21사단 수색대대장, 17사단 참모장(대령), 17사단 100연대장을 거쳐 1994년 수도군단 참모장으로 부임하면서 장군으로 진급했다. 후방 사단인 55사단장 시절에는 「공세적 후방지역 작전」을 펼쳤고, 사단을 진달래꽃이 만발한 공원으로 가꿔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등 전·후방 가리지 않고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 후 보병학교장(소장), 수도군단장(중장)을 거쳐 2001년 11월 1군 부사령관에 부임했다. 중앙大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육본 인사참모부 복지관리과장, 국방부 총무과장·근무지원단장, 육본 인사참모부 인사근무처장 등의 보직을 맡으면서 軍內 人事 및 事故 예방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鄭단장이 軍생활 중 가장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하들을 잃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전방 수색대대장 시절, 그는 구타사건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接敵(접적)지역인 GP(최전방 초소)에 들어갈 때도 要(요)시찰 대상 병사들의 이름을 불러 주며 친동생처럼 대해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더덕을 캐다 지뢰를 밟는 병사들이 있을까 우려해 『더덕을 먹는 지휘관은 보직 해임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鄭단장은 의리 있고, 「內柔外柔(내유외유)」형인 인물이다. 평소 화를 내는 법이 없는 德將(덕장) 스타일이지만, 일단 임무가 주어지면 밤잠을 줄여 가며 치밀하게 끝을 보고야 마는 완벽주의자라는 評.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골프보다는 테니스가 수준급. 斗酒不辭(두주불사)형으로 최후까지 「살아남는」 강단이 있다. 가족은 부인 李潤周(56)씨와 2남. 현역 육군 대위인 차남 盛友(성우)씨는 육사 53기로 임관,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다.<吳東龍 月刊朝鮮 기자gomsi@chosun.com>

입력 : 200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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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si@chosun.com 기자클럽 「Soldier’s Story」는 국내 최초로 軍人들의 이야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軍隊版 「피플」지면입니다. 「Soldier’s Story」에서는 한국戰과 월남戰을 치룬 老兵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후손들에게 전하는 전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또한 전후방에서 묵묵하게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軍人들의 哀歡과 話題 등도 발굴해 기사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기자클럽 「Soldier’s Story」에 제보할 내용이 있으시면 이메일(gomsichosun.com)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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