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천연가》(상, 하), 이연수 지음, 타임라인 펴냄
1980년대 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울대 82학번 학생들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소설.
82학번? 그렇다. 전두환 정권이 ‘졸업정원제’ 실시한 덕분에 쉽게 대학 들어갔고,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를 읽으며 급속히 좌익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문제적 세대’다.
전경과 사복경찰들이 학교를 제 집처럼 드나들고, 매일같이 최루탄이 터지던 그 시절에도 사랑은 있었다. 충북 청주 출신 성식과 서울 강남 출신 미현은 아련한 마음으로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뜨겁게 사랑하지만 결국은 갈라선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숙함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는 서울대생들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학력고사 성적 배열표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이들은 여전히 미숙하다. 교수들은 그들의 지적·정신적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들도 미숙했으니까.
그 틈으로 선배들이 파고든다. 고작 20대 초중반인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후배들을 홀린다. 5·18 광주와 ‘군부독재’에 분노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거기에 넘어간다. 이 책은 그 시절까지만 해도 나름 ‘엘리트’였던 대학생들, 그 중에서도 그 머리 좋다는 서울대생들이 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넘어 주체사상으로 달려갔는지, 그 지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지적으로 미숙했던 그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사랑을 지켜나가는 데도 미숙했다.
다른 하나는 ‘부채(負債)의식’이다. ‘운동권’ 언저리에서 맴도는 이들은 ‘부채의식’에 사로잡힌다. 미현은 신림동의 여관에서 성식과 뜨겁게 사랑을 나누다가도 “지금이 어느 땐데…”라며 괴로워한다. 성식과 미현의 사랑은 결국 그 부채의식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파탄난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을 586세대에게 책에 나오는 사건과 풍경들은 무척 낯익다. 과외금지, 전방입소, 김세진‧이재호의 분신(焚身), 박종철의 죽음, 1987년 6월 사태, 녹두거리, 289-1번 버스, '사회과학서점' 혹은 ‘운동권서점’ 그날이오면과 광장서점, 고시원, 악취 풍기는 도림천….작가가 사건과 인물, 장소들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586들은 안다. 그게 무슨 사건이고,누구고, 어디라라는 것을.
특히 미현이 6월 사태 당시 열에 들뜬 듯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생명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서는, 6.29선언이 나온 후 이한열이 사망하자 "며칠만 일찍 죽었으면 (전두환 정권을) 완전히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던 어느 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바탕으로 ‘도림천연가’는 ‘광화문연가’처럼 예쁜 연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림천연가’는 예쁘게 끝나지 않는다. 졸업 후 기자가 된 성식은 ‘얼치기 냄새’가 나는 페미니스트 여성학자가 된 미현과 재회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헤어진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지 10여년이 지나 사회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숙했던 것이다. 작가는 마치 ‘586세대는 영원히 철들지 못할 세대’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성식과 미현에게 ‘데미안’ 같은 존재인 선태라는 선배다. 전남 여수의 부잣집 아들인 그는 ‘민중들의 밑바닥 삶을 알기 위해’ 난곡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고 후배들에게 공언한다. 하지만 그는 야근에 시달리는 ‘공순이’와 동거하면서 그녀를 서슴지 않고 ‘깔치’라고 부르고, 학교에 등교해서는 그녀와의 '모닝 섹스'를 은근히 자랑한다. 미현과도 관계를 맺는다. 1980년대 운동권의 위선을 보여주는 듯한 인물이다. 선태는 1990년대로 넘어갈 무렵 사법시험에 합격해 후배들을 놀라게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선태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민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진보와 민주를 앞세우는 정당의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잘 나가다가 ‘미투(me too)’에 걸려 인생에 금이 갔을까?
참 잘 쓴 소설이다. 특히 586세대의 위선을 직격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성장하지 못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는 마음은 영 불편하다. 그리고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그들 세대가 이 나라, 그리고 뒷 세대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



























































